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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Jan 13. 2024

래미안과 힐스테이트

명품 주거를 찾는 사람들

삼성과 현대 그리고 다른 많은 국내 기업들이 브랜딩과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곳은 또 있다. 다름 아닌 부동산 불패 한국의 아. 파. 트.


신기하게도 한국의 대기업들 중에 건설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는데 저마다 모두 명품 주거를 표방하는 아파트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삼성은 래미안, 현대는 힐스테이트, 엘지(GS)는 자이, 대우는 푸르지오 그 외에도 e 편한 세상, 어울림, 위브 등등. 그중엔 캐슬도 있다. 사람들은 성 Cattle, 임페리얼, 로열, 이런 고급진 단어들을 비둘기집처럼 빽빽이 층층이 들어선 아파트에 갖다 붙인다.


필자는 서울 변두리 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대학생이던 1993년도에 분당으로 이사를 오면서 처음 아파트를 경험하게 되었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이른바 5대 1기 신도시는 1989년 노태우 정권에서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에 따라 조성되어 1991년부터 입주가 시작 됐다.


1기 신도시의 탄생 배경은 역시 집값 폭등이었다. 당시 1988년 올림픽을 전후로 시중자금이 부동산으로 대거 몰리면서 집값이 요동치며 엄청난 사회 문제가 되었고, 정부가 긴급 대책을 내놓은 것이 신도시 계획이었는데 이 대책은 효과를 보아 실제로 90년대 집값 안정에 기여하게 된다.


분당 신도시 (1991년~ ,용적률 약184%) 와 목동 신시가지(1987년~, 용적율 약127%)


1기 신도시 아파트 건설시기엔 아파트에 명품이라는 표현을 못 본 거 같다. 동시에 진행된 5개 신도시에 아파트 200만 호 건설은 실로 엄청난 물량이었기에 당시의 대한민국의 력으로 감당하기에 버거웠고, 이 때문에 결국 부실공사의 정황이 곳곳에 드러났다. 염분이 섞인 모래를 썼다는 소문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애써 외면한다 해도, 변형으로 인해 아파트 발코니의 새시가 잘 들어맞지 않아 냉난방에 취약하고 가구를 배치하면 어딘지 모르게 수평이 잘 안 맞는 건 감추기 어려웠다.


자가용 보급이 활발하던 시대에 맞춰 당시 아파트에는 드물었던 지하 주차장을 설치한 건 매우 환영받았지만 그 지하 주차공간은 요즘 짓는 아파트들의 그것과 비교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승용차만 겨우 다닐 수 있는 낮은 층고에 방수 처리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늘 습하였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형광등을 쓰던 시절이라 전기를 아끼기 위해 늘 어두침침한 상태였고 벽에는 곰팡이가 창궐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지하 주차장에서 세대 엘리베이터 홀로 바로 연결되지 않아 특히 우천 시 사용이 불편한 경우 대부분이었고, 아파트 현관 역시 좁고 어두웠으며 돌아 들어가는 계단참은 머리가 닿을듯한 경우도 많았다. 시공사가 과도하게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하여 직접 설계에 개입하는 등 1기 신도시 보다 7년이나 먼저 지어진 0기 신도시 (목동, 송파)보다도 결국 아파트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지만 주민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를 위안 삼아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지하 주차장을 갖춘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1986년),   조성룡 건축가의 작품으로 곡면 코어 외벽이 시그니쳐다. 40년이 다 되어도 여전히 튼튼해 보인다.


당시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잘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준공 후 30년도 채 되기도 전에 자신들의 자산의 폭발적인 증식을 기대하며 리모델링도 아닌 재개발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주민 대표들의 공약과 축하의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리는 요즘 분당의 세태를 보자니 설마, 이를 예상한 (아파트를 날림으로 지은) 건설사들과 당시 정권의 선견지명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근의 비행장의 고도제한 등으로 초고층 아파트 건립은 실질적으로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열악해질 주거, 교통 등의 환경은 뒷전으로 치우고 비현실적인 용적률(500%)을 제시하는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이 신도시 재건축의 도화선이 되어 버렸다.


