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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Mar 24. 2024

그림과 AI

합성은 창조의 어머니

시티헌터 (City Hunter, 1985~1990년, 호조 츠카사 작)

당시 한국에는 공식적으로 들어올 수 없던 다른 일본 만화책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해적판(불법 복제판)으로 처음 접했을 것이다. 나 역시 사춘기 시절 언제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씨티헌터의 주요 안물들 서구적인 이목구비인데 동양인으로 느껴지는 섬세한 펜화로 인기가 대단했다.


특유의 유머 코드랄까 바람둥이를 자처하면서 썰렁하면서도 야시러운, 당시 거의 모든 일본 만화에 빠지지 않던 sexy 코드(코피 뿜는 드래곤 볼의 무천 도사, 틈만 나면 여학생들 골반컷을 넣어대던 H2, 등등)를 남발하면서도 절대 싸움에서 지지 않는 무적의 주인공. 섬세한 펜 터치에 남녀 모두 8등신의 시원시원한 비율이 도저히 짜리 몽땅 일본인들을 그린 거라고는 믿기 어려운 캐릭터들로 가득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원작이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화풍으로 캐릭터 비주얼이 인기의 비중에 컸던지라 만일 이 작품을 실사화한다면 과연 당대 어떤 배우가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을지 내가 연출자라 해도 동양인으로 연기 외모 액션  다 되는 배우를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니 실사영화는 일찍이 영화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1993년 홍콩에서의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시도가 이루어졌고 2011년에는 한국에서도 드라마를 제작했다. 모두 당대의 스타들을 동원했는데 홍콩 버전은 여주인공인 왕조현은 그렇다 쳐도 성룡은 시티헌터 원작 주인공 사애바 료의 이미지와는 너무 멀다.


원작의 그림이 너무 멋지다 보니 어지간한 8등신 미남 미녀들이 나와도 성에 안찬다.  성룡은 취권이 딱 인데..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프랑스 실사판도 있다.(맨우측)

국내 드라마 버전도 당시 최고의 비주얼 '꽃보다 남자' 이민호를 캐스팅했으나 훈남이라기보다는 쾌남에 가까운 주인공 료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고, 박민영 역시 8등신 이라기보다는 귀여운 이미지라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 내 맘대로 캐스팅을 한다면 남자 배우는 액션과 코믹한 연기가 모두 되는 이병헌(물론 최소 10년 전)도 괜찮을 거 같은데 기럭지 때문에 정우성이 나을 거 같고 차은우도 나이가 좀 더 들면 어울릴까 싶다. 여주 역시 기럭지를 생각하면 20대의 전지현이나 아니면 만화처럼 턱선이 강한 한효주도 괜찮을 거 같긴 한데 배우는 아니지만 걸그룹 르쎄라핌의 일본인 멤버 카즈하도 170cm 장신이라 어울린다. 고민하다 보니 만화의 이미지와 딱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정말 어려운 미션인 듯.


그러다가 본토인 일본에서 넷플릭스 버전 시티헌터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보았다. 일본인들이 메이지 유신 전 약 1000년 동안이나 '육식금지령'으로 인해 체구가 작아졌다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일본인 배우를 등장시킨 실사 영화를 볼 때마다 늘 원작보다 실사 인물들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지 체격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왜 그림이 배우보다 포스가 더 강할까?


리메이크작은 아니지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배우선정에 있어 결국 연기력이 제일 중요한 요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주연을 맡은 라미 말렉이 프레디 머큐리 특이한 구강 구조를 닮기 위해 마우스 피스까지 착용하고 연기했다는 사실은 비주얼의 싱크로율이 작품의 몰입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인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프레다머큐리(좌)와 이를 연기한 라미말렉. 이란혈통(파르시)인 프레디와 다른 이집트 혈통이지만 외모는 많이 닮았는데 프레디보다는 작고 왜소한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한류붐을 일으키고 있는 웹툰을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역시나 원작과의 싱크로율에 많은 공을 쏟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웹툰이 원작인 작품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당연하다. 영화보다 적은 제작비로 탄생되는 수많은 웹툰들 중에 팬들의 호응이 확인되고 검증된 작품의 스토리를 각색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 일터.. 게다가 웹툰은 글로 작성된 대사나 스토리 라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콘티(시각적인 연출)까지 되어 있는 셈이 아닌가? 


평범해 보이지만 김수현이 저 빙구 표정이 될 줄은..


웹소설 - 웹툰을 거쳐 실사화되는 경우도 있다. 배우 박민영은 역시 눈이 큰 로맨스 물의 여주에 어울린다.

