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현관중문의 유리가 박살이 나 있었다. 아이가 집을 박차고 나가면서 발로걷어차서그렇게 된 것이라고했다.
문을그렇게 만든 것도 충격인데 더 한 것은 아이 다리도 유리에 찢겨 5 바늘이나 꿰매어야 했다. 마음이 찢어졌다. 그리고 맨탈도 박살이 났다.
사춘기에 접어들 때 즈음 아이의 행동이 점점 이해가 안 갔고 소통도 더 안 되는 거 같았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뭐라 속을터 놓지 않는 건 엄마를 닮았는데 굼뜨고게으른 건 또 나를 닮아서정말 걱정스러웠다. 아내의 훈육이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확인한 후 결국 아빠가 나서는 일이 잦아졌고 말로 하는 훈육에는 별 반응이 없으니 효과가 금방 보이는무력행사로 이어졌다. 답답함과 울화통에 밀려 한바탕 경을 치르면 밀려들어오는후회와 번민에 쫏겨 내가 찾는 핑곗거리는 뻔했다. '내가 맞고 자란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나는 최소한 얼굴은 안 건드린다..'라는식으로.
엄마의 좋은 말은 아예 귀 끝으로도 듣지 않다가 아빠의 압도적인 하드웨어와 완력을 체험하게 된 아이는 이젠눈치만 보며 사는 듯했다. 새끼 오리들처럼 우르르 엄마를 따라다니고 비글들처럼 마냥 즐겁고 재롱을 떨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이제 큰 놈은 확실히 열외가 되었다.
당연히 공부도 안 하고 스마트폰을 중독된 놈 마냥 이리저리제한된 룰을 탈옥을 해서 쓰다가 걸리고, 마침 또 시작된 코로나로 학교마저 가지 않고 집에서 어떻게 세월을 보냈는지 중3이 시작되고 어느 날 알게 된 아이의 성적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학원은 왜 다닌 것이며.. 하긴 유리문을 부수고 나간 그날도 공부하는 척하면서 밑에 만화책을 깔고 보다가 엄마에게 뒤통수를 한 대 맞고 욱해서 그랬던 거라고 했다.
누구를 닮아서 저런 걸까? 난 게을러도 할 일은 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기가 시작되고 세 달도 되지 않아서 미인정 지각이라는 걸 12번이나 하는 바람에 학교의 무슨 위원회에 회부되어 징계대상까지 오르게 되었다.아빠가 출근하고 나간 뒤 홀로 남겨진 아내는 큰 아이의 통제가 어렵다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결국은 아이에게 남은 유일한 통제의 수단은 또 아빠의 '완력'만이 남아 있는 듯했다.
직장 동료 누군가가 고맙게도 이 이야기를 듣더니 같이 고민을 하고 대안을 주었다. '벌'과 '매'의 강도를 높여야 하는 건 아닌가 불안해하며 부글부글 속을 끓이는 내게 절대 그러면안 된다는 너무도 뻔한정답을되새겨주며.나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 해결이 아닌 스테로이드처럼 부작용이 남는잘해봐야 임시 긴급 조치일 뿐이다.
그날 이후 큰아이를 직접 깨워 아침에 앞세우고 같이 출근을 했다.아이는 전보다 2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웬일로 순순히 따랐다.엄마가아무리 깨워도 반응이 없다던 아이는 아빠의 굵은 톤 목소리를 듣자 바로 눈을 떴다.(분명 무서워서 일 것이다.) 물론 깨우는 거부터 씻고 밥상에 앉을 때까지 몇 번이고. 엄마가 또 독촉을 해야 했지만 그 이후로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동료의 조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모르는 전화가 한통 왔다. 학교에서 아이들 심리 상담을 담당하는 분이라고 했다. 가슴이 덜컹했다.
큰 아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투병 과정을 한 울타리에서 갓난아기 때부터 지켜보며 자랐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10년여간 가까이에서 몸과 마음이 성치 않았던 할머니로 인해특히 자신의 엄마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아빠의 스트레스로 인한 불화를 생생히 목격을 했을 것이다. 유아기와 초등학교를 거치는 인생에서 가장 여린 시기에.. 정말 그런 것들이아이에게 영향이 컸을까?
심리 상담 선생과의 통화가 한동안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계속 머물렀다.
아이가 내 마음대로 부모가 바라는 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멈추고 문득 큰 아이의 아기시절이 떠올랐다. 아이가 태어난 전후로 달라졌던 나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스스로) 척박하기 그지없던 총각 시절. 인생의 목표도 의미도 못 찾고 헤매던 그 시절을 보내다가 아내를 만나 결혼이란 걸 덜컥하게 되었고 바라던 딸은 아니었지만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그 아이는 우리 집의 빛이 되었고삶의 동기 부여가 되었다. 당시 이어진 집안의 큰 사고들로 인해 돌아보고 침잠에 빠져드는 것에 익숙했던나에게 아이는 우리 부부의 만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증명이 되어 주었다. 미약하게나마 소생되던 그 모든 긍정의 중심에 우리 큰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우리에게 희망이고 등불이었다. 아이가 있다는 것 만으로 이렇게 세상이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지고 사람들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었다. 그런 너에게 내가 어찌...
나는 이미 아이에게 큰 빚을 졌다.성장의 고통에 힘든 아이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픈데나는 지금 과연 고마움을 표현하고 진정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너를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헤어질 그날까지.
너와 나
너와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먼 길 가다 돌아오는 길에 너를 만나 아는 척을 해본다.
나의 시간은 이제 너무도 빨라 잠시만 눈을 팔아도 너는 벌써 저 멀리에 있고
너의 시간은 점점 조밀하여 가끔씩만 바라 보아도 너는 분명 제자리라 할 테니 그렇게 차이가 벌어져 결국 너와 나는 다른 시공간으로 떨어지게 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