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자녀 디자이너 Dec 23. 2023

스토어와 플라자

MZ들의 선택

삼성이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한 배경에는 민첩한 추격자 (fast follower) 전략이 있다. 반도체가 그랬고 휴대폰과 스마트 폰이 그러했다. 최선을 다해 선두의 뒤를 쫓는 것은 전쟁을 격은 우리나라가 전자 제품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 있어 취할 수밖에 없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지만, 이 스마트폰의 시대를 앞당기는 데 있어서는 대한민국이 적잖이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최초 MP3 플레이어를 발명한 곳은 디지털캐스트라고 하는 한국의 중소기업이었다. 1998년 3월 독일에서 열린 IT 박람회에 최초의 MP3 플레이어 (F-10)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때는 하필 IMF였고 자금 조달이 어려워 특허권을 미국 업체에게 넘기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진통 끝에 결국 그 유명한 아이리버 MP3의 탄생을 이끌어 냈다. 


세게최초 사용 mp3  MP F-20 과 아이팟 1세대


이후 MP3 플레이어는 음향기기에서 멈추지 않고 카메라를 장착하는 등 멀티미디어 디바이스로 진화했다. 후발 주자 아이팟 역시 Mac 환경의 필수 액새서리로 발전해 갔으며 2005년 출시된 아이팟 5세대는 사진과 동영상을 저장할 뿐 아니라 시청도 가능한 기기였다. 당시 뉴욕 비즈니스맨에게 필요한 것은 휴대폰과 이메일을 위한 블랙베리, 그리고 MP3까지 이렇게 세 가지를 각각 따로 들고 다녀야 했는데, 이를 하나로 모으는 아이디어가 바로 아이폰 개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러하므로.. 최소 1/3은 한국의 MP3 덕이 아닌가? 너무 뇌피셜인가?


MP3의 세계 최강이었던 아이리버의 전신인 레인콤은 1999년에 엔지니어 몇몇이 자본금 3억으로 설립한 회사였다. 이를 이끈 양덕준 씨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그가 삼성전자 출신이라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늘 뒤를 기만 하던 한국의 기업이 자신들의 발명품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의 시간이 흘렀으나, 곧 후발주자인 애플의 아이팟에게 시장을 내주게 된다. 그 이후에도 아이리버는 몇 번의 재 도약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때 세계 시장을 평정했던 iFP-100(2003) 과 애플을 씹어 먹는 광고를 냈던 (2005) 아이리버


우리에겐 왜 스티브 잡스가 없을까?

국산 MP3의 망에 이어 휴대폰 시장도 애플에게 위협을 받자 2010년 대한민국 여기저기에서 이런 자조 섞인 논조가 터져 나왔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에게 문화를 선물했고 삼성은 우리에게 광고를 선물했다.' IT 업계에서는 당시 MB 정부에게 화살을 돌리며 토건 공화국을 빗대 눈이 보이지 않는 삽질(노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평했다. 금전적인 이유로 대학을 중퇴하고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났지만 캘리그래프 수업을 청강하고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익혀 친구(위즈니악)와 집 차고에 회사를 차려 성공한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단순 정책의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당시 정권을 비난하던 사람들도 정작 차이의 본질까지 보았을지 의심스럽다. 세계에서 인터넷망을 가장 잘 갖추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가장 잘 만들던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과 비교해 당시 기업가치 두 배에 이르는 애플의 힘이 무엇인지 (2023년 현재는 약 10배 차이로 벌어졌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가 고인이 된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의 스탠포드 졸업 연설문을 읽고 유튜브를 보면서 그의 철학을 복기한다.


