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해지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조언까지해야 했을까? 세상에는 어떻게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지만, 뭐든지 습관적으로 책임을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스스로 더 깊은 책임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도 힘들지만 진실을 절묘하게 피해서 말하기도 어렵다. 진실을 피하려다 거짓을 입에 담는 실수도 많이 하게 된다. 진실을 얘기하지 않고 거짓도 피할 수 있는방법이 과연 있을까?
1. 침묵하거나 다른 얘길 하기
그러나 이 방법은 상대방이 나보다 강자일 때 먹히지 않을 수 있다. 회피하려는 나의 의도가 뻔히 읽히면 제재를 당하거나 태도를 바로 잡히게 된다.
2. 책임 없는 대화
그렇다 아니다 옳다 그르다 하는 정의를 스스로 내리지 않고 듣는 이가 판단할 만큼정황만 얘기를 하는 방법도 있다.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그걸 그렇게 해석한 것은 너의 책임이다라고 둘러 댈 수 있는 정도.이 방법을쓰면 상대는 무능하거나비겁하다 여길 것이다. 그러나매일 올라오는뉴스만 봐도세상은 온통 이런 사람들 투성이란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진실과 무책임의 접점을 종종본다. 업무상 자주 가는 강남의 한 구청 로비에선관 주관으로 연주회를 하고 있고 마당 바로 코 앞에서는 붉은 조끼를 입은 일단이 못 살겠다며 고성방가를 하는 식으로 일상이 흘러가도 늘 태연하다.
오늘따라 밖에선 누군가 죽기 살기로 더 고성을 지른다. 간사한 내 귀는 관내에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소리에 더 행복해하며밖의악다구니엔나도 모르게 눈을 찡그린다. 이런 나의 무관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건 그 들이 내뱉고 내거는 텍스트들 뿐이다. 현장에서는 언론의 도움 없이도 어떤 소리가 더 의미 있고 들어야 하는 소린지 짐작할 수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 - 에너지는 삶과 죽음을 가로질러 흐른다. 이곳은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 저들의 행동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가? 왜 기자들의 그림자 비슷한 것도 없을까.
딥 페이크 - 이미 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인데 한탕 지나고 숙성이 되어서야 겨우 가늠이 되던 진실의 행방조차도 이젠 점점 더 밝히기 힘들어지려나 보다. 옳고 그름은 애당초 인간 따위가 정의할 수 없거나 인간들 따위나 따지는 것 인지도 모른다.
관심 없는 축구경기를 틀어놓고 지는 편을 응원하다가 역전이 되니 또 재 역전을 기대하는 식으로 누가 이기든 지든,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진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푼 돈을 훔치면 도둑으로 몰리지만 나라를 훔치면 영웅이 된다는 것도 옛날 얘기가 아니었다. 범죄를 규정하는 현재의 법의 잣대는 여전히 800원과 50억의 무게를 멋대로 해석한다.
안면이 있는 공무원을 구청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아무렇지도 않다. 무관심인지 무책임인지 구별도 어려운이 혼란 속에,가끔 오는 나조차도 아무렇지 않지 않다고 느끼기가어려운데 매일 봐야 하는 그는 오죽할까?
내가 왜?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 전에무책임해지라는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세상이 어느방향으로 흐르는지 말하기 힘든 곳에 나는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