아파트 건물의 퀄리티는 기본에도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각 단지의 입주가 점차 완료되면서 도시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아파트의 부실 공사 우려에도 불구하고 구 도심지에서는 볼 수 없던 잘 정돈된 공원과 녹지, 단지를 가로질러 조경과 어우러진 공공 보행로를 포함 소, 중, 대(광역) 생활권으로 나뉘어 촘촘히 짜인 도로와 교통 등은 당시 서울 구 도심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혜택이었고, 특히 접근성이 좋은 강남과 그에 못지않은 교육 여건, 대형 쇼핑공간과 인접한 의료 기관 등 최신의 도시 인프라로 인해 곧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탄천 자전거 길과 연계된 분당 중앙 공원의 모습



최초 계획보다 축소된 상업, 업무 지구, 우량 기업들의 입주 지연 등으로 베드타운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점, 완공이 계속 지연된 교통 인프라 등으로 초기에 불편을 격기도 하였지만 결국 분당 아파트는 투자 대상으로서는 명품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90년대 분당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2000년에 들어서 모두 쾌적한 신도시의 일상뿐 아니라 산 증식의 기쁨도 함께 맛보게 된다.



초기 분당 상권의 중심지였던 서현역과 연계된 삼성 물산 사옥, 그 아래 각종 이벤트가 열리던 삼성 프라자 중앙 광장(현 AK 프라자)


아파트가 명품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명품은 훌륭한 디자인과 값비싼 재료 혹은 첨단기술의 물성을 뜻하겠지만, 그런 건물의 하드웨어 만으로는 아파트 단지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분당의 예에서  수 있었다. 정말 명품 주거 단지가 되려면 그 아파트뿐 아니라 도시와 주변 환경을 보아야 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집에 틀어박혀 아파트 단지 안에서안주하여 지내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고 믿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대학로가 다 내 마당

여기서 잠깐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 나오는 정기용 선생님의 주거에 대한 단상을 짚고 넘어가 본다. 집은 자신의 몸하나 누이는 작은 공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닿을 수 있는 모든 장소, 내가 바라보는 모든 풍경이 모두 나의 거주의 영역 이므로 몇 걸음만 나서면 닿을 수 있는 대학로가 모두 다 내 '마당'이란 나레이션에 나는 무척 공감이 되었다. 꼭 나의 사유(私有)아니더라도 누릴 수 있는 도시 환경이 나의 삶의 질에 있어 너무도 중요하기에 내가 사유한 건축물 역시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공공재'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공공성과 윤리성을 같이 고민하여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평소 지론과 맞닿아있다.


고 정기용 건축가(1945~2011)와 생전 거주지 명륜동 일러스트


평생 스물두 번의 이사를 다닌 그에게 명륜동은 인생의 마지막 거주지가 되었다. 명륜동을 참 좋아하던 그였다. 햇살이 잘 드는 다가구 주택 5층의 작은 집은 따스한 안위가 되어 주었지만, 그가 각별히 애착한 건 명륜동을 둘러싼 풍경들이었다. 작은 베란다에서 바라보이는 오후의 낙산, 커튼 너머로 펼쳐지는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도시 풍경을 그와 ‘함께 사는 것’으로 여기며 사랑스러워했으며, 북악산에서 뻗어 나온 낮은 뒷산, 종묘와 창덕궁과 창경궁, 후원이 맞닿는 와룡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전경, 성벽 길을 오르며 오래된 서울의 한 귀퉁이를 바라보는 것을 ‘명륜동에 사는 사람의 특권’이라 여겼다. 주변의 공간들을 자신의 고유한 리듬과 연결하는 삶, 때문에 정기용에게 동네는 거주의 또 다른 영역이 된다. _ '정기용 그리고 서울'에서




