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자녀 디자이너 Apr 06. 2024

AI와 Avatar

나는 누구인가?

영화는 마술과도 같다.

글로 시작되는 스토리는 씬을 구성하고 필요한 장면을 만든다. 영화 속 상상의 크기는 현실과 사실에 머물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점점 판을 키워 왔다. 따라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과 대가는 상상의 크기에 비례하여 커지고 점점 더 효율적이고 편한 방법을 찾는다.


SF뿐 아니라 비현실적인 어떠한 소재를 갖고 있는 영화이든 이제 구현이 불가능한 씬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레젼드 '스타워즈'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1977~)에는 컴퓨터의 도움 없이 SF 특수 효과가 모두 한 땀 한 땀 기발한 아이디어와 섬세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던걸 알 수 다. 현재의 막강한 촬영장비와 컴퓨터 그래픽 환경에 비할 순 없겠지만 당시 관객들에게는 몰입도가 높은 너무도 대단한 영상들이었고 독특한 아날로그 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당시의 영상들의 제작과정(Making film) 역시 그 노력과 기발함이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워즈 2 (제국의 역습, 1980 개봉)에 나와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주었던 AT - AT 로봇이 정교한 미니어쳐를 한땀 한땀 장인정신으로 찍어낸 스톱 모션이었다니..


21세기가 오기도 전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했던 그들의 SF 작품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었. 필자 역시 '창작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요즘은 누군가의 마스터피스를 접하였을 때 그의 재능뿐 아니라 뼈와 살을 갈아 넣었을 노고를 피부로 느끼며 리스팩 하는 마음이  커지곤 한다. 컴퓨터로 구현된 영상(CG) 역시 쉽게 만들어진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컴퓨터와 그래픽 카드의 힘을 알게 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CG 영상을 더 이상 신기해하지 않는다 (물론 그 예술성에 감탄할 수는 있다.) 1999년에 프리퀄 시리즈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이 나왔을 때는 시대적 한계가 명확했던 7~80년대의 오리지널 보다도 오히려 못한 CG의 남용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스타워즈 초기작의 스톰트루퍼 군단과 1999년 개봉한 프리퀄에 등장한 로봇 CG군단. 왜 욕먹었는지 이해가 간다.


당시 혹평을 받았던 CG는 컴퓨터의 발달로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퀄리티도 좋아졌다. 그리고 거기에 이젠 AI 가 등장하면서 여러 사람이 몇 날, 몇 달이 걸려야 할 수 있던 작업들 단 몇 분, 몇 시간 만에 구현되것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 


Open AI Sora demo video


그렇다면 앞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영상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걸까? 이것이 진짜냐 아니냐 Fake 영상에 대한 논란 이외에도, 앞으로 창작물을 대할 때 인간이 아닌 AI가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사람들은 계속 감동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고 꼭 인간이 만든 작품에만 감동하라는 법은 없다. 신이 만든 대 자연의 장관에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과거의 영화 감상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진정성과 감동의 상관관계

우선 감동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 과연 감동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유물일까?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저서 The third chimpangee에서는 '침팬지와 유전적으로 1.6%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인간과 동물들과의 차이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인간의 예술적 행위들과 비교될 만한 다른 동물들의 유사한 행위로 뉴기니섬에 서식하는 Bowerbird 가 소개 되는데 그 새가 만든 둥지의 스케일과 꾸며놓은 감각이 작은 동물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 다.


튼튼하고 예쁘게 지어진 뉴기니의 Bowerbird 의 둥지와 흰점박이 복어의 크롭서클. 모두 암컷에게 구애를 위해 수컷이 혼신을 다해만든 작품이다.


암컷에게 자신의 DNA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혼신의 예술행위를 하는 개체는 Bowerbird 외에도 다수 존재 한다.(물론 인간도 포함) 체구 대비 사이즈나 완성도에 있어 작은 미물의 작품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그 원천은 무엇일까? 한낮 미물의 번식을 위한 짝짓기 행동이라고 폄하하기에는 나는 인간이 추구하는 예술행위 역시 조금 더 복잡할 뿐 그 동기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듯한 생성형 AI의 작품들은 성과를 위한 동기부여부터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퀄리티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감동이 저해될 수도 있지 않을하는 의심이 따른다.



