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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Oct 05. 2024

영원한 안식과도 같은

울다 지쳐 잠이 든 이후 세상은 뒤바뀌어

나는 잠을 자기 위해 깨어 움직인다.


달콤한 꿈 만도 못한 세상을 위해

몸을 뉘어 쉬는 것이 아닌,


오로지 숙면을 위한 피로를 만들며 산다.

삶에 지쳐 쓰러져 꿈속에서 쉬어간다.




인간이 매일 밤 잠에 드는 것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괴상한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죽음에 까지 이르는 그 험난한 길에 대한 두려움으로.. 항간의 이슈가 되었던 조력사망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발생한 오류 같다.


아무리 죽음을 고통 없이 안락하게 맞이할 수 있다 해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삶을 끝낸다는 것이.. 자신의 의식 세계를 자신이 끝낸 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 결국 자살과 다를 게 없는 슬프고 허무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하는 생각이 들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삶이 멈춘 경험은 당연히 내게 없지만 마치 잠시 삶이 끊어져 공백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 적은 있다.

'약 들어갑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수면 내시경의 경험. 곧 다시 눈을 뜰 거라는 예측 없이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지불식간에 의식을 잃는 순간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영면 혹은 영원한 안식과 같은 깊은 잠에 빠지는 것으로 비유이유라 생각됐다.


'죽는 게 쉽다면 혹시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1년에 한 번 하는 건강 검진이 그리 싫지 않게 되었다. 수면 내시경을 받을 때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이 끊기는 순간은 이제 신기한 체험을 넘어 살짝 즐긴다고 야 할까. 나중에 알고 보니 순간 기억을 끊어 버리는 그 신비 약특수계층불법 상습 투여로 뉴스에 자주 나온 프로포폴이라는 약물이었다.


나는 천식 환자임을 밝혔기 때문에 늘 비 수면 내시경을 권유받는다. 나는 위내시경 보다도 프로포폴 체험에 더 진심이라 고집스럽게 수면 내시경을 선택하면 항상 천식 흡입약을 필참 해야 하고 무슨 각서 같은 곳에 인도 하라고 한다. (경증인데도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정말 나를 위해서인지 경비를 줄기 위함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처음엔 겁도 났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평안히 의식을 잃은 채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천식 때문이 건 뭐건 이대로 안 깨어 나도.. 나쁠 거 없지 않나?' (못난 아빠를 용서... 쿨럭) 마치 삶에 공백이 생긴 듯이 아무런 고통도 신호도 없이 의식이 사라진걸 몇 번 경험을 해보니 이것은 잠과는 다른, 마치 죽었다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죽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 약이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들었다.


'죽는 게 제일 어려워!'


어머니의 상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안 좋아졌을 때 에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외마디. 자식들 앞에서와는 달리 자신의 신세가 너무 비참한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선 종종 응석을 부리셨다. 그러나 말씀처럼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한보 한보 처절한 내딛음이었다. 절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와중에도 자신에게 들어가는 돈 걱정을 많이 하셨다.


돈과 권력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는 것은 다가오고 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문득 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 어깨에 짐만 가득한 느낌이 들 때, 노후 대비란 게 대체 무엇일까 생각 보면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니 이제 별로 보고 싶은 것도 상에 라는 것도 점점 없어다. 


누구의 말투처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순간이 되어 사라질 쾌락과 즐거움보다는 단지 비참한 결말을 피할 수 있다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죽음으로 가는 고통스러운 길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 위내시경 하듯 문진표 내고 각서 쓰고 결재하고 '약 들어갑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서.. ㅅ 도 다 못 세고 갈 수 있을 만큼 간단해진다면 어쩌면 세상에 큰 근심이 하나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희망이 떠오른 것이다.


힘들었던 가족사로 인해 생각이 많아진 걸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조력사망 제도는 필요할 수 있다. 무책임과 방임과 방조 혹은 음모로 혼돈의 세상이 올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점차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다. 자격과 절차를 촘촘히 잘 마련하여 보통의 삶에서도 죽음으로 가는 길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막연한 불안에 잠식된 영혼을 되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래서 편안한 죽음이 오히려 편안한 삶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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