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 사무소에 입사한 지 몇 해 되지 않은 초년병 시절에 해외유명건축가와 프로젝트를 함께할좋은 기회가 있었다. 초기 디자인단계에서프랑스설계팀이 한국을 방문을하였을 때함께 국내 고건축 답사를 갔을때의 일이다.
당시 의욕 충만한 한국젊은이가 외국 건축가들의 답사 가이드를 하면서 스스로 느낀 자격지심은 짧은 영어실력 보다도자기 나라의 전통건축에 대한 얕은 지식이었고, 또 한 가지는 몇 시간을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황량함이었다.
수서 SRT 역에서 출발하면 10여분후 부터 연속해서 펼쳐지는 비슷한 풍경들.
당시 분당, 용인으로 이어지던(지금은 평택 이남까지) 획일적인 무채색의 아파트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누가 더 크고 황당하게 혐오스러운지 경쟁을 하듯 널려있는 간판들 뒤로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마을과 산업단지가 구분이 되지 않는 군락들의 모습. 천년의 세월을 지닌 사찰을 보여주며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보여주려다 우리의 이미지를 더 구기는 듯한 민망함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분당동 동네에서 고개만 하나 넘어가면 펼쳐지는 혼돈의 풍경. 저 안에도 분명 규율은 있을지언정 질서 혹은 조화라는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후로도 틈틈이 여행을 다닐 때마다 분당까지 돌아오는 국도변의풍경은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정이 들지 않는다. 시각적인 황량함뿐 아니라 언제 저런 간판이 또 생겼는지 없어졌는지도 모를 말 그대로 중구난방, 아비규환.피할 수 없는 현실로 적당한 체념을 통해늘 어지럽혀진 아이들의 방을바라보듯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일까?
고속도로이든국도든 차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게 되면 10분도 되지 않아 나타나는 정돈되지 않은 한국의 차창밖 풍경들. 나의 고향땅임에도정이 들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 이국땅인 유럽이나 일본 여행길에 오르면 낯섦 보다는 부러운 한숨을 쉬게 된다.
우리나라의 창 밖 풍경이 이토록 혼란스러운 것은 침략으로 점철된 혼돈의 근대사 때문이 아닐까 하는핑계가 생각났다. 그러나 명확히 식민지 시대나 전쟁에 그 탓을 다 돌릴 수 있는지 그 근거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 예로 일본 역시 전쟁으로 얼룩진 근대사를 가지고 있지만(지구상 유일하게 핵폭탄을 맞은 나라 그것도 두 방이나!) 거리에서 느껴지는 질서는우리와 다르다.
21세기가 막 시작된 2000년, 지금처럼 일본 여행이 흔해지기전이었던시절에 나는 한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 차이를확연히 느꼈다.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라는 영화는 인기를 끌었던 작품도 아니어서 20년도 더 지난 오늘엔 검색조차도 쉽지 않았다. 주연이 이정재였던 것만 어스름히 기억이 났는데 네이버 이정재의 필모그래피에 조차 나와 있지 않다.
영화는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가 결국 운명적인 상대를 찾아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내용이다. 남녀가 각각 자신의 나라, 자신의 공간에서 영상을 찍다가 후반부에 한 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하나의 스크린에서양국의 일상 배경이 비교가 된다.
영화 속 일본 (좌) 과 한국 (우)
건물과 도로 그리고 전신주 마저 마치 자를 대고 투시도를 작도한 것처럼 정연한 일본의 배경에 비해한국의 배경은 보이는 모든 것이 구불구불한 프리핸드로 스케치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남, 녀 배우의 캐릭터 차이 한국과 일본에서의 스토리 라인 등에 따라 대조되는 분위기의 로케이션을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치 정리 정돈을 하지 않은 게으른 사람의 방을 보는 듯한 한국의 배경에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한 열등감을 느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머무는 일본 (좌)과 한국(우)의 주택가 거리
영화를 관람한 이후 7년이 지나 처음으로 방문한 일본의 지방(홋카이도)과 그 후로 또 7년이 더 지나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도쿄는 영화에서 느꼈던 것과 일치하는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물론 한국도 도심 재개발을 하거나 택지 개발로 지어진 신도시의 거리들은 구도심과는 다르게 자로 잰 듯 정리되어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건설된 도시의 느낌은 오래된 도시에서 느껴지는 안정된 질서와는 사뭇 다르다.
