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던 그때 (1986년) 우리나라 여자 수영 선수가 금메달을 따서 나라가 왈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당시 운동선수 중에서 보기 드문 미녀라며 더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사춘기 소년인 내 눈에 뜨인 건 예쁜 얼굴도 수영복의 굴곡진 몸매도 아닌 그녀의 떡 벌어진 어깨였다. 수영을 하면 여자도 저 정도인데.. 당장 수영 강습을 끊었다. 그만큼 어깨에 대한 내 관심은 보통이 아니었다.
어깨가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 대학생이 되기까지 늘 마른 몸이라 키는 커도 덩치가 좋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왜소하다거나 어깨가 좁다는 말도 듣진 않았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내 어깨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니 밖에서 먹는 음식도 좀 나아지고 생활이 규칙적이 되니까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별도의 지원금이 나와서 운동도 하게 되니 몸도 더 좋아졌다. 대학 동아리 모임에서 내 뒤에 따라 걷던 여자 후배가 '오빠 어깨 진짜 넓다!'라는 감탄사가 잊히지 않는 것과 동강에 래프팅을 하러 갔는데 강사가 맨 앞에서 노를 저을 '덩치'로 나를 지목한 사건 등에서 이제 나도 어디 가서 어깨로 밀리지 않을 몸이 됐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그래도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나를 보면 어깨가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인지 그래도 눈썰미가 좋은 편인데.. 스스로의 평가는 역시 객관적이기 힘들다 싶기도 했다.
그 미스터리는 우습게도 마흔이 다 돼서야 풀렸다. 해외 파견생활 덕에 얻은 골프라는 취미는 한국에서도 이어져 한 달에 겨우 한 두 번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됐는데, 경치가 좋은 홀에 도착하면 넷이 나란히 서서 드라이버를 앞에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는 게 당시 국룰이었다.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날 나는 깜짝 놀랐다. 골프를 즐기기 전에는 성인이 된 이후로 친구들과 같은 선상에 일렬로 나란히 서서 사진 찍을 일이 그렇게 없었나 보다.
네 명 중 당연히 내가 키가 제일 컸으나 단순히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이건 뭔가.. 나머지 세명은 그대로 두고 내 사진만 포토샵에서 확대를 해서 스티커로 붙여 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나만 더 앞으로 가까이 나와서 찍은 원근 효과라고 해야 할까? 왜 이런 착각이 드는 걸까? 다른 사람의 얘기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역시 스스로 객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사진을 보고도 한참이나 걸려서 인정하고야 말았다.
나는 단순히 키만 큰 게 아니라 보통의 사람을 그대로 확대를 한 것처럼 신체의 모든 부분이 컸던 것이다. 특히 머리 사이즈가 그랬다. 그러니 190의 신장에도 팔다리가 긴 그런 모델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냥 평균키 신장의 사람을 그대로 따서 스케일을 키워놓은 느낌이 날 수밖에..
과거에는 키가 큰 게 자랑이 아니었나 보다. 외할머니는 나를 보실 때마다 이제 키 그만 크라는 말을 하시곤 했고 190이 넘어 버리자 사태가 심각하다는 듯한 어른들의 걱정에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혼자 있으면 키가 별로 안 커 보여! 라며 변명처럼 하셨던 말씀이 전혀 근거 없이 했던 말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대두가 장점이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요즘 시대에 어머니가 장점처럼 말한 게 그저 넌센스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 특히 내 뒤에서 올려다본 여자 후배의 눈에는 내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어 보여도 거울 앞에선 나 스스로는 어깨가 별로 넓어 보이지 않던 이유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난 어깨가 꽤 넓었던 것이다. 옷을 사러 다닐 때도 알 수 있었던 사실이고 안경을 맞추거나 맞는 모자를 구하기 힘들었을 때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조금만 내 자신에게 냉정한 평가를 했더라면 내 어깨가 넓은데도 안 넓은 이유를 그렇게 오랫동안 모르(는 척?)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타고난 골격과 노력으로 어깨가 넓은 남자가 되어 있었다. 다만 머리도 크게 타고난 사람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