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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Jun 15. 2024

휴직의 기억 2

IMF

영어학원을 가는 길과는 달리 오는 길은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터벅터벅 걸어오는 날 도 많았다.

요즘말로만 어봤을 IMF 시기였으므로 모두 힘든 암울한 시기였다. 흉흉해진 민심으로 당시 어이없는 일도 종종 뉴스에 나오곤 했다.


광역 버스를 내리는 곳은 이름도 구수한 효자촌이라동네였는데 집까지 는 길은 계획도시답게 보행자를 려한 걷기 좋은 길이었다. 지금도 가끔 걷곤 하는데  위에 오르는 수시절의 기억 몇 개 있다.


한 번은 암 생각 없이 걷고 있는 내 앞 20m쯤에서 뭔가 퍽!!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머그 컵이나 작은 화분쯤 되는 물건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고 바로 몇 미터 앞에 주부인지 아가씨인지 모를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목을 움츠려 든 체 몇 초동안 놀라서 꼼작을 못하고 서있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앞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나는 분노에 찬 얼굴로 그 물체가 날아왔을 법한 아파트 위층을 째려보았는데 당연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놈이 이런 끔찍한 장난을 친 걸까? 내 앞에서 만약 저 여자분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더라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아니 몇 초만 시간이 늦었더라도 내가 당했을 수도 있었다.


아파트 위를 쳐다보다가 '어떤 놈이야!!' 하고 소리 질러봤다. 감감무소식. 몇십 초 정적이 흐르고 나도 그냥 갈 길을 갔다. 다행히 그 후로 동네에 그런 테러사건의 소문이나 뉴스는 접한 적이 없다. 그러나 사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거 같아서 조금 찝찝하기도 했다.


아무도 안 다쳤으면 됐지 하고 귀찮아서 가던 길을 갔지만, 20대 청년이었던 나는 어려서 저질렀던 비슷한 장난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커튼 뒤에 숨어서 새총으로 누군가를 놀라게 한 기억. 그러나 화분을 던진 놈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 숭악하다.



하루는 아침에 겨우 몸을 일으켜 터벅터벅 영어학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초등학교를 하나 지나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한패 거리의 애들이 모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애들 같 않게 머리를 빡빡 깎은 골목대장처럼 보이는 녀석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 머리도 짧고 앳되어 보이는 녀석이 모래 씨름장 경계에 반쯤 묻어 놓은 폐타이어 위에 걸터앉아 있고 그 앞엔 교복을 입은 두 녀석이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 주변으론 몇몇 녀석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장소는 초등학교 운동장이고 벌건 대낮에 뭐 설마.. 하면서도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는 타이어에 앉아있던 놈이 나의 시선을 알아채고 약간 당황한 듯 주위와 쑥덕이더니 곧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허.. 뭐지? 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잘했다 싶었다. 이 어린놈들이 '삥'이라니.. 것도 벌건 대낮 운동장 복판에서. 른 놈들과는 달리 머리를 숙이고 있던 놈들 내 으로 오고 있었는데 다가오면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줄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애들 덩치가 점점 커지더니 내 앞에 왔을 때는 키가 거의 내 눈높이와 다르지 않았다. 한 180cm?  두 녀석 다 어지간한 어른 키보다 컸다.


헉.. 순간 당황스러웠다. 멀리서 본 그 놈들은 초딩이나 딩이 아니었나 보다. "아저씨 뭘 꼬나봐요?" 하고 앉아 있던 빡빡이 놈이 시비라도 걸었다면? 부스스 면도도 안  백수의 전투적인 외모가 한 한 다행스러운 날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을  걷고 있던 때었다. 웬지 낯익은 누군가의 옆모습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그 분명 나를 의식하는 거 같았지만 선뜻 먼저 말을 걸지 못한 게 분명했다. 다 아닌 회사의 (전) 동료. 내가 휴직한 후 몇 달 되지 않아 회사는 IMF로 인해 절반 이상의 대규모 인력을 정리해고 했는데 그도 그 바람에 회사를 나왔던 터였다. 아마 나도 미리 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신세가 됐을 거라는 게 나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의 '확신'이다.


어쨌든 나보다 2년 후배인 그는 신입사원 시절에 회사 행사를 위해 잠시 같이 밴드 모임을 하다가 조금 알게 된 사이였다. 아는 척을 하고 인사치레를 한 뒤에 자연스럽게 음악 얘기로 넘어갔는데 걷다 보니 그와 나의 집은 길 하나 사를 둔 이웃이었다. 나는 그의 집 가보기로 했다.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면 성격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날 나는 세상에 그렇게 깔끔하게 방을 정리해 놓고 사는 사람을 처음 본 것 같았다. 마치 손님이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후로 그도 내 방에 자주 놀왔었는데 너저분한 내 방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는 깔끔한 성격처럼 기타 연주도 체계적이었고 악보도 없이 99% 감각에 의존해 연주하고 노래하던 나는 그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 그는 늘 간단하게라도 악보를 만들고 내가 보기엔 연주도 수학적으로 풀어낸 듯 보였다. 그런데 조금 딱딱하긴 했다.


어쨌거나 그때 그 길을 걷는 바람에 나는 가까이 두고 지나칠 뻔했던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로 같이 곡 작업도 하고 주말에 연습실에 모여 직장인 밴드도 하며  작은(혹은 원대한) 꿈이었던 음악생활을 이어가는데 큰 도움이 됐었다. 이후 나는 복직이 가능했던 회사로 돌아갔는데 퇴사를 했던 그는 작은 회사를 전전하다가 결국 아예 다른 분야로 생업을 바꾸었다.


결혼 이후 나는 음악 활동을 거의 멈췄고 그 뒤론 연락을 잘 못하고 살다가 3년 전 어머니 장례 때 겨우 부고를 전했었는데 반응 없이 잠잠했던 그에게 나는 섭섭함 보다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었다. 먼저 연락을 해보진 못했지만 별일 없이 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 시절 만약 IMF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한국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조금만 덜 무능하고, 조금만 덜 부패했더라면.. 당시 20대 젊은 이었던 우리 둘의 인생은 어떻게 라졌을까?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선 노쇄한 정치인의 어이없는 실수, 혹은 기만과 욕심으로 소시민들과 젊은이들의 인생이 전장에서 너무도 허무하게  소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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