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이후로한 순간도 분리된 적 없는 어머니의사랑의 힘으로 살아오고 버텨왔다. 아니었다면 나는 누구의 관심도 받기 전에 진작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나의 관심 따윈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신음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대로 가신다면 그것이 나는 당신께 갚지 못한 무관심으로 비칠까 봐 두렵다.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까 봐 놓지 못한다.
나는 이제 이런저런 다른 관심들을 주렁주렁 달고 혼자서도 어찌어찌 굴러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것이 시간에 좀먹어 결국 하나둘씩 떨어져 나갈.. 어머니의 사랑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것들 일지라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내 걱정만 하시던 어머니를 나는 정말 어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생각나지 않는 2021년 어느 여름날 -
올해 초 총선 이후 전화를 계속 안 받으시던아버지. 우리 집 막내 전화도 안 받으시고 문자에 답장도 안 하셨다.동생과 있는 단톡방에 '국민이 5류 쓰레기다.'라든가 '00당을 통해 악마를 보았다.'는 식의 제목부터 억지스럽고 구린내가 진동하는 썸네일의 유튜브 영상과 글만 불쑥 몇 개올리시더니 연락이 안 됐었다.
어지간해야 링크를 열어보지.안 봐도 알 거 같기도 하고.. 동생과 나는 그런 톡엔 아무런 리엑션을 하지 않는다. 어느 겨울에 갑자기 훅 들어온 아버지의 정치 드립에 정색했다가 쌍욕을 얻어먹은 적도 있었기에.
요즘 정치에 관심이 많은노인분들 중공중파 뉴스는 거르고 저런 유튜브만 보는 분이 많다고 한다. (편향적 종편 TV 채널은 차라리 나은 편이다.) 인터넷의 시대가 오면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얻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의 자유가 올 줄은 몰랐다.
인간은 늙고 병들고 지쳐 쓰러져 결국 임종을 맞는다. 죽음이라는 과정에 있어 인간은 단순히 호흡을 멈추는 것만이 아니라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상상을 해왔다. 그만큼 인간은 육체로 국한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생각과 정신이라는 무형의 존재감이 큰 만유의 영장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생각도 정신도 뇌라는 육체에서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 역시 예전과 같지 않은 기억력과 순발력그리고 결국 흔들리는 판단력까지 노화에 따라 정신도 다른 신체의 변화와 다르지 않음을 스스로 느낀다.
정치인의 탈을 쓴 한 유명인에게 판단력을 온전히 빼앗긴 자신의 아버지의 심적 평안을 위해 결국 모든 것이 말도 안 되는 거짓인걸 알면서도땀 흘려 벌은 억대에 가까운 돈을 후원계좌로 직접 송금한 친구의 얘기를 듣고 이게 정말 어찌 된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며 위안을 삼았다고 해야 할까.
늙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늙고 약한 자를 노려 이익을 취하는 자들은 정말 사악한 자들이다. 그 피해의 범위는 한 노인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 손주의 미래의 밑동부터 썩게 만든다.
'거기 아저씨!.. 여보시오!'
곁눈으로 봐도 악취가 모락모락 날것만큼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 두 분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를 향해 손짓을 하는데 호객이나 구걸 행위에 익숙해진 내 몸은 순간 반사적으로 쓱 외면하고 자연스럽게 지나쳐 버렸다.어느 평화롭던 퇴근길 분당 서현역 고가 위 빠르게 지나치는 와중에도 두 분 중 한 분은 휠체어에 앉아 계신 걸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이미 10M가량 멀어졌음에도 뒤에 남겨진 할아버지의 목소리엔 뭔가 절박함이 느껴졌다.
도와달라는 거 같았다.갈길 계속 가려는 몸과 혹시나 하는 마음이 겹치면서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돌아봤다.
'아저씨 뭘.. 도와달라고요?'
불편한 온몸으로 그렇다고 하시는 거 같아서 가까이 가봤다. (길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하필.. -_- 키가 커서 그런 건지 이런 일이 잦은 거 같다.) 아저씨는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곁에 계신 할머니 옷소매를 꽉 잡고 계셨는데 할머니는 그 손을 계속 뿌리치고 계셨다.
몸이 불편한데치매가 있으시다고.. 경찰서에 연락을 해달라고 하셨다. 처음엔 대체 두 분 중 어느 분이 치매란 얘기인지.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치매라고 하시고, 손을 뿌리치려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치매라고 서로의 탓을 하고 계셨는데 그러고 있는 와중에어느 젊은 여성분이 곁으로 와 같이 두 분께 말을 걸어줬다.
할머니는 바퀴가 달린 보행 보조장치를 잡고 계셨는데 (밀고 가다가 잠시 의자처럼 쉬어갈 수 있는 우리 어머니도 갖고 계셨던 물건이었다.) 그 젊은 여성분이 거기에 붙어있는 보호자 핸드폰 번호를 발견하여 전화를 하려니까 할아버지가 그건 자기 폰 번호라며 제발 경찰을 불러달라고 하셨다. '아 할아버지 말씀이 맞겠구나' 하고 나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걸을 수 없는 할아버지와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
두 노부부는 서현역 바로 앞 아파트에서 분당신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거주하셨던 주민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이후로 거의 외출도 못하고 집에 거의 갇혀서 지내시는 중인데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 어렵게 산책을 나오면 꼭할머니가 중간에 할아버지를 버려두고 혼자 사라져서 그동안에도할머니를찾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수서역에서도 찾은 적 있고 어디에서도 찾고...)그 짧은 순간에도안타까움이 깊이 전해졌다.
오늘도 할머니는 젊은 시절 살던 옛 동네에 혼자 가시겠다고 지하철을 타시려는 걸 할아버지가 겨우 남아 있는 손아귀힘으로 할머니 옷소매를 억세게 꽉 잡아 붙들고 버티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던 것. 할머니는 내가 옆에 있어도 막무가내로 할아버지 손을찰싹찰싹 때리며 뿌리치려고 하신다.
서둘러 경찰서에 연락을 하고 혹시나 몰라서 곁에 서서 할머니를 같이 지키는데 두분 모습이 너무도 초췌하고 남루해서마음이 아팠다.
'혹시 자녀분들께 연락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그런데 할아버지가 두 눈을 찔끔 감으시면서 자식이 없다고 하신다. '아... ' 잊혀지지 않는 그 눈빛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여쭤보지 않았다.
신고한 지 5분 만에 가까운 파출소에서 건장한 젊은 경관 둘이 나타나서 무사히 인계하고는 돌아서서 오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길 잘했구나천만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 마음이 울컥.. 훤한 대낮 길 한복판만 아니었다면 맘만 먹으면 울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남아계신 아버지.. 그리고 나의 미래의 모습까지도.
최근 서현역 일대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러운 인생이지만 누군가의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을 수 있다. 관심이 없는 곳에는 목적만 있을 뿐이다. 목적만으론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영혼도 생명도구할 수 없다. 오직 관심과 사랑만이 그런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까. 나 역시 이미 늙어가고 더 늙을터이지만.. 한 가지 소원한다면 이 넓은 우주에 비해 몇 안 되는 지성을 갖춘 존재로 태어나 감사히 살며 이루어온 나의 존엄이 무너지기 전에 내 몸이 먼저 무너져 소란도 인지부조화로 인한 과오도 없이 어느 날 조용히먼지로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