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좀 있는 사내놈들은 사춘기가 되면 마땅히 쓸 곳 없는 힘을 감당 못하고 여기저기 흔적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번식기를 앞둔 짐승들이 그러는 것처럼. 수컷임을 뽐내기 시작한 놈들의 방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주위에 있는 가구나 물건들은 다치기가 십상이다. 휴지통 속은 말 안 해도..
한 반에 남자애들만 모아놓았던 나의 중학교 시절 제일 흔한 장면 중 하나는 쉬는 시간 복도에서 힘을 발산하는 것이었다. 우선 당시 인기 있던 NBA 농구 탓에 서로 점프력을 시험하기 위해 천정을 향해 솟아오르는 놈들이 많았다. 복도 정 중앙쯤에 천정을 가로지르는 구조 보(Beam)의 아랫면은 아이들의 손을 타서 까맣게 때가 타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숫 놈들끼리 아무 이유 없는 바디체크 (Body check) 였는데 마치 아이스하키 경기를 하듯이 그저 서로 몸을 힘껏 부딪히는 것이었다. 서로 눈만 맞으면 그다음엔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현상. 이유는 없었다. 그냥 쾅쾅 주로 가슴이나 어깨를 부딪히는 것인데 그러다가 상대방의 어깨나 등, 팔뚝 있는 부위를 주먹으로 치기도 한다. 상대를 봐가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때리는 것도 기술이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때리다가 다음엔 순서를 바꿔서 자기 어깨를 내주고 얻어맞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암묵적 룰이었다. 그러다 맷집이 약한 쪽이 꼬리를 내리고 자기가 때릴 순서를 포기하면 게임이 끝난다.
키는 컸지만 2차 성징이 늦게 와서 아직 뼈가 굵어지기 전이었던 나는 호르몬이 왕성히 분출되던 놈들의 펀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당시 키는 얼마 차이 안 났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있던 놈들의 손을 잡아보면 마치 아버지 같은 어른의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늦은 2차 성징으로 키만 멀대이고 근육과 뼈대가 아직 미숙했던 나는 그 '숫놈'들의 경기에 끼지 못하고 그저 링밖의 관중이 되어 흥미진진하게 구경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중1을 보내고 중2의 봄을 지나고 있을 때 즈음 나는 처음으로 몽정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보니 어깨가 조금 커진 듯했다. 맞을 자신은 없어도 가끔 이유 없이 맞아줄 만한 친한 '숫놈'들의 어깨를 툭툭 쳐보기는 했었는데, 어느 날 펀치에 실린 힘이 달라진 것을 느낀 한 녀석이 '어? 이제 좀 치는데?' 하며 내 도전을 받아주었다. 아! 드디어 나도 링 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인가? 제대로 맞아 보는 펀치에 어깨뿐만 아니라 온몸이 흔들렸지만 기분이 아주 좋았다.
펀치에 실리는 힘이 달라진 것도 알겠고, 이젠 제범 상대의 펀치도 받아 줄 만한 몸이 된 거 같긴 한데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어깨는 여전히 좁은 거 같았다.
드디어 내 몸에도 호르몬이 돌기 시작하자 원래 컸던 키가 더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도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던 내 키는 중학교에 와서는 그냥 키가 큰 축에 드는 수준이었다. 중2 겨울이 되자 반에서 제일 큰애와 비슷하게 됐고 중3 2학기가 되니까 전교에서 나랑 견줄만한 키가 몇 없었다.
중3 우리 반에는 키는 나보다 1~2cm 정도 작았지만 손가락으로 형관 팬을 휠 정도의 괴력을 지닌 녀석이 있었는데 손가락뿐 아니라 온몸이 통뼈인 데다가 팔다리도 길고 인물도 좋았다. 특히 그 녀석의 떡 벌어진 어깨는 친구인 내가 봐도 멋있어서 놈의 각진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부러워했는데, 그 녀석은 늘 자신보다 키가 조금이라도 더 큰 내가 더 어깨가 넓다며 겸손인지 착각인지 모를 소릴 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