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밀이 기계도 없는 삭막한 서울인데 말이야
타향살이를 시작한 내게 서울은 그저 삭막한 도시였다. 숨죽인 듯 무거운 공기의 사무실, 적막 속에 타닥타닥 들려오는 타자 소리. 늘 아침은 사람들의 건조한 표정만큼 메마른 공기가 맴돌았고 사무실 모니터에 앞에 앉는 순간마다 숨이 턱 막혀왔다. 지치고 노곤한 날에 피로를 풀기 위해 찾아가는 목욕탕 역시 이질적이고 서울스러웠다. 등밀이 기계도 없는 목욕탕에서 홀로 쓸쓸히 등을 밀어야 하는 서울이라니. 누군가는 그 기계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곳에서조차 나는 다른 도시에 와 있음을 느껴야 했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어느 목욕탕이나 '등밀이 기계'라는 것이 있었다. 공짜로 그저 기계 버튼을 누르고 동그란 때밀이 타월로 둘러진 곳에 등을 대고 씻을 수 있으니 혼자 목욕탕을 가도 외롭지 않았다. 등 밀어 줄 동행이 있어도 힘을 빼기 싫을 때 사용할 수 있었던 그 기계는 너무도 당연한 목욕탕의 서비스 중 하나였다.
서울에 온 뒤로 나는 늘 낑낑대며 요상한 요가 동작을 하듯이 팔을 꼬아 등을 밀었다. 물론 4년이 지난 이제는 '나만큼 팔이 유연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할 만큼 혼자 내 등을 미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고 그런 자세로 홀로 묵묵히 등을 미는 서울 생활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운동을 한 뒤 찾은 목욕탕에서 반신욕을 마치고 타월로 몸을 열심히 밀고 있었다.
"아가씨 내가 밀어줄게."
"네?"
늘 같은 시간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뒤편에서 나를 부른 것이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예쁘니까 내가 해줄게, 일루 와." 아줌마는 나를 끌어다 앉히고는 쓱쓱 등을 밀어주었다.
‘내가 혼자 그렇게 낑낑댔나. ‘
“가.. 감사합니다. 저도 해드릴게요!"
"아니야 난 친구 있어~"
나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고 아주머니는 내 등만 밀어주시고는 다시 본인의 목욕을 하는 것이었다.
나도 똑같이 해 드려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호의를 받은 것도 처음이거니와 고마우면서도 받기만 하자니 뻘쭘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자리에 돌아앉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턱 막혔던 가슴 한쪽이 툭 풀리는 기분과 함께.
아, 기계가 없는 서울이 더 따뜻할 수도 있구나.
목욕탕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과 웃으며 서로의 등을 밀어줄 수 있는 곳은,
의아하게도 내가 가장 삭막하다 생각했던 바로 이 도시, 서울이었다.
201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