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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Aug 24. 2024

계약직

우리가 공감하는 것에 지친다면 세상은..

이번주가 마지막 출근인 우리 계약직 친구는 오히려 나를 대할 때마다 너무 해맑다.

감정이입이 지나쳐서 인지 나는 마주칠 때마다 표정관리가 힘들다.


'일단 휴직 급여받으면서 한 두 달 쉬다가 다시 어플라이 해보려고요.'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다른 회사에서는 사람을 아예 안 뽑는 거 같다며 후일에 다시 보게 되기를 기약하는 그 표정도 어둡지 않았다. 미안할 정도로.


계약직이 회사에 다시 출현하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런 게 있는지 처음 알게 된 것은 2000년 초반 IMF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는 회사에 그 숫자가 꽤 많았었다. 우리 회사는 IMF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자 모범적으로 계약직(당시 '문 용역직'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직원들 중 평가가 좋은 사람들을 선발해서 상당수 정직으로 전환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경제위기의 상처를 모두 공감하던 시절이었고, 아직 사람을 차별하는 시선에 물들어 있지  순수의 밀레니엄 시절이었다.


회사의 좋은 평가를 받아 정직으로 전환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사는 것, 상상만 해도 참 피곤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 같은 성격은 '더러워서 안 하고 말지'가 목구멍까지 차 오른다. 그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감정적이고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혀를 깨물며 참아야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오는지 아는 사람은 알 테니... 보통의 인내심과 인성, 그리고 실력까지 겸하지 않고서는 문이 열려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래 차라리 모두 공평하게 닫혀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했을 다.


그 시절 현장에 근무할 때 그렇게 해서 정직으로 받아들여진 사람, 그리고 아쉽게도 계약기간이 다 차서 떠나는 사람 모두 보았다. 아쉬운 마음에 떠나야 하는 사람에게 아끼던 디카를 선물로 주었었는데 그 친구는 다행히도 나중에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가웠다. 그녀는 이제 설계 사무소보다 갑의 자리에 있는 셈이다.



IMF로 양산되었던 권고사직 그 이후 경기가 점차 나아지면서 부족해진 인력을 급조하기 위해 대거 편성되었던 계약직과 아르바이트. 기업들은 불황의 늪으로 다시 들어갈 조짐이 보이지 않자 눈치를 보며 계약직들 중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OB였거나, 뉴페이스 계약직들 중 평이 좋은 사람들 중 일부를 정직으로 전환해 주는 시기를 보냈다. 러나 그 뒤 시간이 지날수록 점경력직을 정직으로 전환하여 주는 문은 다시 단단히 닫아걸었다.


이후 프리랜서라는 말이 돌았다. 프리랜서는 한마디로 정직도 계약직도 아닌 그냥 일반 자영업자나 다름없는데 사무실에 자신의 컴퓨터를 들고 들어와서 직원의 한몫을 하는 사람들을 칭했다. 호칭도 적당히 불렀다. 하는 일은 조금 달랐다. 직원들이 하기 힘든 일이거나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 보다는 경력이 좀 있고 생활고가 턱 밑까지 차올라 일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또 한편으로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다 보니 노련하게 실무 해결 능력이 뛰어난 경우도 많았다.


나름 생활력이 강하고 연배들도 있어서 이분들을 떠나보낼 때는 여리고 아픈 청춘들 보다는 마음이 덜 미안했는데, 사무실의 머릿수를 채우던 인력들 중'인턴사원' 혹은 '아르바이트'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친구들의 신분은 아직 학생인데 방학 혹은 휴학 중이거나 졸업을 취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 들이었다.


'희망고문'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대기업인 우리 회사는 계약직과 마찬가지로 인턴사원이 아무리 열심히 생활을 하더라도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는 정식 취업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라는 조건으로 사람을 뽑는다. 그러나 막상 마주친 이들의 보여지는 태도와 눈망울들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도 사람의 일인데 열심히 하다 보면...'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비치는 것은 나의 지나친 착각일까? 아니면 젊 그들의 한 주장일까?


인턴 기간이 끝나고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 중에 '이 일 하다 보면 분명 어디서 또 보게 될 거야. 어디서든 열심히 해!'라든가, '잘하니까 잘 될 거야. 나중에 우리 회사도 꼭 지원해라!', '이제 뭐 할 거니? 그래 젊을 때 놀아라!'  등등.. 아무런 책임도 도움도 안 되는 말들을 하고 돌아서면 나도 이렇게 공허한데 듣는 과연 사람들은 어땠을까 싶다.


이런 이별에 익숙해진 나도 이제 섣불리 정을 붙이는 것에 지쳤다고 해야 할까? 몇 년 전 옆자리에 두 달 가까앉아 있는 동안 말도 몇 마디 건넨 기억 없는 친구였는데 수중에 들어온 귤 하나를  나누어 준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잘 챙겨줘서 고마웠다' 며 카드에 손편지까지 쓰고 간 한 여자아이가 나를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또 그 순수함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뒷 면에 나의 캐리커쳐도 그려 주었다.




계약직 문제의 절충적인 해결 방법은 이 만화책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의 고용 탄력성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대우를 더 잘해주는 방법 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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