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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Dec 09. 2023

갤럭시와 아이폰

세상을 바꾸는 힘

이번엔 다시 삼성을 들여다본다.


갤럭시의 탄생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자 삼성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았다. 당시 휴대폰 선두주자였던 모토로라와 노키아만 바라보고 정신없이 뛰던 삼성 애니콜은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자 2009년에 신속히 갤럭시 브랜드로 갈아탔고 오늘날 아이폰과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툴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세계1위 노키아에 늘 밀리다가 2011년 이후 스마트폰 시대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삼성은 애플과 1,2위를 다투게 된다.


그러나 삼성은 갤럭시 출시 한 해 전인 2008년에 (무려) 아이폰의 대항마라는 타이틀을 걸고 스마트폰 '옴니아'를 내놨었다가 쫄딱 망한 경력이 있었다. 옴니아는 모든 것 (All), 전지전능이라는 뜻의 라틴어 Omnia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전지전능 옴니아는 당시 60만 원 전후였던 MS 윈도우 모바일폰을 100만 원대로 끌어올리는 가격인상의 전능함 만을 보여준 체 역사의 그늘로 신속히 사라졌다. 휴대폰의 명품 브랜드화 (LG전자의 프라다폰, 삼성의 아르마니폰, SKY의 듀퐁폰 - 얼핏 스마트폰처럼 생겼으나 모두 피쳐폰이었다.)에 일조 혹은 편승하며 백만 원대의 높은 가격대로 출시하였으나 터치감이 무딘 감압식 스크린에 하드웨어 스펙이 믿어지지 않는 느려터진 퍼포먼스, 통신사 와의 결탁으로 wi-fi 속도에 제한을 거는 치졸한 상술까지 발휘하던 망작으로 삼성의 지울 수 없는 흑역사로 남게 됐다.



당시 한 학생기자의 글에 오른 비교 사진(아이폰과 옴니아의 스팩을 대등하게 적어놓고 은근 옴니아 편을 드는 글이었다.) 2009년 최고가를 경신한 프라다폰. 무려 170만원


옴니아의 출시로 구매자들을 본격 호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욕을 실컷 들어먹은 삼성이 순발력 있게 내놓은 것이 바로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갤럭시'였다.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게임이 생각났다.(X세대 감성..) 그 게임의 이름은 정확히 '갤럭시안(Galaxian)'이었는데 아이들 모두 '갤럭시'라 불렀고 후속으로 '갤러그'라는 게임도 나왔는데 오락실마다 인기가 많았다. 아마도 이후 세대에게 갤럭시라는 단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가 더 친숙할 거 같다.


갤럭시의 뜻도 정확히 몰랐지만 '애니콜'과는 차별된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에게 점차 받아들여졌다. 애플은 당연히 자사의 i 브랜드 시리즈 (imac, ipod) iphone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출시된 이후 단 한 번도 후발 주자에게 선두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압도적인 성능과 디자인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가장 인기 있는 명품 스마트폰 브랜드가 되었다. 2011년 또 다른 갤럭시의 경쟁자였던 LG 스마트폰의 브랜드 명은 '옵티머스'였다. 영화 트랜스포머가 처음 나온 게 2007년이니까 누구나 로봇 캐릭터 '옵티머스 프라임'의 이미지에 갇힐 수 있을걸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부터.. LG는..ㅜㅠ)


2009 최초의 갤럭시 GT I7500(해외) 과 A2010 (내수). 이후 중국 브랜드 등장과 2023년 삼성의 재역전을 보여주는 그래프


필자는 스마트 폰이 태동하던 시기에 아이폰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2009년 드디어 국내에 출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가서 개통을 한 얼리 어댑터(?)였다. 2008년 뉴욕 출장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쓱 꺼내 이런저런 사진과 자료를 두 손가락으로 늘렸다 줄였다 마술을 부리듯 보여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미국 건축가가 너무도 부럽던 터였다.


국내 소비자들을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쯤으로 여기던 국내 대기업(제조사와 통신사)들은 기기뿐 아니라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아이튠즈와 앱스토어 생태계를 만든 아이폰의 국내 출시가 반가울 리 없었다. 아이튠즈는 생산자인 뮤지션이 소비자에게 바로 음원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대형 기획사, 미디어가 장악하고 있는 음반업계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혁신적인 음반 유통경로였다. 앱스토어 역시 마찬가지로 누구나 쓸만한 앱을 개발하고 승인을 받으면 소비자와 바로 연결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시장이 열리자 수천 개의 앱이 순식간에 쏟아졌고 나 역시 몇몇 유료 앱도 사보았다. 이는 국내 음반 및 통신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애플이 만든 새로운 생태계 역시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기 위한 노출이라는 한정된 기회에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다. 애플은 2019년 아이튠즈를 없애고 애플뮤직을 론칭했는데 좋은 음악의 선곡을 위한 큐레이션에 집중하여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아이폰 1세대는 국내와 통신규격(GSM)이 달라 국내 도입이 불가능했었지만 다음 해 2008년 출시된 3G 모델부터는 한국에 못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기기에서 Wi-fi 기능을 제거해 달라거나, 국가기관 (방통위)까지 나서 GPS 기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둥, 국내 기득권 세력의 전방위적인 방해가 이어졌지만 결국 국민 여론에 못 이긴 KT가 2009년 11월 출시를 공식 발표 하였다. 출시가 계속 미루어지며 담달폰(다음 달에 출시 예정)으로 불리던 아이폰을 더 이상 못 기다린 진정한 얼리어댑터들은 해외에서 언락 된 기기를 들여와서 비싼 전파인증 수수료까지 직접 치르며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전방위 적인 아이폰의 출시 방해는 국내 제조사들이 아이폰에 대항할 준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이폰 3Gs 요금제와 개통을 위해 출시 행사장 (잠실 경기장)에 줄을 선 사람들


