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도 메일을 몇 차례 주고받았다.
여전히 메일창을 켤 때면 마음이 막막했다. 한국어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도 어려운데, 번역기를 사용하려니 탐탁잖았다. 번역기가 나의 마음과 어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번역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작문하기에는 번역기보다 의심스러웠다. 고민하다 여러 번역기를 사용해서 비교한 후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고도 아쉬워 번역기로 돌린 문장을 손으로 받아 적어 편지를 썼다. 메일이나 손편지나 똑같은 글이지만 쓰고 나니 좀 더 나아보였다. 우체국 박스에 손편지와 달달한 간식, 따뜻한 그림이 담긴 달력을 보냈다. 메일로 택배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렸더니, 나타샤는 크리스마스를 계획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몇 장의 사진을 보냈다. 사진 속에는 빅토의 죽음 이후로 나타샤가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알 수 있는 사진과 집 사진이었다. 그중 부엌 냉장고 사진을 보고 멈춰버렸다. 냉장고 위에 붙여진 수많은 사진 중 내 얼굴이 담긴 사진을 발견했다.
냉장고 하단에 손을 들고 있는 사람 보이시나요?
냉장고엔 늘 무언가 붙여있다. 가장 사소하거나 혹은 가장 중요한 것을 붙인다. 자석, 사진, 알림장, 메모 등. 내 사진이 붙여있는 곳이라면 우리집과 부모님 집 정도인데, 지구본 한 바퀴 돌려야 볼 수 있는 캐나다 벤쿠버아일랜드 나나이모에 내 사진이 냉장고에 붙어있다. 나타샤의 가족사진, 까미노 길에서의 추억이 담긴 사진 그리고 내 얼굴 사진이 보였다. 너무나도 기쁘고 슬펐다. 저번 메일에 나타샤가 '캐나다 벤쿠버아일랜드에 와줬으면 좋겠어'가 떠올랐다. 먼 나라에 여행 가는 것은 가능했다. 두 번째 직장을 퇴사하기로 결정하고 전달했고 직원 모집공고는 한창 중이었다.
그렇지만 800km 까미노 길에서 다섯 번 남짓 본 나타샤의 집에 가는 것이 괜찮은 걸까?
메일에 '우리집에 머물렀으면 좋겠어'는 진심일까?
며칠 정도 지내야지 괜찮은 걸까?
머무는 기간이 하루라면, 굳이 캐나다라는 광활한 나라에 가고 싶지 않은데...라는 수많은 고민들이 이어졌고.
다시 냉장고 사진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특별히 내 얼굴을 붙여준 나타샤에게 고맙다는 말과 퇴사 이후로 여행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메일로 전했다. 퇴사와 함께 자체 안식년을 가지기로 한 2019년 여행 계획은 베트남, 발트 3국, 모로코였다. 였지만...
만일 캐나다 밴쿠버 아일랜드 나나이모에 간다면?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