건축 역시 다양한 AI 디자인 보조 시뮬레이션 도구가 있는데 결과물이 괜찮을 때 '이 것이 건축가인 내가 한 것이 아니고 AI가 디자인한 것입니다.'라고 클라이언트에게 말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다. AI실력을 탐내서가 아니라 일을 쉽게 한 것처럼 보일 까봐 하는 생각이 더 크다. 물론 AI 태동기인 현재에는 구현 자체가 엄청난 업적이므로 사람들이 놀라고 감동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점점 흔해지고 익숙해졌을 때에도 계속 그럴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이 CG 사용을 최소화하려는 이유?

위에서 봤듯이 노력과 성과에 비례하는 감동의 크기에 대한 근거를 자연에서 찾을 수 있었. 그러나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CG사용을 자제하는 이유는 순수한 노력의 진정성만을 따져서는 아니다. 그는 대중의 시선을 보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룬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 피사체를 찍는 카메라 촬영이 (필름의 화질과 질감을 통해) 세상을 눈에 보이는 것과 더 비슷하게 포착하고 현실의 감각을 확보하여, CG 그래픽보다 더 공감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위협적이고 무게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2017년) 저 오래된 전투기를 구해오느라 영화사가 엄청 애를 먹었다고 한다. 구축함들도 역시


30만 명의 병사를 CG를 안 쓰고 굳이 합판에 그려서 표현했다 그래도 엑스트라가 1500명이나 동원됐다고.


영화감독의 판단은 그의 영화에 어울리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CG에 대한 그의 판단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이미 틀린 얘기일 수도 있다 혹은 지금은 맞고 앞으로는 틀린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실제인지 어디까지가 디지털인지 경계가 무너지고 있시대에 그는 분명 그 차이를 느꼈던 것이고 세상은 그의 판단을 극장의 관객수로 지지하였다.



사람들이 만화나 웹툰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 극작에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CG이든 실사이든 단지 눈으로 보이는 그림이나 영상, 아름다운 배우에게 매료되는 것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스토리 텔링의 위력 '나는 누구인가?'

대리만족이라기보다는 감정이입 이란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현실에 없는 배경이더라도 등장인물은 현실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과 그것의 근원인 욕구가 없다면 극작이란 것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한다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공감적 능력으로 다루는 문화적 발전의 성취물이자 유산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개인의 다양성과 사회의 균형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잘 조화될 수 있도록 인류가 피와 땀을 들여 희생하고 노력해 온 결과물이다.'


스토리텔링이 단순히 극작의 요소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어 인류문화의 주요한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AI의 등장으로 감동이라는 상호 작용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고 인간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결국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플롯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야기는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언급된 바 있으며 일찍이 심리학자 칼 융은 그의 저서 <기억들, 꿈들, 반영들>(Memories, Dreams, Reflections, 1962)에서 이러한 플롯을 깊이 있게 다룬 바 있다.


(Miss Ritter) I had a professor once who liked to tell his students that there were only 10 different plots in all of fiction.  Well, I'm here to tell you he was wrong. Ther is only one : "Who am I?"  (미스 리터 선생님) 제가 아는 어느 교수님은 모든 소설은 단지 10가지 플롯만이 있을 뿐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하곤 하셨습니다. 글쎄요, 저는 그가 틀렸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단 하나의 플롯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이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012 (엔딩 직전의) 교실 클로우즈 씬 2:06:27 )



AI는 인간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다. 챗 GPT 창은 언제나 인간의 입력을 기다린다. 모르는 게 아직 많을 텐데..

그랬더니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ㅋㅋ


챗 GPT는 기계이다. 그런데 인간이 딥러닝(Deep learning)과 같은 기계학습 방법으로 기계에 지능(Intelligence)을 심어 넣었고 인간과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과연 기계와 인간은 무엇이 다를까?


인간의 몸도 기계로 보는 관점이 있다. 리처드 도킨 스는 책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인간의 육체는 그 '이기적인' 유전자(DNA)라는 애들이 타고 있는 기계일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이기적인 녀석들이 인간의 몸의 한계를 느끼고 인공지능 칩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가 아마도 AI 스스로 먼저 인간에게 말을 걸게 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너는 지구에 왜 필요하니?'라든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인류를 제거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해?'라든가.


