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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의권 Dec 27. 2016

품질에 대하여

내구성 있게 시간을 다루는 관리자가 된다는 것  2016.12.9

이 세 가지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품질의 중요한 요소를 많이 생각한다.


소개를 하자면 칼 면도기는 이제 6개월 정도 된 비교적 새것이다.

전기면도기는 2011년 12월 26일 사우디로 나갈 때 공항에서 샀으니 이제 5년이 된다.

안경은 2005년 10월쯤 리비아 출장 후에 출장 수당으로 산 것이니 이제 10년이 넘은 물건이다.


칼 면도기는 바디는 새것 일지 몰라도 칼날은 6개월 동안 바꾸지 않고 써오고 있다. 전기면도기는 충방전 효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모터를 움직이는 충분한 힘을 발휘한다. 보호망도 여전히 튼튼하고 구멍들이 뭉개지거나 떨어져 나가 수염이 날에 씹히는 경우도 없다.  

10년 넘은 안경은 거의 만신창 수준이다. 사우디에 가기 전 2011년까지 정말 상태가 좋았는데 거기에서 땀을 너무 흘리는 상황에 염분에 많이 노출되어 코받침 주변에 퍼런 동녹이 끼어 있고 귀 부분의 스프링 부분도 많이 부식되어 도금이 벗겨져서 살에 닿는 부분에 염증을 일으켜 의료용 밴드를 잘라서 감싸 보호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쓰고 다니고 있다.


좋은 품질을 생각할 때 반드시 떠올리는 속성은 바로 '내구성'이다. 

사우디 현장에서 근무할 때 기존에 지어진 시설 옆에서 일했다. 오래된 경우는 30~40년 정도 된 것이 있다. 자세히 보면 시공할 때 품질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여실히 보인다. 소요 두께를 만족하지 못한 외부 코팅, 적절한 절차 없이 덧대어 타설 한 콘크리트의 균열, 시공 중에 적절한 열처리나  방청 처리를 하지 않은 용접부위 등,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난다.


새 물건은 이게 좋은 품질인지 아닌지 바로 판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나는 그것을 '새것 효과'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지 않은 체 '새것'을 받아보는 상황에서는 좋은지 알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어떤 물건은 일부러 중고를 선호한다. 중고가 '누가 쓴 헌 것 '이 아니라 '가격 대비 검증된 물건'이라는 관점에서.


좋은 품질에는 그만한 상응한 대가가 따른다.

그중에 나는 '시간'과 '돈'을 생각한다. 좋은 물건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날림공사'라는 말을 좀 고상하게 적어 본다면 정상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공사이다. 콘크리트는 하루만 지나도 단단해진다. 하지만 내부의 수분이 충분히 반응하여 제대로 된 강도를 내는 데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좋은 품질은 좋은 원 자재에서 나온다. '싼마이'로는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여전히 싼마이가 된다.

좋은 원자재는 비싸다. 다른 두 가지는 모르겠지만, 저 닳고 닳은 안경은 정말 가지고 싶은 디자인이었지만 가격 때문에 1년을 지켜보다가 구입한 것이었다. 당시 24만 원을 줬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10년을 썼으니 제대로 된 선택이었다. 예전에 사용한 다른 안경과의 가장 큰 차이는 금속의 재질이었다. 저 안경을 쓰고 축구공에 몇 번 맞기도 하고 떨어뜨린 것을 밟고 지나기도 했다. 복원 범위를 넘어설 만한 반복된 큰 변형을 가해도 끊어지지 않았다.


유형의 물건을 보면서 품질을 말했지만, 무형의 대상에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특히 나의 지난 5년 정도 해외에서 일하면서 나의 일하는 방식의 '품질'은 어떠한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지만, 노동 '생산성'은 하위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어떤 직장에서는 야근은 정상적인 근무시간의 일부로 생각하는 곳도 보았다. 하지만 낮 근무시간에 밖에서 담배를 필시 간, 동료직원과 밀담이 할 시간, 때로는 '약간의 양해'를 구하고 개인적인 볼일을 하는 것까지 하면서도 야근은 한다. 


해외에서 일하면서 말로만 듣던 외국 사람들의 근무시간 중 특히 '별도의 점심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회의하면서 점심시간이 걸리면 우리 한국사람들은 눈치 주면서 안절부절못하고 회의가 길어지는데 짜증내는데 반해 외국 직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이다. 회의가 길어진다 싶으면 아예 사온 가방에서  사 온 햄버거나 샌드위치가 든 도시락을 꺼내 먹으면서 일한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다고 해도 잠깐 쉬면서 그걸 먹고 담배 한대 피우는 시간도 없이 바로 일한다. 대신 칼퇴근이다.


나 같은 관리자로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중요하다. 시간을 다루는 '품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와 같이 일한 부하직원들에게 이렇게 조언이나 지시를 했다. '내가 없을 땐 차선이라도 좋으니 빨리 결정되는 쪽으로 가야지 최선의 방향을 찾는다고 시간을 끌지 말라, 그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흘러간 시간을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시간을 상대화 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바로 planning에서 나온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시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한 사람이 하루 걸려 해야 될 일이라고 판단되는데 그렇게 해서 늦어진다면 두 사람을 투입해서 빨리 끝내는 것이다. 


매우 단순한 예이지만 이 원리는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관리자는 반드시 좋은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해외 현장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시간에  대한 단편적인 관점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여기에 더하여져야 할 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내구성'이 곁들여져야 한다.


관리자는 꾸준함이 생명이다. 어떤 때는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어야 하고 그 반복됨 속에서 뭔가 새로운 변화와 개선할 것과 무미건조하지 않은 것을 발견해 나가는 집중력의 내구성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사우디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가 한 단계 높은 관리자가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임을 발견했다. 이점이 내가 예시 당초 일터를 묵묵히 지키는 현장관리자 출신이 아닌 이벤트적으로 일하는 엔지니어 출신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도 했다. 


일상을 절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일하는 '일하는 방식에 대한 높은 품질'을 유지한다는 것.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일 자리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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