살기 좋은 집 찾기

1기 신도시의 주택 보급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과밀화 집중화 현상으로 부동산은 계속 과열되었다. 2007년 참여정부의 주도로 2기 신도시를 만들었으나 판교, 위례, 광교 등 서울과 접근성이 좋은 몇몇을 제외하면 불편한 교통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다시 불어닥친 부동산 폭등에 대처하기 위해 2018년 정부는 3기 신도시 계획까지 발표하였으나 2기 신도시 비인기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교통 인프라 건립 일정이 묘연하고 공급 물량도 적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서울로 접근이 좋은 수도권 이젠 아파트를 지을 땅이 마땅치 않다.


서울외곽 및 신도시 개발 등으로 수도권은 전국대비 꾸준히 인구가 상승하였으나, 서울은 부동산 폭등으로 경기도로 인구가 유출 되는 현상과 출산율 감소로 오히려 인구가 줄어들고있다


책 처음에 다루었던 90년대 자동차의 대중화로 신도시 개발이 가속됐다고 할 수 있다.

1기 신도시는 서울 중심에서 반경 20k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조성되었지만 2기 신도시중 판교와 송파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30km 이상 떨어져 있다. 이러한 신도시의 확장은 더 멀어진 거리에 교통 혼잡까지 더해 매일 왕복 3시간 이상 길에서 보내야 하는 개인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수도권 과밀과 매일 서울로의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 그에 따른 환경 문제까지 야기되고 있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살아가는 우리나라과연 괜찮은 걸까?


환경이 파괴되면 좋은 집이란 건 의미가 없다. OECD 국가들 중에 온실가스 배출의 비중이 가장 큰 분야는 교통이다. 전기를 친환경이나 재생에너지로 만든다고 해도 전기차는 환경문제에 있어서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매연을 내뿜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쓰이는 화석 에너지와 타이어 마모, 브레이크 마찰에서 일으키는 미세먼지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더욱이 교통 체증에 있어서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저렴한 운행비로 인해 더 많은 도로 주행을 유발할 수도 있다.)



산업 활동별 온실가스 배출비교 (2019년, 좌) 기후위기와 이동문제를 다룬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교통과 도시문제를 다룬 책 '납치된 도시에서 길 찾기'에서는 철도를 뼈대로 한 대중교통과 걷는 것(보행)이 미래 도시를 위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이 좋은 대안을 실행 안 할 이유가 없겠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옳은 말을 잘 들었으면 과도하게 도시로 몰려 발생되는 문제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건강에 문제가 생겨야 나쁜 습관을 줄이듯이 생존에 심각하게 위협을 느끼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스스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고속 철도는 저렴하지 않다. 노선 철도는 쉼 없이 정기적으로 운행해야 하지만 늘 차량에 승객이 충분히 채워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량에 3명 미만이면 에너지 효율이 없고 6명 미만이면 탄소 배출량도 오히려 더 많다고 한다. 우리 집 다섯 식구(아이 셋 + 어른 둘)가 분당에서 부산까지 여행을 할 때 대중교통인 SRT를 타고 가면 자가용 SUV으로 가는 것보다 교통비가 3배(약 30만 원) 더 많이 든다. 부산에 도착해서 시내 이동을 위해 1박 2일 차량 랜트까지 고려하면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자동차를 무조건 배제하기보다는 좀 더 스마트하게 교통망에 배합할 필요가 있다.


2024년 GTX-A 완공을 시작으로 점차 확대되어 나갈 수도권광역 급행철도는 '살기 좋은 집 찾기'에 분명 도움이 될지 모르나 결국 수도권 과밀 현상의 해소가 아닌 또 다른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이 철도 역시 매일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에 따른 에너지와 환경 파괴(터널 공사 등에 따르는)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생계를 위해 매일 자동차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만 했던 사용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이동시간과 이동경험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수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교통비용 부담이  관건이 될 것이다.


GTX- A 시범 운영차와 광역 노선

- 다음글 '300 vs 36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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