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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의권 Dec 17. 2017

어느 식당

교회 기고(원글 일부 편집)  2017.12.17

  한 식당을 소개하고자 한다. 맛집의 몇 가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밖에서 별도로 표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어떤 분은 어디로 가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요즘 어떤 식당들은 노키드존을 내걸고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하기도 하는데, 여기는 정반대로 아이들뿐만 아닌 젖먹이 가족들을 위한 식당 공간이 따로 있기도 하다. 여기는 바로 영파여고 급식실이다.

    그때는 17년 5월의 어느 주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배식 당번하는 날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장갑을 끼는 것 까지는 예전 한번 해보았던 것과 비슷한데, 모두 모이자 둘러서서 권사님의 인도로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질서 있게 배식할 메뉴 위치에 서서 앞을 보니 일찍 마치고 온 초등부 아이들이 벌써 애원하는 고양이 눈빛으로 시작을 기다리고 있고, 권사님의 "자~ 이제 시작하시죠" 말에 음식을 받고 줄을 이어가는 그때, 뭔가 이 광경이 아주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으로 느껴지면서 이유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구절 '...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줘 주시고...'

    그냥 기계적으로 일정 분량을 덜어서 나눠주는 내 손과 내 옆의 손이 그리고 주변에 배식을 주관하는 봉사부 분들과 그 뒤로 주방을 묵직이 울리는 소리들이 창조라는 무대 뒤 장치들의 움직임 같이 느껴지고, 늘 먹는 밥과 반찬인데 그때는 내 손에서 나누어지던 그 먹을거리들이 그때 예수가 했던 그 황홀한 손놀림으로 빚어지던 빵과 물고기 같았다.  

    그날 배식을 마치고 식탁을 닦고 정리하는데 멀리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권사님이 풍선같이 부푼 비닐봉지를 솥뚜껑 같은 푸짐한 손으로 쥐어 주신다. 챙겨주시는 그 모습이 어릴 적 자취방에 들러 먹을 것 두고 가는 시집간 큰 누님 같았다. 당시 아내는 한 주간 딸아이와 시름하다 주일에 반짝 주사 맞은 듯 시간 내보고 집에 오면 다시 다음 날 다시 시작할 일상에 밥차릴 기운도 없던 그때, 국물만으로도 이것저것 넣어서 뚝딱 한 끼 먹을 엄두가 나게 하는 종자씨 같은 비닐봉지였다. 

    그때는 17년 2월의 어느 추운 날씨의 교회 가는 아침 길이었다. 8시 반 정도에 천호역 H백화점 대각선 건너편 출입구로 나오던 중 계단이 양쪽으로 나눠지는 중앙에 쪼그려 앉아 있는 어떤 할머니를 보았다. 걸을 때 부축하는 데 사용하는 작은 카트와 그 옆에 천 원 몇 장과 동전이 담긴 바구니가 있었다. 난 카드 외에 현금이 '거의'없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고 올라오는데, 혹여나 싶어 지갑을 꺼내 보니 역시 돈은 없었지만 수북한 실속 없는 카드 옆에 삐져나온 그것, 교회 식권을 보았다. 발걸음은 쉬지 않고 교회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런 상상을 했다. 이 식권을 드리면 저 할머니가 오실 수 있을까? 문득 다시 뒤를 돌아본 것 같다. 뒤편으로 보이는 백화점 주변의 큰 건물들. '여기에도 이렇게 사는 분들이 있구나'. 생각만 했다. 

    먹을 것을 나누는 일을 생각하면 오병이어가 떠오른다. 예수의 오병이어 기적은 당연한 일상이어야 할 먹는다는 것이 기적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예수는 오병이어의 자리에서 크리스마스 선물 나눠주듯 마냥 흐뭇한 표정으로 빵과 물고기를 나누지 않았을 것 같다. 오병이어가 십자가로 가는 수많은 예수의 한발 한발 족적 중의 하나라면 한 줌 한 줌 음식을 나누는 것도 십자가의 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다. 성만찬은 소수의 구별된 제자들이 유월절에 아늑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것이 그 기원이라고 알고 있지만, 일상의 삶을 내려놓고 예수를 따르며 바람 부는 들판 위에 앉은 허다한 흙내음 나는 인생들에게 나누어진 빵과 물고기가 나에게는 더 귀한 만찬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그 배식의 성소에서 난 예수였다. 작은 예수였다. 에봇같은 앞치마를 둘렀고 주방의 소음들은 제물들의 피 흘리는 소리들이다. 내가 예수의 살과 피를 먹으며 자라왔고 그의 육체의 일부로서 내가 한 것은 작은 오병이어였다. 나는 작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그 자리의 모두가 작은 예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내가 수십 명만 되어도 오병이어는 기적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이 된다. 

  이런 일상 같은 기적, 기적 같은 일상의 의미가 내 안에만 그리고 나와 익숙한 우리 공동체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야겠다는 부담감이 있다. 하지만 거창한 뭔가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 먼저 내 삶에서 그 어린아이가 가졌던 오병이어와 같은 것을 준비하고 내놓고 싶다.



공동체를 바라보며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생각만으로 글을 쓸수 없다.

원래 글에서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할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긴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가듯이 글을 내어 보내기. 

이것이 글쓰는 사람이 글을 읽는 이들과 대회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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