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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We're tuff.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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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정 Oct 29. 2019

까미노

생일에는 늘 한국에 있었다. 생일이 다가오면 친구, 가족, 연인과 약속을 고루 정했다. 친구는 생일 전 주말, 가족은 생일 아침, 연인과는 저녁(연인이 없는 다수의 시간엔 친구가 있었다)을 보내야 하니 늘 한국에 있었다. 그건 다음 해도 다다음 해도 그 이후도 늘 같았다. 


2015년 9월 27일, 내 생일에는 까미노에 있었다. 

매년 생일을 대단한 일인 것처럼 축하받으며 지냈지만 왜인지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9월 27일 23.5km를 걸었다. 목표한 지점까지의 순례를 마치고, 사하군 알베르게에서 여권과 크레덴샬(순례자 여권)을 내밀었다. 알베르게 직원은 순례자 정보를 입력하던 중 생년월일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오늘 생일이네요? 생일 축하해요!'를 말했다. 비밀 인척 했지만 들켜서 기뻤다. 옆에서 내 생일 소식을 알게 된 유키의 '축하해'를 시작으로 종종 마주하던 친구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져 축하를 받았다. 소소한 축하는 저녁시간까지 이어졌다. 세상 최대치 밝음을 가진 대만 친구들은 작은 초코케이크를 준비했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생일 축하송을 들은 다양한 나라의 순례자들은 다가와 각자의 언어로 축하인사 혹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건너편에 앉은 나타샤와 빅토도 환하게 웃으며 '생일 축하해' 말을 건넸다. 다양한 언어로 축하를 받는 기쁨에 두근거림이 가시지 않았지만 자야 했다. 내일도 걸어야 하니깐

(왼쪽) 룩셈부르크에서 온 패트릭, 일본에서 온 유키, 나 그리고 대만에서 온 스마일리, 팡, 쯔유


생일 다음 날이 되었다. 그저 9월 28일. 

사하군에서 18.1km를 걸어 엘 부르고 라네로로 이동했다. 무리하여 걷지 않았더니 이르게 도착했고, 알베르게는 문을 열기 전이어서 문 앞에 앉아 기다렸다. 얼마 후 어제 축하를 건넸던 나타샤와 빅토가 왔다. 까미노에서는 각자의 걸음으로 길을 가기에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혹은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또 만났다. 또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며 인사를 나눴다. 나타샤 모자 위에는 꽃이 꽂혀있었고, 예쁘다 말하였더니 나타샤는 빅토가 오는 길에 꽃아 주었다고 말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커플인데, 모자 위에 꽃을 꽃아 주었다니 너무나 귀여워 유키와 '큐트'와'가와이'를 연발하며 말했다. 나타샤와 빅토는 미소를 보냈고, 나에게 가방에 꽃혀있던 나나이모 뱃지를 건넸다. 나나이모는 캐나다에 있는 섬인데 아름다운 항구도시라고 했다. 기뻐하며 답례로 나타샤와 빅토의 얼굴을 그려주었다. 까미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라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림은 완성했고, 나타샤와 빅토는 그림을 보고 행복해하였다. 그림의 답례로 빅토에게 찐한 귀 키스를 받았고, 그림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나는 나타샤와 빅토가 그림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나타샤는 메일로 사진을 보내달라 이야기했다. 나는 흔쾌히 좋다 하였고, 첫 메일을 보냈다.  

사랑스러운 커플 나타샤와 빅토


그 이후로도 나타샤와 빅토를 종종 만났다. 

처음보다 느린 걸음으로 걸었더니, 함께 걷던 친구들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나타샤와 빅토를 다시 만났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세월호 이야기를 전하며 리본과 스티커를 주었다. 까미노를 가기 전, 광화문 세월호 리본 공작소 들려 100개 넘는 세월호 리본과 스티커를 받아왔다. 사회복지를 공부할 땐 사회일에 누구보다 앞장설 것처럼 말했지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날 나는 무심히 보냈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지금은 나의 일을 먼저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친구로부터 함께 알고있는 친구의 삼촌이 세월호 배에 탔고 구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 깊이 서늘해졌다. 너무나 가까운 일에 무심했던 내가 무서웠고 서러웠다. 그래서 까미노 길에 노란리본을 들고 갔다. 까미노 길 위에서는 가방이 인생의 무게라 한다. 그 무게 중 세월호 이야기만큼의 무게를 얹고 걸으며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면, 그 날의 무심함에 대한 나의 수치가 조금 덜 해질 것만 같았다. 세월호에 대해 나타샤는 이미 알고 있었고 깊이 공감하고 분노했다. 나보다 능숙한 언어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내가 세월호 리본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다시 만났을 때는 공동부엌에서 내가 요리를 마치고 주변을 정돈할 때였다. 나타샤와 빅토는 나를 보고 '너는 정말 깨끗하게 사용하구나! 멋져. 좋은 아내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슈퍼에서 나타샤와 빅토는 초콜릿을 집었고 나는 맥주 한 병을 계산했다. 빅토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좋은 음식이야'라고 말하며 엄지를 보냈다. 알베르게에 돌아와 슈퍼에서 사온 음식을 먹었고, 그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다. 


'영영 볼 수 없겠구나' 생각의 끝에 답장이 왔다. 나타샤는 사진을 보내주어 고맙다 말하며, 까미노를 마치면 산티아고 케이크를 사서 가족들과 나눠먹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까미노를 마치고 파리 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소식을 전했다. 며칠 후, 나타샤와 빅토는 나나이모에 도착했다는 메일을 보냈다. 


사진을 보내기 위해 알게된 메일로 나와 나탸사는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았다.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메일 덕분에 나타샤와 빅토에게 나의 결혼소식을 전했고, 먼 나라로부터 메일과 손편지로 번갈아가며 결혼 축하소식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메일은 이어졌고, 메일은 나를 나나이모로 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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