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자녀 디자이너 Feb 18. 2024

엘시티와 시그니엘

걷기 싫은 도시

요즘 방송이나 유튜브를 보면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다. 과거에는 보통 일에 관련된 이유로 한국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한국 특히 서울이 좋다고 아예 눌러사는 외국인들도 많아 보인다.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 스스로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사한 유튜영상을 발견했는데, 다른 외국인들이 만든 영상 30여 개를 찾아 모두 조사하여 항목별로 통계를 내서 발표를 하는 내용이었다. 대단한 노력이다. 요즘은 이 정도는 해야 조회수가 나온다.  https://youtu.be/LHOTSThiJLM?si=JJv13J9W7czqJPZu


상위에 랭크된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한국 음식 (21표)  

2. 대중교통 (17표)

3. 안전 (9표)

4. 낮은 물가(상대적으로) (7표), K-POP (7표)

6. 화장 관련 (6표), 사람들 (6표), 24시간 편의점 (6표)

9. 등산 (4표) , 공짜 와이파이 (4표), 언어 (4표), 서비스 샘플 같은 거 (4표), 의료부문 (4표)

14. 식당(빠르게 나온다!! 3표), 편의점 (3표), 편의성 (3표), 문화 (3표), 카페 문화 (3표), 4계절 (3표) 등.


그 외의 70여 개의 항목을 모두 보아도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주로 대중문화나 서비스 관련한 것들이 많고 필자가 주제로 다루는 디자인이나 공간, 즉 자신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나 서울의 거리 (City scape)에 대한 칭찬이나 아름다운 건축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홍대 거리가 리스트에 나오는데 아마도 일대 젊은이들의 문화에 더 방점이 있을 듯하다.)


한국말 잘하는 인기 외국인들이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에 나와서 자주 언급됐던 한국의 매력들도 주로 다이내믹하다, 빠르다, 편하다였다. 서울이 아름답다는 말도 자주 하지만 내용을 보면 도심의 야경과 밤문화 그리고 주로 산으로 둘러 쌓인 자연경관이나 날씨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밤이 아닌 밝은 낮의 푸른 하늘과 함께 보아도 아름다운 도시는 우리에겐 없는 걸까?


썸네일 타이틀의 `한국' 과 `현대도시'를 모두 `서울'로 바꾸어도 다를게 없다.


국내 한 유명 건축과 교수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보통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 만들어진 도시들이 아름답다고 다. 당시엔 보행이 요 교통수단이었으므로 휴먼 스케일에 맞는 도시 구획이 생겨났고 그러한 기본 골격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시들은 여전히 걷고 싶은 도시, 거리가 아름다운 도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쟁 이후 빠른 발전을 이룬 서울은 그런 거리들이 사라지고 영역이 확장되면서 자동차 기반으로 재편되었다. 격자로 계획된 뉴욕은 세로로 250m, 가로는 그것의 1/4 밖에 되지 않는데 걷다 보면  새로운 풍경이 1분마다 펼쳐진다 한다. 그러나 서울 강남은 한 블록이 800m 나 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둘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2km를 걸어도 가게가 안 나온다.'라고 MC가 말하자 교수는 `최악이다.'라고 공감한다. MC는 '가게를 단지 안에만 넣어놓고 자기들만 즐긴다. 성이다. Cattle 이란 말이 나온다'라는 불만도 표했는데 이를 다시 정확히 말하면 자기들만 즐기는 것은 가게가 아니고 어메니티 즉 편의시설들이다. 가게는 주로 거대한 단지 한 귀퉁이에 도로를 대면하는 상가로 지어서 분양을 한다. 그러나 그 가게들의 노면폭을 다 더해도 단지 전체 둘레의 1/10 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나 주상복합의 노변 상가는 주거에 비해 평당 분양가도 더 비싸지만 늘어나는 공실의 위험에 그 규모가 점점 축소되는 경향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걷고 싶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거리에 놓인 이유가 크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성벽 외곽을 걷는 듯이 단조로운 길에 놓인 상점들이 잘될 리가 없다.



거리를 죽인 한국의 대형 아파트 단지.

걷고 싶은 아름다운 거리라는 말은 단순히 감상적으로 받아들일 말이 아니다. '최악'이라는 말은 곧 배타적인 계획으로 인하여 공공성이 훼손되었다는 다. 서울의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들 중 다수는 계획 각론에 자주 등장하는 Gated Communiaty 즉 '폐쇄형 단지'를 원한다. 앞 글에서 다루었던 민주주의 방식의 조합장 선거에서 누가 '공공'같은 소릴 하면 조합원들의 표심은 외면할 것이 뻔하다. 세상 밖은 험하기 때문에 혹은 격이 다르기 때문에. (카페에서 화장실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워도 노트북에 무도 손대지 않는다는 서울이 그렇게 험한 도시였던가?) 그들이 이 Gated Community에 혹하는 이유는 우선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끼고 싶은 욕구와 또 가장 안전하고자 하는 바람도 크기 때문이다.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을 염려하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한 단지설계를 위한 'Cepted 공공 안전 계획'에서는 오히려 안전을 위해 CCTV 뿐 아니라 공공에게 시선이 열려있도록 계획하는 것을 권장한다. 철저히 폐쇄되었다는 것은 거꾸로 안에서 누가 침입을 하거나 위험이 발생한 경우 밖에선 인지하기 어렵고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안전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단지 전체를 철저히 폐쇄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론상 맞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다수 조합원들의 표심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Gated Community를 상징하는 듯한 강남 한 아파트 단지의 거대한 문주


또한 지역사회와의 단절 혹은 상생에 관한 문제가 있다.