더욱이 열정페이 논란 등으로 익히 알려진 웹툰 문하생들의 피땀눈물도 차차 AI로 대체되어 간다면 앞으로 더 쉬운 제작도 가능할 것이다. 아직 AI웹툰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고 하지만 이미 작업뿐 아니라 저작권 등의 다양한 현안을 해결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온다.



AI라.. 그런데 놀라운 포스팅을 찾았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223197373338726&id=1114939837&mibextid=NOb6eG


그토록 찾기 어렵던 시티헌터 배역과 싱크로율이 이렇게 완벽한 배우들이 어디에 있었나 했는데.. 그런데 잘 보니까 배우 싱크로만 완벽한 게 아니라 컷 자체의 구도 배우들 포즈까지 너무 똑같다. 게다가 같은 씬의 Variation까지.. 처음 사진만 봐서는 알 수 없었지만 같은 포즈의 만화 컷을 보고 나서야 이 역시 생성형 AI의 엄청난 합성 능력이란 걸 눈치챘다.


여주인공인 키오리를 그린건 아닌듯 한데 원작 작가의 특징이 미인인 여자 캐릭터들은 얼굴이 거의 구분이 되지 않게 그리기 때문에 여주 카오리가 분장한 걸로 봐도 무방하다


요즘 실사인지 CG인지 구분이 안 되는 카레이스나 전투기 공중전 게임 영상에 이어 또 한 번 허걱! 했다. 저런 페이크 사진이 가능하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 영상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이제 배우들도 긴장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머지않아 세트도, 카메라, 조명도 필요 없는 가상의 공간에서 역에 딱 맞는 AI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 한 편이 뚝딱 만들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아마 그전에 건축가들이 더 많이 사라질 것이다.


남자 주인공 료의 AI 이미지 중에 현빈이랑 비슷한 느낌의 컷이 있다. 그럼 차은우 보단 현빈이긴 한데.. 그가 료의 음흉하고 코믹한 연기도 커버 할 수 있을까?


위의 시티 헌터 주인공들의 이미지만 보더라도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최적의 배우를 AI가 그려내었다. 이제 그들이 연기하는 영상을 만들어 내는 일만 해결된다면 그 말은 단순 도구로서의 AI 가 아니라 창작의 영역을 AI가 이미 확장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최근 Sora라는 Open AI의 데모 영상을 보면 먼 미래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나의 직업 건축의 미래는 AI로 인해 어떻게 되는 걸까? 문득 지금 웹툰이나 만화만 논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색해보았는데 이미 AI가 만든 건축 이미지와 관련 글들이 잔뜩 뜬다.




건축가라는 직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이다. (굴뚝 산업 이라고도..) 따라서 상당히 보수적인 세력과 시선이 존재하며, 필자가 처음 이 업계에 발 들여놓을 때도 그동안 축적된'꼰대' 스러움에 이탈할 위기를 여러 번 격었다. 위의 두 포스팅을 보아도 타이틀은 건축가의 존재에 대해 걱정하는 거 같으나 결국은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유용한 도구로만 한정을 짓거나 소수에게 권한이 주어지더라도 결국은 인간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답정너 식의 인상을 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결국 건축은 웹툰이나 시티헌터의 AI 이미지와는 다르게 가상이나 그림으로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가 아무리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어도 결국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 물질로 지어져야 하며 지구라는 환경과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부합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AI, 건축 단 두 단어의 키워드로 검색. Mid journey 를 사용한 이미지 라고 한다. 다행히(?) 아직 실현성은 없어 보이는 디자인이다.


인간인 건축가가 설계를 할 때에도 현실성 없이 머리에서만 혹은 그림에서만 존재하는 경우에 우리는 그를 페이퍼 아키텍트 (Paper Architect)라고 비하할 때가 있다. AI가 건축가의 자리를 정말 위협하려면 가상의 3D 나 2D의 세계뿐 아닌 중력이 존재하고 대기가 존재하는 지구라는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복잡 다난한 법규와 민원과 같은 이해관계 그리고 결국 선 하나에 왔다 갔다 하는 공사비..'돈'에 대한 흐름을 인간만큼 피부로 느끼고 또 거기에 정주해야 하는 인간에 대해서도 더 철저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AI가 계속 발전하여 스스로 건축가의 모든 업무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무서운'지능'을 갖추게 된다면 과연 일방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만 할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쯤 되면 직업이 없어지는 것은 고민이 아닐 거 같다.


다음 편 'AI와 Avartar'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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