아이폰 원형과 거의 흡사한 아이팟터치 1세대(좌,2007)와 7세대(우, 2019). 이를 끝으로 아이팟은 단종된다는 설이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안주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도전에 한계가 없거나 'Think different'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상식을 깨는 것을 숭상한다. 애플뿐 아니라 'Don't be evil' 구글은 더 심오한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의 1류 기업들은 상대를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말한다. '마누라 자식 이외에는 다 바꿔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근면, 검소, 친애' 등 국내 대기업들의 어록들은 인간적이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당시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던 시대를 반영한 핵심가치(Core Value)를 표현한 것이겠지만, 이와 같은 브랜드 메시지는 기업이 성장 가능한 방향제시뿐 아니라 그 스스로 한계까지 모두 담고 있다.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건축을 포함 인간이 만드는 생산물 중 형태적으로 사각의 틀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상당히 많다. 각자의 모듈을 따라야 할 것이고 재료도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이젠 디자인만으로 차별어려워졌다. 한때는 쿼티 키보드가 따라다니고 최소한의 물리 버튼으로 쉽게 구분이 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사각의 커다란 화면만 남고 다른 요소들은 다 사라졌다. 미묘한 비례차이와 엣지의 디테일 혹은 후면에 보이는 카메라 모듈, 보일 듯 말듯한 로고 정도로 세심한 구분이 가능 뿐이다. 



나는 건축과 스마트폰 둘 중 어느 디자인이 더 어려울지 묻는다면 쓸 수 있는 어휘의 폭이 너무 작고 미니멀이라고 하기도 뭐 한 요즘의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쉬울 수도 있다. 현대카드의 정태영 대표는 미니멀 디자인이 무재능의 도피처처럼 활용되는 것이 싫어서 이제 벗어나는 중이라고 .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이 후로 15년간 후발 기업들 모두가 애플을 따라 했기 때문에 한국 제품이나 중국 제품이나 외형 디자인은 큰 차이가 없다.(적어도 내 눈엔) iOS와 안드로이드UI, UX 디자인도 더 이상 비슷하기 힘들다. 하드웨어 성능에 있어서도 갤럭시와 아이폰 동급에서 누가 더 낫다는 일방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갤럭시는 여전히 아이폰을 뛰어넘지 못하는 걸까? 현대가 독일차를 아직 못 넘고 있듯 디자인과 기술의 미묘한 차이도 존재하겠지만 그보다는 축적되고 각인된 애플 브랜드의 힘이 더 큰 이유라 생각한다. 물론 삼성도 중국 후발 업자들에게 똑같은 무기(브랜드의 성)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같은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이상 하드웨어 스펙만으로 격차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0대20는 아이폰이 70%. '갤럭시를 사용할거 처럼 생겼어'유튜브 '슈카월드'

'갤럭시를 사용할 거처럼 생겼어' 라니!

얼마 전 X세대 회사 후배가 MZ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테이블 위에 내놓은 들의 폰이 모두 도시락처럼 커다란 아이폰 프로(맥스)라는 걸 알고는 '내가 커피값을 왜 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성인 후배 역시 트렌디한 감각의 소유자로 아이폰만을   친구인데 200만 원에 육박하는 최고가 모델은 써볼 생각을 안 해 봤던 것이다. MZ들은 왜 아이폰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던 중 재미있는 '키즈폰의 함정'이라는 걸 알았다. 보통 한국 유년기 아이들에게 사주는 키즈폰은 보급형일 뿐만 아니라 여러 보호 장치들로 인해 부모의 통제를 많이 받는 기종으로 애플에서는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 조금 크면 부모님이 쓰던 스마트폰을 물려받거나 저가의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경우가 많다. 초기 브랜드에 대한 경험 자체가 그러다 보니 결국 아이가 자라서 스마트폰을 고를 선택권이 생기는 순간 '갤럭시'를 떠나고 싶은, 즉 약간 구렸던 '부모세대가 쓰는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갤럭시 S 써보니 괜찮네.. 그러나 갤럭시 A 이런 거 쓰면 개 지임. 아이폰 se 쓰고 말지'- 차라리 갤럭시는 저가 라인업을 다른 브랜드로 분리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거기에 더해 애플은 철저한 폐쇄 정책으로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아이튠즈나 앱스토의 폐쇄성은 두말할 거 없고, 안드로이드 기기와의 통신, 주변기기와의 호환이나 as와 관련된 부품 조달 등),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위즈니악과 애플 컴퓨터를 만들 때부터 폐쇄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했던 인물이었지만, 당시는 위즈니악의 반대로 그렇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에게 완벽을 바랄 수 없지만 개인사나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 일화를 보더라도 보통 까다로운 인물이 아님은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그런 독특함이 그의 업적과 무관하지는 않을 터이니 함부로 비판할 엄두가 나진 않는다. 어쨌거나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에 애플은 팬덤을 넘어 사람을 차별을 할 정도라니 경계심이 다. 그러기에 경쟁자 갤럭시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유튜브 슈카월드 화면 캡쳐

