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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Jun 30. 2022

욕망의 박쥐란

- 박쥐란


식물을 보면서 한 번이라도 섹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올해 2월, 파주에 위치한 대형 식물 상점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다양한 희귀 식물들을 취급해 식집사들에게도 꽤 널리 알려진 이곳은 특히 관엽 식물들로 화려하게 꾸며놓은 식물존이 예쁘기로 유명하다. 그곳에 심겨있는 고사리나 몬스테라와 같은 식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크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웅장함을 자랑한다. 

그곳에서 처음 박쥐란, 아니 그를 만났다. 하우스 천장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는 초록색 이파리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실루엣이 머릿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만큼 우리의 첫 만남은… 정말이지 날카롭고, 강렬했다. 참, 박쥐란은 그 이름 때문에 ‘난’으로 오해받는 식물인데, 실제로는 양치식물 즉 고사리과라고 한다. 

이렇게 섹시한 고사리는 네가 처음이야! 


크기에서 풍기는 웅장함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치렁 치렁 매달린 이파리 하나하나가 물결치듯 굉장히 역동적이다. 그렇게 나는 두 다리가 바닥에 붙은 듯 한참을 뚫어져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국내에 유통되는 다양한 박쥐란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내내 그가 생각났다. 상사병에 걸린 환자처럼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박쥐란을 찾아보았고, 심지어는 그를 키우지도 않으면서 목부작(난초나 분재 따위를 고목에 붙여 자라게 하여 만든 관상용觀賞用 장식품. 우리말샘)하는 영상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이후로 그는 잊을 만하면 문득 한 번씩 떠오르는 첫사랑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사이에 또 보러 파주 갔다 온 건 안 비밀) 밥을 먹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이따금씩 그가 생각 났다. 그렇게까지 좋으면 이제 그만 데려와도 되지 않나 싶겠지만 사람 마음이 또 그렇게 쉽지가 않다. 데려오는 건 둘 째 치고 이제 막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내가 과연 그를 건강 하게 잘 키울 수 있을지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섹시하고 멋진 친구를 자칫 잘못해 아프게라도 한다면… 그 절망감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취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그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 저희 남편이 이번에 무슨 박쥐란? 뭐 그런 걸 키운 다더라고요! 에휴.” 

그녀는 계속 식물을 들이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새로 산 박쥐란의 사진을 앞으로 쓱 내밀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사진 속, 햇빛 아래에 연둣빛으 로 반짝이는 영롱한 박쥐란을 본 나는 이미 그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못 참겠다. 이건 사야 해!’ 


그래 뭐, 이 정도면 박쥐란도 충분히 찾아봤겠다. 또 그렇게 난이도가 엄청나게 어려운 식물은 아니라니, 이 정도면 박쥐란을 데려와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주말이 다가오고 근처의 꽃시장에서 멋스러운 알시콘 박쥐란을 데려왔다. 

그의 유통명 혹은 생김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쩐지 그를 볼 때마다 배트맨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의 박쥐 란은 배트맨의 히어로, 브루스 웨인의 ‘브루스’로 이름 붙여주기로 했다


나만의 다크히어로, 박쥐란(브루스)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적막이 깔리는 어둠 속에서도 그는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내곤 한다. 조명 아래 거실 귀퉁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쉬고 있을 때는 천장 위에 박쥐 모양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 먹는 방법도 남다르다. 물조리개를 통해 물을 주는 보통의 식물들과는 달리, 그는 욕조에 몸 전체를 푹 담구는 저면관수의 방식으로 물을 흡수한다. 그렇게 30분 정도 충분히 방치해 두면, 이내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박쥐란은 예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고, 이파리를 조금 더 높이 올려내곤 한다.


 내 가슴에도 아직 열정이 살아있음을 일깨워준 박쥐란, 브루스. 



..그나저나 브루스, 당신은 언제부터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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