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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Jun 29. 2024

마음의 빚 2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할머니와 내가 같이 쓰던 방 한쪽 구석엔 오래된 재봉틀이 있었고 그 다이(나무로 짜인 수납함) 위로는 매일 아침 일어나 고이 접어 올린 것을 포함, 몇 개의 요와 이불이 늘 겹겹이 쌓여 있었는데 나는 가끔 이불들 틈 사이로 손을 쑥 깊숙이 넣어보곤 했다.


할머니 가끔 작은 물건들을 그 담요들 틈 사이에 끼워두곤 하신다는 걸 알고 난 뒤에 생긴 습관이었다. 군것질이 하고 싶을 때마다 엄마 몰래 할머니에게 동전을 달라고 떼를 썼는데 없어서 못 준다고 하시면 까치발을 들고 그 재봉틀 위 이불들 틈사이 여기저기 손을 쑥쑥 집어넣어 숨겨진 보물(5원이나 10원짜리 동전) 찾기를 하곤 했다.


하루는 동전을 찾다가 붉은 액체가 담긴 작은 플라스틱 약병이 손에 잡혔는데 이게 뭐냐며 물으니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시며 큰일 난다며 급히 뺏으신 적이 있었다. 뭔가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 얼마나 되었을까. 밤이 되어 불을 끄고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나는 잠이 잘 들지 않았었나 보다. 어두운 방에서 할머니가 다시 부스스 일어나시는 걸 느꼈다. 내가 완전히 잠이 들었다 여긴 할머니는 불을 켜시고 조용히 어딘가를 뒤지다가 책상 위에 뭔가 달그락 거리는 것을 올려놓으신 듯했다. 눈을 감고 계속 잠들은 척하던 나는 그 빨간 약병이 떠올랐다. 그랬으면 그 순간 떡 일어났어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자는 척 가만히 있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머니를 놀라게 하면 혼날까 봐? 아무도 모르게 뭔가 진지해 보이는 할머니의 작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거나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한 거였을까? 그렇지만 분명히 나는 그때 받은  좋은 예감 억할 수가 있다. 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계속 자는 척을 했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어른스러운 판단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정말 다음날 할머니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모르는 사람들 여러 명이 집안을 들락 거리고 할머니는 어디론가 들것에 실려가셨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셨다. 나는 설마 하면서도 어머니에게 전날 밤 자는 척을 하며 실눈으로 감지했던 일을 말씀드렸는데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절대 어디서 그런 말을 꺼내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셨다. 어린 나는 어찌나 어머니를 믿고 따랐던지 모든 정황이 뭔가 불편하고 이상했지만 이후 할머니는 나이가 드셔서 돌아가셨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지냈다.


어쩌면 어머니의 거짓말은 어린 나에 대한 배려였을 수도 있다. 유치원에 다닐 어린 나이지만 후회와 자책 비슷한 감정에 휩싸여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순진하게도 어쩌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방어기제 발동하여 어머니의 엄격한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고 시간이 흐르며 잊고 싶은 기억은 점점 흐려졌다.




파킨슨 병에 치매까지 동반된 어머니는 가슴속에 쌓였던 한을 모두 봉인 해제하여 아들에게 하나씩 풀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할머니 얘기도 결국 털어놓으셨는데 몸과 마음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꺼내는 고백은 오히려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난 나이에서야 진실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전혀 상상할 수 는 얘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이 작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는 해도 결국 나는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마음 깊은 구석으로부터 죄책감이 밀려왔다.


앞에서 할머니가 뭔가 안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느꼈으면서도 그걸 모른 척했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평생 마음을 무겁게 한다. 무엇보다 아들인 아버지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헤아려 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때 즈음부터 열심이셨던 두 분 종교 활동에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의 비극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고 어머니가 수시로 할머니의 환영을 보는 것에 대해 아버지는 아마도 네 어머니가 '마음의 빚'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고 하셨다. 고부 갈등으로 잦은 다툼이 있었지만 그것을 어찌 모두 어머니 탓으로 돌릴 수 있으랴. 오히려 마음의 빚이 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이다.


그때 나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또한 나는 절친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크게 울거나 슬퍼했던 기억이 없을까? 유아기를 어머니와 한집에서 함께 보낸 우리 아이들도 그랬던 거 같다. 인간의 슬픔이란 감정도 학습이 필요한 것일까?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이제 더 이상 엄마와 싸울 일 없이 잘 지내실 거라 생각했던 걸까? 


내 인생의 마지막엔 어떤 마음의 빚이 드러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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