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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Jun 23. 2022

님아 그 식물은 키우지 마오

- 올리브 나무 (2)



식물을 키우다 보면, 키우기 쉽지 않다는 소문이 자자해 선뜻 집에 들여놓기 어려운 반려 식물이 있다. 올리브나무가 내겐 그런 식물이었다.

올리브나무를 선물 받아 키우기 전까지 그를 데려올지를 한참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미모에 반해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었지만, 올리브나무의 난이도를 검색할 때마다 내 머릿속엔 혼돈의 카오스가 일었다. 어떤 이는 올리브나무가 키우기 무난하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굉장히 어렵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겁니까.

불특정 다수 모두가 증언하는 지랄식물 3대장(유칼립투스, 로즈메리, 마오리 소포라)은 조금만 환경이 맞지 않아도 금세 죽어버리기로 유명한데, 그에 반해 올리브나무는 여론이 조금씩 나뉘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올리브나무 입양을 고민하는 나의 친구에게 서슴없이 나의 개똥철학을 끄집어냈다.

‘그 나무 키우기 쉽지 않대. 빨리 죽는다던데 차라리 다른 나무를 데려오는 게 어때?’라고.

웃기지만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올리브나무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거 키우기 힘들다던데? (화난거 아닙니다.)


 올리브나무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며 나의 편견은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환경을 최대한 맞춰주며 키우다 보니 벌써 손바닥 한 뼘만큼 금방 키가 자라나고 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어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다.

부끄럽지만 인정한다. 올리브나무를 키우기 전의 나는 그의 단면만 보고(일부의 여론만 믿고)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 쉽게 단정 지어버렸다.

 여전히 올리브나무가 어렵다는 편견으로 키울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면, 싱그러운 연둣빛 잎을 내어주는 올리브 나무의 예쁜 모습은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반성한다. 네가 이렇게 무던하게 잘 자라는 아이인 줄은 몰랐어.



과연 나의 편견은 이게 다였을까?



비단 올리브나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그렇다.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 전부 무뚝뚝한 고등학교 친구 A가 있다.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눈치 보지 않고, 의사표시를 똑 부러지게 잘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조금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녀는 다르다. 특유의 그 무뚝뚝한 말투와 똑 부러지는 성격과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정말 많다. 성인이 된 뒤, 술자리에서 용기 내어 우리 가족사를 이야기했을 때도 나보다 더 크게 울어준 그녀다.

그녀는 인간 겉바속촉. 겉은 단단할지 몰라도 속은 연두부처럼 여린 마음을 지닌 친구다.


고등학교 친구 B도 마찬가지. 사실 그녀는 내 친구의 친구라 가벼운 안부 인사 정도만 주고받는 사이였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온실 속의 화초가 생각났다. 가만히 있어도 보호해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의 그녀는 온실 밖에 서있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동안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가끔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면 온실 속 예쁜 식물처럼 그렇게 잘 살고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몇 년 뒤 우연히 연락이 닿아 조금 더 가까워지면서 알게 된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때 알던 그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었다. 오히려 척박한 땅, 바위 위에서 바람을 견디며 피어나는 야생화 같은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실행력도 남달라, 결심한 일은 큰 망설임 없이 해내고야 만다. 남들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뚝딱뚝딱 무엇이든 잘 해내는 K-자영업자 그녀. 내 친구 중 유일한 사장님이자 나의 유리 멘탈을 붙들어 주는 단단한 버팀목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도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른 면이 있다. 식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라는 책에서 하완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누군가를 잘 안다는 건 그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다양한 면면을 많이 아는 것일 거라고. 나 또한 다양한 면면은 보려 하지 않은 채 내가 아는 잣대만으로 그들을 평가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사람이든 식물이든,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나의 올리브나무와 친구들처럼, 내가 알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의외성이 너무 매력적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미안하다 올리브나무야. 너는 생각보다 강한 아이였는데, 오해했어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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