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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Jul 27. 2024

체취

감각의 저장

아이가 고무 밴드를 십자로 감아보라며 백 원짜리를 건넨다.

 

이.. 이게 백 원짜리라고? 너무 작고 가벼워서 장난감 모조품인가 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생긴 건 분명하다. 마치 예전의 50원짜리 보다도 작고 가벼운 느낌. 하긴 요즘 100원짜리를 만져 볼일이 거의 없었지..


기억이란 건 참 믿을게 못된다.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뇌에 차곡 쌓인 전기적 신호는 어찌나 휘발성이 강한지 나이가 들 수록 모든 신호와 자극에 무뎌져 가는 내 삶의 끝을 가늠해 보면 우울하다.


기억이 사라진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살아온 것인가. 왜 이리 허무한 걸까? 언제부터 인가 꿈과 현실을 혼돈하시는 어머니에게 자장가를 불러드린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노래를 돌려드렸던 그 순간. 그러자 손주의 이름도 으신 어머니의 입에서 희미하지만 정확한 노래가사가 흘러나왔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몸을 가누는 것도, 방금의 기억도, 대화조차 잘 되지 않는 어머니이지만.. 미안한 마음에 껴안고 머리를 맞대고 볼을 부비면 진하게 올라오는 어머니의 체취가 남아 있기에.. 나는 토요일마다 평화를 얻는다.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안식.

이 체취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만 받을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이기에..  순간이 아쉽고 소중하다.      (2020.12.26 어머니의 침실에서)

사진을 볼때마다 느낄 수 있던 어머니의 체취도 결국엔 다른 기억들 처럼 흐려져 사라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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