결국 제국의 침략에 맞서듯이 국내 대기업과 정부가 두려움에 떨며 연합하여 상륙을 막으려 했던 아이폰 오히려 난공불락의 노키아를 침몰시키고 삼성이 글로벌 시장 세계 1위를 다투는 휴대폰 제조사뛰어오르는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 되었다. 우리는 외세에 맞서 싸워야 할 때와 개방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를 구별해야 한다. 작은 불편과 불안을 피하려다가 뒤쳐져 더 큰 수모를 격은 수탈의 역사와 시대를 변화를 읽지 못한 근래의 패망(싸이월드)을 우리는 기억한다.


아이폰이 가져온 변화.

1989년 '영화 백투 더 퓨쳐 2'가 개봉되었을 당시 영화는 그때의 시점에서 한참 뒤 미래인 2015년을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 역)의 활약으로 인해 모두의 운명이 바뀌어 버린 미래(2015년)엔 자신이 좋아하는 스케이트 보드가 바퀴도 없이 땅 위에 둥둥 떠 있는 호버 보드로 바뀌어 있고, 사람의 몸에 맞춰 옷과 신발은 스스로 피팅이 된다. 미래 세상의 단골손님인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기본이다. 그러나 2015년은 이미 과거가 된 2023년 현재 그런 비슷한 것도 사용되지 않는다. 세상은 사람들의 기대만큼 발전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2007년에 등장한 스마트폰을 제외하곤.


1989년에서 바라보는 2015년은 무엇이든 상상만 하면 다 가능한 미래로 여겨졌던 것


누구나 쉽게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모습은 혁신 Innovation이나 혁명 Revolution 과는 거리가 있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누구도 생각 못한 물건이 나타나야 진정 혁신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아이폰처럼.


혁명이라 말할 수 있는 과거의 기술들은 우선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해 준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기술들은 산업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다음으로 사회를 고도화하고 더욱 발전시킨 기술은 소통의 기술, 즉 통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 국가라는 거대 조직이 탄생되고 점점 강력해질수록 구성원 간의 단합과 소통은 중요해졌고 그것이 곧 경쟁력이 되어 흥망성쇠가 갈렸.


TV의 파급력.

여성에 대한 차별을 넘어 야만적인 가학행위가 지속적으로 자행되던 인도, 파키스탄 지역에도 TV가 보급되고 나서부터야 비로소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고 한다. 전화와 라디오로 전해지던 말과 소리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화면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이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다. Radio 스타를 위협하던 TV는 방송국이라는 특정조직을 통해 제한된 영상만이 송출될 수 있는 공급의 한계가 있었지만 아이폰 탄생 이후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젠 이러한 한계는 사라졌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Youtube is killing TV!


개인 방송과 SNS가 바꾸는 세상.

2010년도에 튀니지에 재스민 혁명이 불어닥쳤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폐쇄적인 사회를 움직인 건 시민의 열망을 하나로 엮어준 SNS였고, 결국 이것은 실시간으로 개인이 영상을 전 세계로 전송할 수 있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힘이었다. 인터넷 망을 끊거나 특정 ip를 차단함으로써 독제 권력을 영유하려는 국가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나 TV 나 라디오 시대처럼 미디어의 장악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국경을 뛰어넘는 인공위성을 통한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점점 확대되는 추세이므로 국소지역의 통제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선 인터넷 통신망부터 파괴하여 우크라이나 군의 전술을 무력화하려 했으나, 미국기업인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 군에 무료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전세는 러시아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010년에 인터넷이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었다. 만약 인터넷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면 최초로 '사람 및 단체가 아닌' 무형의 기술이 상을 받는 사례가 된다. 그래서인지 노벨 위원회도 일단은 후보이지만 받을 리는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인터넷이 상을 수상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련 캠페인까지 벌어졌으나 결국 2010년 노벨평화상은 중국의 반체제 작가인 류샤오보가 가져갔다.


스타링크는 2018년부터 위성 약 3000기를 우주에 보냈다고 한다. 스타링크를 이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우)

아이폰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했던 당시의 한국을 돌아보니 얼마나 쇄국적이고 어이없는 시도였는지, 이후 스마트폰이 바꾸게 된 세상을 본다면 실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초강대국 미국 기업의 진출을 막을 힘은 애당초 우리에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당시 아이폰 출시를 앞당긴 건 직접 사들고 와서 전파 인증까지 해내던 개인들의 열망이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 중독, 특히 아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 책을 멀리하게 되는 습관들. 이미 요즘의 MZ를 포함하여 짧은 쇼츠 영상에 길들여진 전두엽 대해 사람들은 우려다.


앞으로의 인류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필자의 중학생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애플 2 컴퓨터를 시작으로 알게 된 스티브 잡스. 그는 살아생전 아이폰으로 세상에 어떤 변화를 바랐을까 궁금하다.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어땠을지.. Think different.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는 것들이 공존하는 지구 어딘가에선 여전히 소통은 묘연하고 전쟁의 위협은 계속되어 결국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어만 보이기에..


다음글 '스토어와 플라자'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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