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20년 후에 당신의 딸도 곁으로 갔다는 걸 깨달았다. 20년..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시간. 할머니는 20살 즈음에 첫째인 어머니를 낳으셨다. 어머니는 30살에 나를 낳으셨으니나의 남은 수명은.. 앞으로 최소 30년쯤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계산을 해본다.
내 나이 이제 50대. 정년퇴직을 10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그 이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어머니 나이를 헤아려보고는 은퇴뿐 아니라 곧이어 다가올 죽음도 대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행복한 거라고 - 조인성이 어떤 예능에 출연해서 비슷한 말을 했던 거 같다. 장기하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 역시 그런 뜻이 아니겠나.
별일 없으면 무료한 게 아니고 행복한 거라니. 그러나 그동안 인생에서 겪었던 몇몇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떠 올려 본다면 맞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눈앞의 이 공간 음식 음악 가족 사람들이 다 별일이 없어 보여도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소리.
알면서도 왜 몰랐던 걸까? 인간은 왜 평안한 일상의행복을 쉽게 깨닫지 못하도록 진화했을까? 문득 아버지에게도 나에게 있는 이러한 DNA의 특질에 장점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분명 수십만 년동안 이런 특질이 소멸되지 않고 멸종되지도 않고 혈맥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시.. 평안과 보통의 일상보다 위기의 순간이 생존에 있어 더 중요한 변수였다면? 무료한 일상을 영유하는 것보다 긴장되고 불가항력적인 사건과 사고 혹은 재난이나 불만에 대한 대처가 종족의 보존과 생존에 있어 더 중요한 자질이었더라면? 그러한 DNA의 특질이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뭔가 그럴듯하다..'
그래서 대대손손 평안보다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더 익숙한 혈족들이 긴장과 갈등의 상황에서 더 경쟁력을 발휘했던 것이고 존재 가치와 자존감이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도 우세를 점했던 이러한 혈족의 유전적 특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청소년기에 전쟁을 겪으신 세대였다. 평화가 100년도 유지되기 힘든 이 땅에서 우연히도 평안의 시절에 태어난 것이 나는 불만이었단 말인가? 지루한 수업을 듣다가 사이렌이 올리거나 정전이 되어 형광등이 나가면 갑자기 정신이 밝아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이 이러한 이유였던 것인가? (..라고 하면 너무 나간 거 같긴 하다.)어려선 평범한 모든 것이 불만 투성이었던 거 같다. 젊다고 할 수 없는 지금은 '불만'이라는 단어보다는 '불안'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몇 년 전 즐겨 보던 자동차 유투버가 갑자기 차가 아닌 사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정말 비수에 꽂히는 말을 던졌다.
' 모든 자식은 결국 부모를 버립니다.'
이 유투버의 본 직업은 의사다. 의사인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본인의 통찰이었는지 어쩌면 직장인 병원에서 접하게 되는 현장의 고증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떠올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저 모든 사람들의 죽음으로 가는 길은 그저 외롭고 쓸쓸하다는 핑계로 진실을 외면하려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작가 김영하의 산문 '읽다'에서 소게 된 미드 '소프라노스'를 보다가 비슷한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마피아인 주인공 소프라노스의 아내는 시어머니의 장례식에 모인 일가친척들에게 일갈을 한다. 모두 어머니 사후의 남겨진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던 게 아니냐며..
나 스스로를 대하 듯 원하는 방식대로 대화가 통화지 않는 한계와 분노에 밀려 나는 일찌감치어머니를 마음 밖으로 밀어내 버린 시점이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병색이 짙어져 죽음으로 가는 행로의 어디쯤에서어머니는 가족이 당신을 점차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분명 느끼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은인생의 허무함 뿐 아니라죽음 직전의 고통과 비교되는 평안을 남기며 행복의 실체를 깨닫게 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의 가능성이 매일 줄어드는 인생일지라도 이 사실만 명심한다면 작은 기쁨 증폭시키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어디가 아픈가? 내 가족이 모두 건강한가? 단순히 두 사실만 확인하더라도 나는 지금 행복의 요건을 갖추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남은 생을 30년으로 다시 가정해 본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가슴으로 와닿았던 시절 나는 어땠었던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낸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추억과 회한을 다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이제야 깨닫게 된 것들을 되새기며오늘도별일 없음에 감사하며 사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