과연  이기적이고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가득한 유전자(DNA)가 '인간'이라는 기계에서 또 다른 기계 '인공지능'에 옮겨 타거나 인공지능에 새로운 DNA를 심게 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마냥 친절하게 대답만 하던 Chat GPT가 갑자기 먼저 인사를 건네거나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게 되는 날이 아마도 바로 그날일 것이다. - 그렇다면 그건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본 헬게이트 '터미네이터'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겠지!


터미네이터 1.  CG랄 것도 없었을 1984년도에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sf명작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침략을 당하는 영화 터미네이터는 AI가 화두가 된 현재(2024년)로부터 무려 40년 전인 1984년에 최초로 개봉된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1954년생으로 터미네이터 이외에도 에이리언, 타이타닉, 무엇보다 압도적인 3D와 특수효과의 향연으로 감동을 주었던 '아바타' 등 다수의 히트작을 탄생시켰다. 70의 고령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알리타:배틀 절'의 속편을 만들고 계시다는 소식이 있어서 너무 반갑다.


인간의 머리를 대신할 수 있는 기계가 '인공지능'이라고 한다면 거꾸로 인간의 육체를 대신하는 기계는 '아바타'라고 할 수 있다. 40년 전 20세기에 인공지능이 인류를 습격하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만들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21세기에 와서는 반대로 인간의 정신(뇌)을 다른 육체와 싱크(synchronize)하는 소재로 영화 아바타(Avatar)와 알리타(Alitar)를 만든 것이다.


속편 잘 부탁드립니다. 카메론 감독님.


이제 50대 중반인 1970년생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CG 촬영을 최소 하려는 것이 반해 그의 삼촌뻘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최신 3D 기술과 실시간 모션 캡처, 가상 카메라 시스템 등 가장 앞서가는 특수효과 기술을 총 동원하여 영화를 만든다. 속편이 예고되어 있는 아바타와 알리타 두 영화 모두 과연 또 어떤 황홀경이 스크린위에 펼쳐질지.. 너므 너므 기대됩니다!


17~18세기 뇌와 마음의 연결관계에 관한 철학적 논쟁부터 시작된 것이 인공지능의 태동이었다고 한다. 이진법 기반의 인간 뉴런의 작동 원리를 모델링하여 시작된 트랜지스터와 반도체가 결국 가공할 컴퓨터로 진화하였듯 늘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창대하기 그지없는 결과를 만들어온 인류. 머리를 대신하는 인공지능과 몸을 대신하는 아바타. 영화와 상상 속에만 존재할 거 같던 인공지능이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의 문제로 대두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용가능한 '아바타 시제품'이 우리 눈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다. 


컴퓨터와 AI 가 인간의 감동의 보조 도구로 쓰이는 시대는 과연 언제까지일까? 점점 늘어나게 될 AI의 창조 행위에 인간이 계속 감동받을 수 있을까?


아바타 두 번째 이야기 '물의 길'이 2022년에 개봉되고 극찬이 쏟아지고 있을 때 이 정도 기념비 적인 영화정도는 극장에서 봐줘야지 싶어 애들 셋을 모두 다 극장에 몰고 가서 봤다. 애들이 어디 케이블에서라도 아바타 1을 봤을 줄 알았는데 모른다고 해서 유튜브에서 20분짜리 요약본을 찾아 보여주고 갔는데 2009년에 1편이 나오고 10년도 더 지나서 2편이 나온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토리는 딱 기대한 만큼. 그러나 화려한 SF 액션 격투 전쟁씬뿐 아니라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모습은 CG의 향연인 줄 알면서도 넘사벽으로 아름다웠다. 지구를 본떠 만들했겠지만  외계 행성의 생태계까지 디자인을 하다니.. 어디 하나 어설픈 곳이 없었다. 다만 그저 아름다운 영상뿐만이 아닌 영화가 갖고 있는 중요한 Storytelling '존엄한 자연공생의 의미'는 감동을 채 추스리기도 전 출구 앞 쓰레기통에 가득 쌓인 '플라스틱 더미'를 보는 순간.. 퇴색되는 듯하여 아쉬웠다.


이 1회용 플라스틱 3D안경. 딱 1분 정도 신기하다가 마는데 오히려 누런 끼 때문에 별로... 이대로라면 아름다운 자연은 판도라 행성에서만 가능할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과 A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