EBS에서 연재했던 건축탐구 프로그램으로 친숙한 건축가부부가 얼마 전 (2023년) 회사로 초대되어 북콘서트를 열었는데'한국적인 것'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공간엔 명확한 선(線)이 없다.'라는말을 하셨는데관객과 무대 사이의 명확한 경계선, 자신의 정원에조차 발 들이기 어려운 조경의 영역, 이런 것들은 일본 혹은 다른 나라에서 온 것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흥이 나면 뛰어들 수 있는 마당극과 뭔가 경계가 모호하고 슬쩍 선이 어긋나 침범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바로 한국적인 공간의 특징이자 잠재력이다.라는해석을 던졌다. 또한이런 모호하며 넘나드는 공간 계획은 그 공간이 정지해 있지 않고 역동성이 느껴진다고 하였다.
두분의 저서. '골목 인문학' 과 '공간을 탐하다.' 책을 두권이나.. (부럽다)
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나도느꼈던 분명한 그 차이, 그 고유의 선들은 어쨌든 일본에선 볼 수 없는 한국의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정서로 대변되는 이유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유의 선으로 창출된 공간이 현재 무질서로 인한 우리 도로변의피폐함까지 해명할 수 있을까?
현시점에서 우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나 이리저리 궁리하며 검색을 하다가 요즘 무엇이든 답을 잘한다는 챗 GPT에게 한번물어보았다. (원고를 채울 수 있는 신통한 방법을 찾은 듯.)
GPT:
유럽이나 일본은 많은 역사적인 유산을 간직하고 있고, 그에 따라 도시 계획이나 건축 양식도 그 특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빠르게 도시화되었고, 그에 따른 도시 계획과 건축 양식이 형성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동안 일본은 한국을 자원 공급원으로 이용하고, 도시 계획과 건축에 일본식의 모더니즘 스타일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주로 도심 지역에서 관찰되며, 전통적인 한국식 건축과 도시 계획은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한국 전쟁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진행된 전쟁으로,.. <중략> 도시 구조와 건축에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전쟁과 재건과정의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따라서, 일제 식민지 시절과 한국 전쟁은 한국의 도시 경관과 건축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이는 다른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있으며,직접적인 연관성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AI는 정말 말을 막힘없이 잘한다. (그러나 다 믿으면 안 된다고 한다.)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국토를 유린한 것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것도 현재 우리의 난잡한 경관과 거리 풍경의 직접 적인 이유는 아니란다. 다시 빠른 근대화와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춰 질문해 보았다.길게 답했지만 같은 내용의 반복이 많았는데 그중 유의미해 보이는 말이 보였다.
우선순위와 운영 방식: 경제적 발전과 국가 발전의 우선순위가 도시 계획과 미적인 측면보다는 다른 요소에 높게 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우선순위'라는 말이 나에게는 결국 한국 근대사를 주도하던가치관과 정치적 판단으로 들렸고 그것들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 환경 즉,군사독재와 그에 야합했던 '저돌적인 개발행위'가 떠올랐다. 한국 전통건축과 유산들을 봤을 때 현재 난립한 풍경이 우리의 '전통적인 미적인 가치'라는 건 당연히 억측이다. 그러나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듯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풍경과 함께 변질되거나 달라졌을 수 있다. 가치관과 문화적 차이 이외에도 법률적, 행적적, 관습적 차이에서 오는 결과에서 오는 현상 그리고 대책에 대해 몇몇 질문을 더 던졌으나 딱히 와닿는 답을 얻진 못했다.
GPT의 선문답에 한계를 느끼고 직접 검색을 다시 해 보았다. 검색된 것들 중에 그동안 많이 듣던 환경 규제, 도시 계획과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대한 이야기들 사이에 '안성시 풍선간판 일제 정비'라는 말이 보였다. 맞아 특히 저 흐느적거리는 풍선처럼 광고물과 간판들이 제일 정신없고 꼴 보기 싫다.
