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평 Apr 27. 2022

나의 반려식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 허니 산세베리아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허니 산세베리아가 우리 집 에 산 지 한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통통하고 귀여운 이파리가 어딘가 평소와는 달라 보이긴 했지만 기분 탓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핏기 없는 사람처럼 초록빛이 감돌지 않았고, 쭈글쭈글한 모양으로 무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내가 너무 건조해 시들해진 건가 싶어, 분무기로 자주 잎 분무를 해주었다. 양분이 부족한가 싶어 다이소 에서 급하게 사온 노란색 영양제를 쭉 짜주었지만… 역시나 이 것도 소용이 없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나의 귀여운 허니 산세베리아가 정말 죽겠다 싶어 일단 화분을 엎기로 결정했다. 혹시 내 식물이 과습은 아닌지 확인하고, 유튜브에서 봤던 일명 ‘응급 분갈이’를 해줄 계획이었다. 


그렇게 화분을 들어 아래로 향하게 한 뒤 최대한 뿌리가 다치지 않게 분리작업을 시작하며, 뿌리를 조심히 들 춰… 어? 그런데 뿌리가… 뿌리가 없다! 


뿌리가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뿌리는 이미 화분 안에서 녹아버려 자연으로 돌아간 지 오래된 모양이다. 아래에 붙어있어야 하는 그 뿌리는 새끼손톱만큼 남아있었다. 이럴수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식물이 아프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데 심지어 누군가 선물해 준 식물이 아프다? 왠지 모를 죄책감까지 든다. 선물로 받은 식물은 어쩐지 더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무엇보다 잘 키우고 있다는 근황도 종종 전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식물이 아프면 당신이 준 선물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아서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오해를 살까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잘 키워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에 머쓱해진다고 해야 할까. 선물해 준 사람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게 약일지도 모른다. 


뿌리를 잃어버린 허니 산세베리아를 허망히 바라보다, 다시 뿌리를 내리게 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담겨있는 축축 한 흙보다는 건조한 상토에 심어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 깨끗한 분갈이 흙을 꺼내 새로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뚜벅초는 스스로 일어설 힘마저 잃고 화분 위에 나동그라진 채 조용히 초록별로 떠나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식물이 비록 일방적으로 인간의 보살핌을 받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 방향이 결코 일방적이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물을 주거나 영양을 채워주는 역할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지만, 반려 식물 또한 잎이 마르거나, 말리거나, 쳐지는 등 그들이 할 수 있는 언어로 메시지를 보내준다. 


식물의 언어를 파악하는 능력, 그것이 진정한 드루이드의 길이 아닐지… 평소와 조금 달라 보이는 허니 산세베리아 상태를 눈치채고, 빠르게 대처를 해줬더라면 이렇게 보내진 않았을 텐데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던 건지 후회가 밀려왔다. 말을 할 수 없는 반려 식물조차도 교감은 필요하다는 걸 이제 와서야 조금 알았다. 

그렇게 나의 허니 산세베리아가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며 다짐해 본다. 식물의 언어를 이해해 보겠노라고. 


그리고 더는 나로 인해 식물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니 산세베리아: “다음생엔 만나지 말아요-“
이전 11화 욕망의 박쥐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