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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Aug 31. 2024

도전에 지친 인생

오늘 밤은 평화롭게

매년 8월은 4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음악 대학 동아리의 창립 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까지 하고 겨우 대학에 들어간 난 꼭 하고 싶었던 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드럼'을 쳐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테니스'였다.


입학 후 딱히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해 과방이나 들락 리던 내게 모교의 캠퍼스에 아지트가 있던 연합음악 동아리에 입부하는 운이 따랐다. 공대생이었던 나에게 여대생들과 교류가 가능했던 연합동아리라는 매력만으로도 나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환경이 좋지는 않았지만 동방에는 쳐보고 싶던 드럼세트도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동기에게 기본기를 배워 테니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전공 이외의 것 들 중 나의 대학시절을 가득 메웠던 것은 바로 '기타'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절친 친구를 따라 동네 레코드 가게 쪽방에서 머리를 '송골매'처럼 기른 날라리 형에게 코드 잡는 법을 조금 배운 게 전부였던 나는 1학년 겨울 방학에 그 실력으론 엄두도 안 나던 어려운 연주곡을 겁도 없이 공연곡으로 선정하여 손가락 끝이 까지도록 연습을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의 '못다 한 내 마음을'이라는 퓨전 재즈 연주곡


당시 동아리에는 체계적으로 후배를 양성하는 시스템이나 음악적으로 본받을 만한 뛰어난 롤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재주로 무슨 음악을 하려고 하는 거니?' 하는 식의 비웃는 선배들이라니..


어려서 피아노를 배운 덕에 어떤 음악이든 코드와 음계를 듣고 딸 수 있는 귀가 열려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악기를 맡아야 하는 동기들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식으로 독려하며 무모한 강행 끝에.. 결국 우린 무대에서 큰 실수 없이 기립 박수(내 기분엔)를 받으며 완곡을 해 내었다. 그 공연이 녹음된 테이프에 담긴 현장의 분위기는 그 해 봄에 드럼 파트로 뽑힌 신입 후배가 몇 번이고 듣고 감동할 만큼 열정과 노력이 전해진다.(.. 고 했다.)


그렇게 난이도가 있는  연주곡을 해보겠다고 덤빈 배경에는 고등학교와 재수학원에서 친해진 친구들 주위로 기타로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 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엔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나는 억척스럽게 준비해서 말도 안 되는 어려운 곡들을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더 감행을 했었다. 녹음이나 녹화된 것을 지금 들어본다면 미흡하기 짝이 없고 아쉬움도 많으나 정말 열심히 했었고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밴드 멤버 모두 축배를 들며 행복해했다.


현재의 나의 삶에 아무런 연관성도 찾을 수 없을 거 같은 이 악기와의 인연으로 나는 매년 열리는 동아리 창립제에 나서게 된다. 여전히 나를 기억해 주는 선배들 후배들.. 어쩌면 그 한때의 대단한 열정이 대학을 졸업한 뒤로도 30년 가까이 후배들과 교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지도 모른다. - 물론 이 날은 적당한 퍼포먼스를 곁들인 술과 대화가 메인이다.


후배 가수들에 둘러싸인 원로가수 리사이틀 같은 분위기가..


나는 그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기타는 이제 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이렇게 소원해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멀어져 있다.


서른이 넘을 때까지 끌고 오던 음악 활동은 결혼 즈음에 현실을 직시하며 건축사 자격증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멈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수는 없다. 기타 연주를 포함해 청춘을 가득 채웠던 나의 음악 활동은 몇몇 데모 음원들 이외에도 나에게 '하면 된다.'라는 나름의 승리의 경험을 남겨주었고 그것은 이후 직장 생활에도 분명 영향을 끼쳤다.


디자인 과정에서 당시 회사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3D툴로 한 땀 한 땀 구석구석 모든 것을 재현하고 연출하여 해외 디자인 상을 받게 되었던 제주도 프로젝트. 또 회사에서  아무도 안 해본 BIM 이란 것도 최초로.. (그런 고난은  늘 나에게..  -_-;)


그런 도전으로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왜 나는 그렇게 도전을 하며 살았고 과연 그 결실은 충분했던 걸까 생각하면 난 잘 모르겠다.


지금도 내가 도전하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어머니의 영향인지 몰라도 나는 안주하지 않고 불편하게 사는 인생에 익숙하다. 오히려 아무 문제 없이 편하게 굴러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의 잠재의식은 왜 편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어쩌면 대한민국에 살면서 중년의 시기를 지나는 나는 특별히 다른 과제를 정하지 않아도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한..


오늘을 즐기라 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화롭게 안주하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현재의 도전을 즐겁게 받아들이라는 뜻일까?


나의 가장 큰 도전은 이제 질풍노도와 같이 몰아치는 것이 아닌, 우리 가족을 포함한 내 주위의 모두가 평안하게 지내도록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것으로 하고 싶다.


오늘 밤 만이라도..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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