수천 세대 이상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한강변이나 강남의 재건축 단지 계획대로 라면 조합원들은 일상에서 담장 밖으로 나갈 일이 줄어든다. 인허가 권자들은 단지 내 공원이나 공공보행로를 설치하는 것을 유도하지만, 현상 설계 당선이 최우선인 설계사들은 조합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 허울뿐인 공공성을 자신들의 대단한 디자인 전략인포장하여 결국 조합원들만의 커다란 성을 짓는 달콤한 계획안을 제시한다. 이대로 라면 서울에는 성 안에 사는 성주들만 남게 되는 인가?


위에 언급한 단지 내 '아파트 부대편의 시설'로는 유치원, 도서관, 노인정은 물론이고 요즘은 지인의 방문 시 묵을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헬스, 골프, 요가, 체육관은 물론 수영장까지 갖춘 단지도 있다. (이제 곧 아이스링크가 들어설지도 모른다.) 소소하게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눌 카페는 기본이고 아침 조식을 제공하는 식당과 돌잔치 같은 가족 행사를 할 수 있는 연회장까지 자체적으로 갖추고 운영을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대수가 많을수록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관리비를 분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 이용률에 비해 관리비 부담이 큰 시설들(강당, 체육관, 수영장 등)은 낭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외부인들에게 공개하거나 대관 수익을 올려 관리비를 충당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현행 법규상 공동주택의 부대시설은 상업, 문화시설처럼 수익을 올릴 수 없어 불가능하다.


결국 주차장과 기계실로 주로 이용되던 지하층의 면적은 각종 편의 부대시설로 이미 지상층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커졌다. 지하층 면적은 아무리 커도 용적률의 제한을 받지 않는 국내 건축법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한 결과이다. 마치 호텔처럼 모든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단지라는 말에 이끌려 동의표를 내어 주었지만 치솟는 공사비는 더욱 부담을 가중시켜 결국 상당수의 조합원들을 당혹하게 한다.


주변 대지보다 레벨을 높여 데크위에 만든 아파트 정원은 지역 사회와 철저히 분리될 수 밖에 없다.


동네 근생 및 공공, 편의 시설은 이제 입시 학원과 24시간 편의점, 병원, 약국 외에는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 단지 밖 사람들도 같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 공공시설들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로 인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례로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단지 인근 주민 센터 건립을 진행하는 중에 일부 공간을 주민(조합원)들에게 노인이나, 청소년등의 복리를 위해 할애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주민들에게 설문 조사까지 하여도 별 반응이 없어 관에서 난감해하는 일도 있었다. 모든 편의, 복리 시설을 다 갖춘 재건축 단지의 주민들은 굳이 공공에게 요구할만한 공공시설의 필요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재건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공공이니 지역과의 상생이니 하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파트 보급으로 이웃 간의 정이 사라졌다는 논평조차도 이미 옛말이 되었다. 전통적인 '동네'가 아닌 기업의 이름을 앞에 붙이는 '00 브랜드 단지'가 익숙해 진지 오래이다. 한평생 자신들이 동네에서 어울려 살아왔던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지워 버리고 앞으로 다가올 40, 50년 후의 미래도 괘념치 않는다. 휴대폰 앱이나 건설사가 대주주인 신문이 띄우는 아파트 시세만이 늘 관심의 일 순위에 올라 있다.


아파트 성곽 밖으로 지역 사회라고 할 만 것들이 미미해지거나 사라진 50년 후, 낡은 아파트만 남게 되면 그 지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물론 부동산 폭등이 앞으로도 50년 더 지속된다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지 모른다. 그러면 용적률을 지금의 1.5배나 두배로 올려 또 재건축을 하고 분양수익을 내면 될 테니까. 그러나 인구 절벽으로 가고 있는 현재 그것이 현실적으로 와닿는 이야기 일? 그리고 끝없는 부동산 폭등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까?


최근 1세대 신도시 아파트에 기존에 없던 차단기가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내 것과의 괴리는 늘 혼란스럽다. 위에서 소개한 한 건축과 교수의 라디오 인터뷰처럼 언론과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저마다 자신만의 울타리를 치고 '내 것'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려는 행위에만 열중한다.


