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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Jul 06. 2024

알앗다.

가족이라는 단톡방

'알앗다'

눈도 귀도 어두우신 아버지가 하루가 지나서야 나의 톡을 발견하고 보낸 답장엔 언제나처럼 'ㅅ'이 하나 빠져 있다.


천지인 자판으로 띄엄띄엄 맞춤법도 틀리게 내시는 그 답장은 이유불문하고 늘 내게 안도감을 준다. 성년을 지나 이제 무르익은 중년이 된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의미이길래.. 불편함과 불친절함으로 평생 가깝지만 가까이하기 힘든 그러나 '그러든지 말든지' 할 수 없는 연결될 수밖에 없 혈육이라는 .


결국 파킨슨 중증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며 함께 지내기를 포기하셨을 때 나는 그 한계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였지만 결정에 대한 모든 책망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고목 같은 가장의 모습이 커 보이기도 하였다. 머니가 성으로 키워 놓은 아들인 나는 미약한 존재이기만 다.


온 가족이 어머니의 죽음의 경계에서 보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부쩍 잦은 접촉 사고를 일으키는 아버지로부터 차 키를 뺏는 역할을 해야만 했. 당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안전의 이유로.. 30년 전 대학생이었던 내게 차를 주셨던 아버지 마음 역시 불안하셨을 것이다. 나는 내 아들들에게 아버지만큼 할 수 없을 거 같다.



      

동창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매일 아침마다 뉴스 Summary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70여 명이 모여 있는 방인데도  호의에 별 이 없다. 뭐 그렇지 항상..  그 뉴스들이 맘에 안 들거나 유용함을 못 느껴서 일 수도 있지만 특히 우(한국인) 늘 그런 식이다. 누군가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 모른 척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는 누구도 선뜻 한마디 하기가 참 어려운 그런 Super shy 한 민족.

나라고 뭐 그렇게 다를까? 나는 아주 소심하게 그 친구의 글에 밑에 엄지따봉을 달아준다.(이 기능 너무 좋다.) 정보도  유용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내 주는 성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다 어느 날 그걸 그대로 아버지와 동생이 있는 단톡방으로 보냈는데 바쁜 동생이 읽기 좋다고 부탁해서 나도 매일 포워딩을  되었다. 아버지도 가족 단톡방으로 전달되는 뉴스들을 좋아신 다는 걸 어느 날 알게 됐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 안 읽는 동생이 뉴스를 읽는다는 사실에 특히. 


그러다 보니 대화가 한동안 끊기기 십상인 우리 부자들 사이에 이 뉴스 기사 전송이 유일한 소통인 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기사를 단톡방에 처음 전송했던 친구도 그런 비슷한 말을 했었다.  방이 죽어있는 방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였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친구가 전하는 뉴스에 따봉을 꼼꼼히 달아주었다. 그 기사를 전달받은 우리 가족은 나에겐 따봉 같은 건 안 주어도 분명 우리는 서로를 매일 한 번은 떠올리고 생각한 게 맞아요. 하며 작은 위안을 삼는다.

사실 매일 빠지지 않고 한다 해도 나는 그 성실함에 대해 그리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진 않다. 매일 톡에 올라오는 빨간 단추가 잊을 수 없게 해주는 것이니.. 어쩌면 그 친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대가가 있던 없던 어느 누군가의 노력이 시초가 되어 그렇게 서로 큰 부담 없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

단톡방에 올라오는 뉴스는 매우 중립적인 시선으로 추린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이거나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것에 안도하고 만족하는 것일까? 


여전히 세상에 염려가 많으신 아버지를 볼 때마다 노후의 삶보다는 죽음을 먼저 떠올렸던 아들의 시선이 경솔했다는 걸 느낀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의 가족들이 오늘도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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