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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의권 Dec 21. 2016

동물을 키운다는 것

말못할 대상과 교감 할수 있다는 것은. 2016.12.21

직장을 구하는 면접에서의 질문은 많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정말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을 때 그것을 일종의 압박면접으로 보기보다 진짜 나의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2주 전 지원했던 한 회사에서 면접이 있었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회사인데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신생회사인 것  같지만 이 분야 자체가 워낙 나름 전망 있는 분야이기에 일단 지원했지만 관련 경력이 없었고 대신 공고에 나온 '토목분야 인허가 업무'라는 문구의 '토목' 이것 하나에 의지하여 지원했을 뿐이다. 물로 국내에서 설계일을 할 때 인허가 업무의 종류나 성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해본 것도 아니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들어서서 둘러보면서 '아.. 나도 어쩌면 이런 신생회사에서 일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들은 아무도 없고 나중에 보니 그 회사의 대표되시는 분이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모두 되어 있었고 회의실과 자리 배치까지 다 되어 있는 일단 하드웨어는 갖추어진 회사였다. 

그래도 보통 회사를 만들면 인사 및 관리직원을 먼저 갖추는 법인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조금은 황당하기도 했다. 면접 볼 때는 그 대표분이 누군가를 외부에서 불러왔는데, 아마 이런 HR관련 일을 돕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질문 던지는 것에만 족족 단답 하는 방식보다 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전략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예상외로 그쪽에서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그 후 어떤 질문을 받기 전에 먼저 "저의 경력사항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공부하고 일해온 경력과 어떤 동기로 이 신재생 에너지라는 분야에 지원했는지를 먼저 설명했다. 

 

그 후부터는 면접받는 입장이다 보니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문분야에 대한 상세한 설명, 외국생활에 대한 질문, 재무에 대한 경력도 있는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어떤 배경지식이 있는가?, 인허가 업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등 여러 가지가 나왔고 인허가에 대해서는 미리 공부하고 간 데로 사업에 있어 국가기관과 민원 등을 상대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오히려 내가 질문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까".  의외의 질문이었다.

이런 예상 밖의 질문에서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 된다. 거기서 어떤 '의도된 좋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없는 이야기를 하면 노련한 사람들은 그걸 알아챈다. 앞서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나도 회사의 대표분이 나름 산전수전 다 격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던 차였다. 

" 예...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개, 고양이, 토끼 등의 많은 동물을 키웠고 동물을 키우는 것 자체는 좋아합니다. 하지만 지금 도시에서 아파트에 사는 상황에서는 키우고 싶지 않네요. 저는 동물에게는 동물 나름의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도시에서 동물을 키우는 형태에서는 그게 침해받는 것 같고, 동물도 자기만의 삶이 있는데, 도시에서 동물을 키우는 걸 보면 하나의 생명이 있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마치 인형 같이 다루어지는 것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나중에 마당이 있는 개인집이 있다면 고려해 볼 생각입니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말한 것 같다.

그러면서 그분이 설명을 한다. 이 사업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봤겠지만 풍력이나 태양열 발전단지 같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많은 마찰이 있는데, 그걸 풀어가는 데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동물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런 점에서 무리가 없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채용공고에도 학력무관이라고 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것이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질문의 의도를 스스로 밝였다. 그 순간에는 면접을 보고 있다기보다 어떤 연륜과 삶의 지혜가 많은 어른과 우리 삶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그런 분위기와 느낌마저 있었다. 그렇게 면접 보는 사람에 대해 필요한 상황은 파악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이 회사에서 일한다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좁고 거친 가시밭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겠구나,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힘들지는 않겠다, 저런 분이라면 일이 힘들어도 견딜만하겠다, 사람이 힘들게 하지 일이 힘들게 하는 건 아니잖나...


면접을 마치고 돌아와서 거기에서 다시 불러줄 가능성을 51%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솔직히 거기서 불러준다고 해도 부담은 된다고 생각했다. 완전 신생 회사에서 창립멤버로 일해야 되고, 회사의 체계나 시스템도 만들어 가면서 일해야 된다. 

결론적으로 거기서 나를 불러주지는 않았다. 면접 때 나의 예전 연봉 수준에 좀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도 받았고 예전 직장이 이른바 대기업군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그 회사 이전에 다른 면접에서도 늘 마지막에 걸려드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런 과거를 묻어두고 다시 일할 마음가짐이 있는데...


암튼, 그분의 '동물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 후 며칠 동안 내면의 울림이 있었다.

면접 일주일 정도 후에 아무 연락이 없어서 보통 이런 경우는 채용하지 않는 경우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불합격 통보라도 하는 것이 회사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합격의 경우라도 그 여부를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며칠 후에 예상대로 공손한 불합격의 문자를 받았지만, 나는  '사업이 번창하여서 좋은 일 많이 하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것은 면접 중에 내가 받은 삶에 대한 철학과 배려에 대한 감사함의 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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