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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벨 Jul 01. 2022

시어머니는 왜 고맙다고 안할까?

"며느리가 시간내서 고생해서 정리한 거예요."

남편이 시부모와 식사를 하며 말을 꺼냈다. 처리해야 할 시어머니의 일에 필요한 서류와 문의 내용을 내가 정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늘 반복되어온 이 상황이 싫었다. 시댁에서 며느리는,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수 없는 하찮은 존재였다.


"어머님, 제가 전화도 여기저기 엄청 많이 하면서 물어보고 정리한 거예요."

너무 하찮아 곧 소멸될 것 같은 며느리의 존재가 슬펐다. 남편이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강조했다. 남편이 내 옆에 있었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굳은 얼굴로 싸늘하게 답했다. 그리고 뻣뻣했다.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 끝내 시어머니는 내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늘 그랬듯, 우리가 모시고 간 식당 흠을 잡았다.


그 뒤로 며칠을 생각했다. 니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니. 이게 무슨??? 마치 양반과 노비의 대화 같았다. 나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렇게 당했으면 이제 알만도 되었는데 또 바쁜 남편을 위해 시어머니를 도운 내 탓이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자책했다. 바보 멍청이 호구같으니.





"엄마. 며느리가 커피 사왔어. 마셔요."

이제 그런 노력은 안해도 되는데 남편은 참 한결같다. 며칠 전 내가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는 너만 먹냐고 했다. 그래서 아이스커피를 사왔는데...

"나 추워. 안 먹어."

역시 시어머니는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또 자책했다. 바보 멍청이 호구 등신같으니.





"시누이에게 고맙다고 전화해라."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던 시어머니는 신혼때부터 시누이끔찍히 챙겼다. 사소한  하나라도 받으면 형님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라고 했다. 시일이 지나 이미 물러져 주스로만 먹을  있는 과일을 받아도, 곰팡이가 있는 과일을 받아도 나는 시누이에게 고마워해야하는 하찮은 올케였다.


"음식을 받으면 어머님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해야지."

내가 못 먹을 정도로 짠 반찬을 받아도, 쌀벌레가 고를 수 없이 많이 나와 방앗간에 맡겨 만든 가래떡을 받아도, 시부모가 다 먹지 못해 냉장고에 묵혀둔 싱싱하지 못한 과일을 받아도 나는 고마워해야하는 하찮디 하찮은 며느리였다.




수년의 세월이 흐르고 내가 찾은 방법은 슬펐다. 내가 고마워하고 시어머니가 내게 고마워할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 물론 나는 바보 똥멍충이어서 계속 시어머니가 내게 고마워해야 할 일을 만들었지만 남편은 (시어머니가 못마땅해할만큼)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항변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예전만큼 받아오지 않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틀렸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병원을 수십 번 갔지만 시어머니는 내게 한번도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하찮아져서 진짜 사라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존엄성을 지켜달라고 1인 시위라도 해야하나.


나를 지키고 싶다. 나를 지켜내고 싶다.




+헤어지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날선 평가와 지적은 잠시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비방을 위한 공유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런 평가 없이 그저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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