분당의 오래된 아파트들도 요즘 단지 입구에 차량 통제기를 설치하고 있다. 분명 유동인구가 흐르는 다운타운이나 역세권과는 거리가 먼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3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모른 채 적지 않은 공사비를 부담하면서 신축 아파트 단지들의 폐쇄성을 흉내 내고 있다.


심지어 그중에는 사도가 아닌 공도(公道)의 용도로 쓰였던 (사진의 도로에 대면한 근린생활 시설 간판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진입 초입에 차단기를 설치하여 도로를 철저히 사유화했다. 등기상으로 혹은 토지이용계획상 사도(단지내 도로)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비상도로의 역할에는 지장이 없는지 등 법적으로 자세히 따져보고 허가를 내어준 것인지 의심스럽다. 필자가 신접살림을 차렸던 해당 단지는 분당에서도 외곽에 위치하여 인접한 주변엔 상업시설이나 업무시설, 지하철역도 없다. 도대체 누가 와서 얼마나 불법 주차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저 도로에 면해 있는 미용실과 식당 그리고 깊숙이 위치한 유치원의 사업주 입장에선 도로 차단이 결코 반가울 리가 없다는 점이다.


분당 한솔마을 - 효자촌 (약3km 구간) 공공보행로. 여러 단지를 가로 지르며 근생과 공원, 놀이터, 화장실 등이 곳곳에 접해 있어 매우 쾌적하고 편리하다.


공공보행 통로를 배제하거나 유명무실하게 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단지 안으로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아파트. 그것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물론 강남의 역세권이나 한강 망을 자랑하는 최고 입지의 단지라면 그 들의 미래의 가치를 나 같은 사람이 굳이 걱정해 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린 지엽적인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전체의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최고의 망을 자랑하는 아파트들은 한강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공간에서 반윤리적인 대표적 사례는 공공의 자산인 바다와 해안을 사유하듯 앞을 가로막고 높게 지은 건축물들라고 할 수 있다. 관광객과 시민들뿐 아니라 그 뒤에 서있는 수많은 낮은 집 사람들에게서 바다가 주는 혜택을 빼앗아 갔다. 더운 날 선풍기 앞에 딱 붙어 자신만 바람을 쐬는 꼴이며, 공연장 맨 앞자리에서 뒷사람 생각 않고 일어서서 구경하는 꼴이다. 살기 좋고 경치가 좋은 자리는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욕망이 가만두질 않는다. 그런 욕망으로부터 공공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인허가권자는 권력과 비리의 풍파에 고삐를 놓치곤 한다.


부산 송도와 해운대(엘시티)초고층 아파트



미국의 도시계획가 제임스 라우스는 성공적인 수변공간을 설명하면서 수변에서 가장 기피해야 할 건물로 주택, 오피스, 호텔을 꼽았다.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공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해안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기준으로 부산, 울산, 마산 할 것 없이 해안 낀 한국의 도시 모두를 한번 보자. 우리의 도시에는 이러한 해악이 차고 넘친다. 그뿐 아니다. 권위적인 관공서, 나 홀로 아파트, 부조화된 빌딩과 뻔뻔한 간판 등 도시건축의 윤리성에 반하는 것들이 도처에 있다. 공공과 윤리를 넘어 국가 방위에 필요한 공군의 활주로 방향까지 틀어서 초고층을 건설하고자 했던 명분은 어떤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까?


유현준 교수가 다양성을 운운하며 말을 아꼈던 잠실 롯데월드타워(시그니엘). 볼때마다 나는 사우론이 떠오르기도 바닥에 뾰족하게 솟은 못이 떠오르기도 한다.


서울의 전통적인 부자동네는 길이 썰렁하다. 한남동 평창동. 아무도 거닐지 않는 길에는 차들만 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그리고 모퉁이마다 방범 초소만 도사리고 있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역시 부모나 기사가 학원과 학교로 열심히 실어 나르는 대상이다. 영화 기생충 저택의 정원에서 그들만의 가든파티와 아이들의 인디언 놀이를 하듯 아파트 단지 데크 위는 조합원들의 낙원일까? 교수는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는데 서울이라는 도시는 혹시 걷는 것이 점차 차별의 수단이 되어가 것은 아닐까?


`건물 지으시는 분들 앞으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MC의 마지막 맨트. 누구나 현상에 공감은 하지만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 그때 MC 바로 앞에는 잘 나가는 건축가도 앉아 있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같은 직업 같은 마음이지만 그러나, 정말 모두가 현상과 문제를 참고만 해서 될 일인지 모르겠다. 세상은 이렇게 모두가 인지하고 댓글만 달다가 결국 전쟁과 같은 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싸우다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다.'

전쟁뿐 아니라 중요한 결정의 대부분은 자신보다 그 후대에 더 영향을 끼친다. 그 결정을 할 만큼 살아온 인생들은 이미 여한이 없을 만큼 잘 살아온 경우가 많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완성될 세기의 마천루들은 서울뿐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 그렇게 첫 단추부터 눈과 귀가 어두운 사람들의 욕망에 사로잡힌 채 백 년의 후대들에게 내려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300 vs 36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