우리의 간판 문화는 이제 너무 익숙해서 문제의식 조차 희박해 졌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과도한 광고물이나 간판이 거리뿐 아니라 도시 미관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옥외광고물법'이 존재하지만 있는 지도 모르거나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무엇보다도 강력한 단속을 해야 할 공무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복잡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고 해석하기 나름 식으로 되어 있는 국내 관련 법령이 문제라고 하니..
한 후배 건축사가 프로젝트 준공직후와 테넌트 입주 후에 간판 범벅이 된 사진을 비교해서 올리며 개탄을 금치 못한 사진.
국내 간판들의 문제점이 잘 분석된 유튜브
실제로 간판 규제 정책을 일찍이 도입한 유럽의 선진국 이외의 다른 나라는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거나 단조로운 원색(노년층이 많은 구도심에서 특히 시각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을 사용하고 불필요하게 크게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역시 규제가 약했을 시절에는 난잡한 간판이 난무했지만 규제가 엄격해진 뒤로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부러웠던 일본 조차도 결국 규제. 그러나 정말 규제로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것일까? 규제가 생기기 전의 일본 도시들도 과연 우리처럼 심했을까?20년 전 처음 방문했던 일본 지역에 간판규제에따른 정비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한국에 비해 거리가 단정하고 깔끔했던 것만은 사실이다.단순한 규제 너머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더 찾아보았다.
일본 간판 정책의 발전사와 한국 정책과의 비교자료 (한국색체문화진흥재단) - 예상대로 '협의와 자율'이라는 큰 차이가 존재 한다.
'협의와 자율을 중시하는 규제'를 갖고 있는 일본. 우리나라거리 경관이 어지러운 이유가 애매한 법령과 게으른 공무원들의 탓도 있겠으나, 눈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이어지기까지 긴급한 조치나 짧은 훈련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축구실력과 마찬가지로긴 세월을 축적한 한 국가의 잠재력이 실현되기까지는 그것을 주도하는 문화와 가치관 그리고 그것의 근간이 되는 교육 시스템까지도 모두 깊이 연관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산 전통시장 공공디자인 사업 전,후 모습 비교 사진. 무채색의 간판과 일정한 크기의 상호들. 정돈 된건 맞지만 쓴 돈에 비해 효과는 부족해 보인다.
우리나라 여행지 중에 몇 안 되는 교외의 창밖 풍경이 언짢지 않은곳 중엔제주도가 있었다.육지와 제주(제주 사람들은'육지에 다녀왔다' 혹은 '육지에서 온 물건'이란 표현을 쓴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런 풍경을 채우는 각종 시설물과 건축물에 대한 제도 탓만 할 수 있을까? 혹시 그 지역주민들의 연대 의식이 풍경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국민들의 가치관, 문화와 안목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의식까지 고려했을 때 언제인가부터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선진국'이라는 말을 우리 자신에게 써도 되는 걸까?
제주시 조천읍과 서귀포시 안덕면의 거리 모습. 공정한 비교를 위해 교외에 간판이 있는 지역을 캡쳐했다. 디자인은 통일되지 않았으나 그 위세에 있어 적정선을 지키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거리 경관이 간판에 대한 이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풍선 인형과 같은 과도한 간판들에 대한 규제와 디자인 가이드라인 외에도 도로 경관을 개선하기 위한 규칙과 정책으로는 전신주와 케이블의 지하화, 도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확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경관 개선의 주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녹지공간 조성 등 다양한 도시 계획과 연관이 있다.
제주도 바닷가나 한적한 도로로 나서면 도로변 풍경은 더 나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밀도의 차이 때문일까?
글을 시작한 뒤 어떤 주제이든 문제를 찾고 근원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도 재건축도, 도시도 경관도 모두 우리 스스로의 한계를 긋는 현실을 말해준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국교가 없는 한국에서 종교는 해당되지 않는다(아직까진). 이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힘들다. 불행한 과거의 탓으로 돌리려고 해도 AI 조차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의심할 만한 것은.. 디자인으로 시작한 글이 결국 정치와 교육에 대해서도 논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국민이 깨이지 않는 한 거리 풍경은 좋아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중요성.. 자연스럽게 학교를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다자녀' 디자이너 다운 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