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라는 표현을 지나 인구 절벽이 코앞이라는 시대를 살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았는데, 그것도 모두 군대를 보내고 나중에 세금도 국민연금도 꼬박 내서 국가를 든든히 부양할 아들만 셋인데,현시점에서 우리 가정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은 매우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거의 없다. 애들 어렸을 때 다니던 국공립 전시시설 입장료를 낼 때 몇천 원 할인을 받았었고, 연말정산 시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환급받는정도?그래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면 급식을 최대한 많이 먹으라고 한다. 아빠 내는 세금 아깝지 않게!
나는 연말정산 시 부양가족 공제 이외에도 이래저래 세금을 돌려받으려 애를 쓰는데 아주 작지만 정기적으로 보내는 기부금으로도 소액을 환급을 받는다. 약 15년 전 회사에서 단체로 찾았던 장애인 학교의 봉사활동을 인연으로 매월 정기 후원금을 보내왔고, 몇 년 전부터는 아들만 셋이나 둔 죄(?)로 어려운 소녀들 생리대 지원 기부도 신청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적은 기부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던차 우연히 내 눈앞에 뜬 '보호종료아동 돕기' 기부 배너도 눌러보게 됐다.부모 혹은 다른 가족이 없는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만 18세가 되면 손에 500만 원 쥐어 주고 살던 곳 밖으로 내보내진다는 얘길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 아무 연고도 없는 그 아이들을 어쩌라고 의지할 곳 없는 이 험한 세상에 단돈 500만 원만 쥐어서 길 밖으로 내보낸단 말인가? 그 돈으로 얼마나 버티라는 것인가?
월 2만 원.. 매월 송금의 결정을 거의 누르려는 순간 우리 애들 셋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애들은 나중에 무사히 자립할 수 있을까? 내가 없을 때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들 셋... 지금 내가 남 걱정할 때인가? 애들 명의로 주식을 사 모아줘도 모자랄 판에..
일단... (기부를) 미루자 하고 창을 덮었다.
다복하게 열심히 살아온 거 같은데 작은 기부에도 오만가지 핑계를 찾는 나는 어느새 짐은 많고 마음은 가난한 자가 되어 있었다.
이 험한 세상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
이렇게 불안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절대 못했을 것이다.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될 때까지 솔직히 암 생각이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그 절체절명의 시간을 담아 소회의 글을 쓴 적도 있다. https://brunch.co.kr/@tallguy/51)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마음의 준비(마음먹은 대로 준비될 리 없다)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의 불안이 점점 커져 본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까지 영향을 끼치는 일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불안으로 온 가족의 영혼이 잠식되어 행복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담대하고 당당해야 할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신의 불안을 숨기지 못하고 매사에 노파심과 조바심으로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낸다. 아이들의 천진난만을 자신의 불안으로 오염시킨다. 여유가 없어진 마음은 자신의어린 시절을 돌아보지 못한다.
문득 나는 어떻게자랐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던 것일까? 불안이 가득 잠입한 집안에서 뭐가 됐든 '괜찮다 그럴 수 있다.'라는배려 깊은 말은 듣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를 수 있었을까? 이렇게 불안하지 않고 큰 나무처럼 아이들을 감싸 줄 수 있을까?
나에게 아버지는 말씀보단 폭력의 잔재가 더 깊이 오래 남아있었다. 불행히도 이를 완전히 극복 못한 채 어른이 된 나에게 아버지는 가깝지만 가까이하기 힘든 이상한 사이가 되어있다.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지 자신이 없다. 어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슬픔의 눈물이 터져 나올까? 그럴 수 있을까?분명 아버지의 그늘과 울타리는 성인이 된 다음에도 충분히 누렸을 만큼 그 존재감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고마움과 원망의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늘 대립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자기의 기준이 확고했던 분이셨다.
당신이 아버지 없이 어려서부터 힘들게 자라온 탓인지는 몰라도 스스로도 가족도 있는 그대로 편히 두는 분이 아니셨다. 그건 좋다 나쁘다 쉽게 정의하기 힘들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타고난 습성을 방관하지 않고 늘 지지하고 독려해야 한다는 것은 그 시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쏟아냈던 그 압박들은 자식들에게 차곡차곡 쌓였다가 결국 자신에게도 돌아갔다.
그래도 희미하게 하나쯤 남아 있을 기억이 없을까? 그럴 수 있어. 괜찮아하며 안아줬을.. 어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 따뜻한 품이었다고 느꼈을 그런 잠재적 기억은 몇 개쯤은 없었을까?
왜 아니겠는가? 어머니는 한 번도 부정적인 적이 없으셨다. 너는 좋은 아이다. 잘할 수 있다. 큰 사람이 될 것이다. 늘 아들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때도 지금도 늘 무엇이든 잘할 수 있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익숙하다. 그러나 그런 염원에 가까운 칭찬을 자주 듣던 나라는 아이는 어머니의 그런 객관적이지 못한 과한 기대와 응원의 깊은 뜻을 모른 체 늘부담스러워했다. 현재의 우리 아이들에 대한 나의 객관적이다 못해 실랄한 평가질은 어쩌면 내가 받은 교육의 반작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헤아려보니 미안하고 어머니께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의 어머니는 아낌없이 퍼주고 또 퍼주는 나무 이셨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와는 달리 그립고 또 그립다. 어머니의 짙은 체취가 기억 속에 점점 옅어지는 것이 너무도 슬프다. 자식은 이렇게도 이기적이기만 해도 되는 걸까?그 모든 사랑을 받고도 그것이 부모의 역할임을알면서도 나의 아이들에게는 받은 만큼 베풀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는 나는무엇이 다른 것일까? 생물학자와 진화론자들이 흔히 얘기하는 수컷의 특질에 기대서라도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