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헬스장에 가서 거꾸리에 매달릴 때마다 지구는 나를 정말 한시도 놓지 않고 엄청난 힘으로 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엄청난 힘으로 당기고 누르기에 우리의 육체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으스러져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겨우 한 시간 남짓한 운동시간 중에 나는 두 번이나 이 거꾸리에 매달려 생명의 끈이 역방향으로 당겨져 혹시나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나는 이 중력의 힘에 못 이겨 언젠가는 서지도 못하고 앉고 눕다가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여 피부가 썩고 죽어가겠지. 이런 게 인생.. 아니 지구상에서 태어난 생명체의 운명일 테지
하면서도 중력의 횡포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없을까 궁리해 본다.
1. 물에 들어가면 부력으로 상쇄되지 않을까? : 지구의 최장수 동물이 바다에 살고 있는 걸 봐선 뭔가 그럴듯하다.
2. 걷거나 뛰어서 원심력을 발생시킨다? : 그냥 서 있는 거보다 걷는 게 차라리 덜 힘든 게 혹시 이 이유? 뛰는 게 건강에 좋은 것도? ㅋ 그럼 매일 더 빠른 속도로 차 타고 다니면 건강에 제일 좋겠네?! 메렁이다.
주말마다 헬스장에 다닌 지도 20년이 되어간다. 날씨가 괜찮으면 자전거와 골프를 병행하곤 했지만 일주일에 겨우 한번 가는 운동을 가급적 거르지 않으려 한다. 나의 헬스인생은 가늘고 길다고 해야 할까? 애당초 몸을 어떻게 만들어 볼 생각은 없었고 그저 한 시간 정도 닦고 조이고 하다 보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재정비되는 기분이 든다.
어려선 일요일마다 성당에 다녔다. 자의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 재미도 있었고 성가대 활동은 음악적 토양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사는 역시 지루해서 적응이 안 되고 결국 입시를 핑계로 점차 발길을 끊었었다.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부터는 아버지만 혼자 성당에 가셨다. 누구 못지않게 깐깐하고 현실적이시지만 깊이 자리 잡은 신앙이 당신을 지탱해 주는 거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만과 불신으로 가득했던 사춘기 이후로 신도 귀신도 철저히 배제하며 살아온 나에게 있어 헬스장은 마치 교회와도 같은 곳인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거꾸리에 매달린체 나의 종교는 육체인가 하는 가볍기 그지없는 상상이 끊이지 않곤 했다. 어쨌거나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찾게 되는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이다 보니..
어쩌면 진정한 안식은 결국 현실의 구원에서 온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투병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어느 날오염된 침구로부터 어머니의 몸을 겨우 빼내어 욕조에서 씻겨드리면서 이 무겁고 통제를 잃은 아내의 육체를 80 노구의 아버지는 요즘 어떻게 감당하실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화석처럼 책꽂이에 남겨졌던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다시 읽기 시작하셨던 아버지는 당시 신앙의 힘으로 어머니를 겨우 끌어올리신 것일까? 나는 그저 그 순간에도 꾸준히 해온 스쿼트 덕을 본다는 생각을 했었다. 같은 날다른 장소에서 마주친 눈물과 땀에 젖은 온갖 몸뚱이들의 잔상이 게시처럼 남아 되뇌며 잠을 못 이루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강연을 보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나도 언젠가 너무도 안 좋은 생각이 의식을 지배하다가도 문득 죽음 앞에서 모든 게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아직 살아 있는데 죽은 건 아닌데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을까? 있다 해도 그게 쉬울까?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병사가 탄 탱크가 강력한 미사일 한방에 굉음과 화염에 휩싸이고 몇 초 뒤 산산조각이 난 그을린 탱크 주위론 그을린 마네킹처럼 몸이 굳은 병사의 시신, 혹은 산산이 부서져 뼈도 찾기 힘들 정도의 파편만 낭자한 잔혹함이 퍼져나가는 세상.
그러나살인은 중력과 시간 앞에 맞서야 하는 죽음과는 다르다.
어디선가 접했던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라는 말은 묘하게 퇴폐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인생의 철학이 담겨있다.살아 있는 오늘도 우리는 '죽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