CPU의 속도나 메모리 용량등의 수치로는 갤럭시가 아이폰에 밀린 적이 없다. 초기의 둔감하던 스크린 터치나 카메라 성능도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애플 매니아는 사진의 '감성'이 다르다는 소리를 한다. 그 감성의 차이를 못 느끼면 아재란 소리를 듣는다. 카메라의 사양을 보면 센서의 크기나 픽셀의 크기도 갤럭시가 더 큰 걸로 나온다. 그러나 아이폰은 초기부터 카메라 스펙보다는 디지털 이미지 센싱 기술이 뛰어났고 여전히 그 차이를 느끼는 사람들이 감성을 운운하는 거 같다.


이럼 감성을 따라잡기 위해 삼성도 MZ 세대의 대표 아이돌 그룹을 광고의 전면에 내세우는 노력을 하였으나 광고 모델 역시 계약이 끝나자 곧바로 아이폰으로 갈아타는 등, MZ 아이돌에 편승한 브랜드 전략은 단발적인 효과에 그치는 마케팅 전술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났다. 지속가능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브랜딩이 절실하지만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세계 1위를 다투는 삼성 전자가 이렇게 고전할 만큼 브랜딩이란 것이 쉽지 않다. 현대 제네시스브랜드를 분리하여 선방한 셈이다.



갤럭시의 아재 감성은 얼마 전까지 삼성 스토어의 전신으로 전국에 포진해 있던 삼성 디지털 플라자 매장을 보면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복층 규모에 오만가지 제품이 다 있고 애플과는 비교 불가의 완벽한 AS 센터까지 갖추었지만 건물 밖 멀찌감치부터 느껴지는 버라이어티 하고 알록달록한 매장의 모습은 마치 배바지를 입은 아재의 패션을 보는 듯 너무도 촌스러웠다.


2018 문을 연 가로수길 애플스토어 vs 같은 시기 삼성디지털 프라자 홍대점.


그러나 갤럭시에게도 장점이 많다. 위에 언급했듯 애플의 폐쇄성에 반해 기기 호환성이 좋고 pc 와의 자료 이동도 훨씬 용이하다. 애플의 폐쇄성은 사 새활 보호 정책까지 이어져 국가 수사기관에서도 암호를 푸는 것을 포기할 만큼 엄청난 보안 성능을 갖지만 비즈니스에 필요한 통화 중 녹음 기능을 절대 넣지 않는 등의 불편함은 외면한다.


삼성도 편리함 만으로는 잡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깨달은 듯 이후 홍대 매장을 포함하여 전국의 디지털 플라자를 삼성 스토어라는 이름으로 외관부터 심플하고 깔끔하게 (애플스럽게) 리뉴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강남에 오픈한 '삼성 강남'은 화이트 위주로 따라 하던 애플 스토어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듯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2021년 리뉴얼한 삼성 홍대 휴대폰 센터(전. 디지털 프라자), 2023 '삼성 강남'


미친 듯이 심플 Insanely Simple

애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캔 시걸의 책으로 스티브 잡스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 제목처럼 애플의 제품뿐 아닌 건축, 애플 스토어와 사옥을 봐도 애플의 Simplicity는 얼마나 확고했는지 알 수 있다. 애플의 철학과 브랜딩을 다루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니 여기서는 이쯤 넘어가는 게 나을 거 같다. 다만 스마트폰, 스토어 그리고 또 다른 어떠한 애플의 결과물만 보고 삼성이 열심히 뒤만 쫓아서는 절대 애플을 능가하거나 대등할 만한 자리에 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결국 기업의 세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 철학이 만들어 내는 브랜딩 그리고 그걸 드러내는 디자인과 이미지의 싸움이 앞으로도 치열하게 이어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캔 시걸의 '미친듯이 심플' 2014 과 2017년 문을 연  애플파크 (애플링) 노먼포스터,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매거진의 이전글 갤럭시와 아이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