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하고 맛없는 사무실 최상층 푸드코트가 지겨워서 오늘 누구랑 밖에 나가서 먹어볼까 생각하는데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회사를 30년 가까이 다녔는데 오래다닐수록 점심 한 끼 편히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느낌적인 느낌은 내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걸까.. (후자 쪽으로 강력히.. 믿고 싶다.)
그래서 변명거리를 찾아본다. 인생은 원래 나이가 들 수록 밥을 혼자 먹을 일이 많아진다. 느닷없이 무턱대고 함께 하기엔 다들 사정은 많아지고 조심도 늘어나니..결국 독거노인이 되신 나의 아버지도요즘대부분의 끼니를 혼자 드셨을것이다.
나는 마흔 중반이 돼서야 혼밥에 적응해야 하는 인생인걸 깨달았다. 먹고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것. 그리고 그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 그러다가 이제 밥을 함께 먹을 이가 없게 되는 것. 인간에게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어떠 의미이길래.. 이리도 점점 어려워지는 것일까?
아침마다 열심히 물을 주고 비료도 주어 정성껏 채소를 재배하고 수확해서 다듬고 썰고 버무리고 담고, 뒷 산에 올라가 어딘가를 한참 뒤적거려 무언가를 채집하여 또 씻고 썰고 익히고 재워 두고.. 누구를 위해 저렇게도 부지런히 움직일까 했는데 마땅히 대접할 일도 없는 자연인. 2012 년부터 시작된 그 프로그램이 소재 고갈이 되지 않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건 우리나라 산속에 독거인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가끔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좋은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어쩐지 그 장기 방영 사실이 조금은 웃프기도 하다.
그나마 자연이라 덜 슬픈 것일지도 모른다. 밥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분들이 도시에는 없을까? 도시는 오히려 더 살벌한 적자생존의 야생일지도 모른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하여 고독사 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누군가는열심히 쓸고 닦고 주위를 정돈하고 장을 보고 씻고 썰고 양념하여 정성스레 익히고 담고 맛있는 만찬을 차리고 홀로 만끽하고 다시 주섬주섬 담고 치우고 씻고 정리하고 닦고살고 있다.
인간도 동물인지라.. 감상적으로 슬프게 볼 일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야생의 어떤 생물과도 다름없이 생명 유지를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는 것이 뭐가 이상하랴.그러나 겨울을 위해 볼 한가득 도토리를 담고 부지런히 천적을 피해 뛰어다니는 다람쥐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홀로 서기 위함이 아닐지도 모른다.그런 것이다. 자기 목숨하나를 부지하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는 행위의 정당성. 나는 지금 왜 생존해야 하는 것인가?
제주도 자취방에서의 기억.
위에도 썼듯이 나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사람이었다.회사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제주도로 파견을 나가게 되어 방을 구하고 겨우 몸을 뉘었을 때의 그 쓸쓸함은 6개월 기약으로 수천 km 떨어진 중동 지역의 어느 호텔방에 누웠을 때 보다도 더 심하게 생존을 위협하였다.
호텔을 보금자리로 삼는 사람들도 혹시 이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일과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문 앞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인사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사실.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 그리고 식사도 자연스럽게그들과 섞여서 할 수 있었다는 점.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퇴근 차량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딱히 다른 약속이 없는날은 철저히 원룸 오피스텔에 혼자 버려진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없는 야산에서 생존하는 자연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제주라는 낯선 자연에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하는 진귀한 체험을 해보았다.
틈만 나면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버는 한 달 월급의 대부분을 친구, 후배와 마시고 먹는데 돈을 써도 아깝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중년을 지나 이제 어느새 모임도 가려서 나가게 되고,점점 뻔한 얘기들을 주고받는 상상에 약속을 만들기 전부터 염증을 느끼며, 그 좋던 골프 모임도 상대를 점점 따지고 뒤풀이를 어떻게 하면 줄이고 부담 없이 귀환할 수 있을까 머리를 쓴다.
따져볼수록 나의 주장이 맞는 거 같다.
나이 들 수록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줄어든다. 나이 먹은 사람끼리도 점점 서로 피하는 이유가 생긴다. 결국 고만고만한 지식과 상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이젠 서로 식상하다. 공감은 가지만 관심은 가지 않는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거나 정치얘길 하거나 해서 점점 귀를 열어 두는 데에 인색해진다. 그래서 결국 원초적인 이야기로 빠지고 함께한 시간이 허무해진다.
꽤 흥미로운 대화인 '알쓸신잡'을 보면 깨달을 수 있다. 원숙한 사람들의 대화가 가치가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통찰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침침해지는 노안과 함께 책도 점점 멀어져만 간다. 누구 탓을 할 수 있겠는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고 지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다만 각자 알아서 조심하고 노력해야 할 뿐.
브런치의 어느 글을 읽다가 느꼈다.나이가 들 수록 다른 운동은 접고 골프에만 다들 모여드는 이유가.. 바로 팀원이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물론 골프도 팀플레이도 가능하고 상대와 경쟁하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골프는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유리한 경기이다. 내 스윙에 집중하고 타인의 실적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18홀 내내 혹은 한 번의 스윙조차도 외부와 단절하고 철저히 자신만의 고립된 시공(時空)을 만들수 있어야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 수록 절친 했던 친구들조차도가족과도 거리가 생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은 누구도 끝까지 나와 함께 할 수 없다. 인생은 결국 혼자다.
위의 링크 글에 나오는 슬램덩크는 인생에 있어서 찬란한 봄에 해당하는 시기에 눈빛하나 숨소리 하나에도 서로 반응하고 뒤엉켜 지내도 불편을 잘 모르던시절에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이 우리를 요동 치게 하였는지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수백만 원의골프 장비를 저 농구공 하나와 맞바꾼대도절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위하지 않는철저히 홀로 된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무엇을 하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걸 즐기려면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할까? 인간은 적응을 하기 마련이겠지만.. 죽기 전에는 누구라도 한 번은 거쳐가야 하는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에 나온 '자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