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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Dec 22. 2018

동지팥죽

풍습은 여전히 유효하다

부모님을 뵈러 부산에 왔는데 마침 동짓날이었다.  부모님과 동네에 있는 간판이 30년은 훌쩍 지난 듯한, 팥칼국수 전문식당에 갔다.

평소 지나갈 때 식당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허름하고 별 일 없던 쪼그마한 동네 식당에 대기줄이 다 생겼다. 포장을 해 가는 손님도 어찌나 많던지 식당에는 젊은 청년 둘과 아주머니 셋, 온 가족이 나와 일을 돕는데도 일손이 모자라 보였다.


동지에 이렇게 팥죽이 인기였구나.

사실 나는 절기에 맞춰 어떤 음식을 찾아 먹은 적이 없어서,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풍경이었다.


문득 ‘21세기를 살아도 여전히 풍습은 유효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날에는 지금껏 지켜온 풍습대로 의미를 부여한 음식을 꼭 챙겨 먹는다. 액땜도 하고 복을 비는 마음이 음식의 재료 하나하나에  투영된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우리는 정월대보름에 부럼이라고 해서 직접 깨서 먹지 않아도 호두와 땅콩 같은 견과류를 챙겨 먹는 사람들이 많다.


겨우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렸을까.

드디어 나온 동지팥죽은 특별히 아주 맛있다기보단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맛이었다.

본*과 같은 프랜차이즈 죽은 맛있다 하는 맛으로 먹다 보니 여기는 다소 심심한 맛이 났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은 찹쌀로 만든 새알은 푸짐한 동네 인심을 가득 보여주고 있었다.


투박해 보이는 팥죽에다 각자 취향 껏 설탕과 소금을 넣었다. 찹쌀로 만든 새알을 깨물으니 입안에서 쫀득하게 퍼지는 맛있는 그 식감이 오랜만에 참 반갑다.


평소 안 먹던 팥죽도 동지라고 이렇게 찾아 먹었으니 내년에도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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