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밖엔 난 몰라
'아~아악~안 돼요~'
...
'노노노~ 오호 마이갓!'
미술 선생님의 엄숙한 발표를 듣고 어반 스케칭 (Urban Sketching) 시작한 지 불과 두 달의 미술학도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아니 안 돼요 못해요 절대 안 돼 저한테 뭘 어쩌라고요~Never & Never Possible...' 중얼중얼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요. 이제 겨우 황금분할과 원근법, 소실점, 입체소묘 같은 미술 용어를 익히기 시작했는데 나의 미술 선생님은 느닷없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우리 마을의 축제기간 그림 전시 일정과 준비할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지요.
MBTI검사에서 인티제 (INTJ) 범생이로 판명된 데다, 틈틈이 도니제티 (Gaetano Donizetti, 1797-1848)의 오페라곡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을 남몰래 애청하며,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쪽팔림으로 여기며 요령껏 잘 피해 다닌 제가 전시회에 걸 액자그림을 준비하라는 선생님의 단 한 마디에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고 위험 회피 노르아드레날린 (Noradreline) 호르몬이 흠뻑 분비되는 듯 아찔한 기분이었죠.
미술학원 늦깎이 연습생으로 시작하여 겨우 그림 서너 점 그저 원본 따라 그렸을 뿐인 사람에게 전시회 준비 소식은 생계와 주경야독 돈벌이 공부에 찌들어 잡초 무성하게 텅 빈 가슴속 무채색 정원에 느닷없는 예술의 날벼락이 치고 '우르르~쾅쾅' 천지를 진동하는 스트레스가 쓰나미로 밀려왔답니다.
연필로 그렸다 지우개로 지웠다를 여러 수십 번.. 노심초사 연신 '후~우~' 심호흡을 해 대며 한 땀 한 땀.. 그림에 익숙하지 않던 내 손목과 손가락의 관절들은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배움의 고통을 진지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여전히 쓰윽~쓰윽~ 시원스럽게 스케칭 하진 못해도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는 달팽이 더듬이처럼 내 온몸의 감각과 근육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연필 한 자루에 내 인생을 걸어 봅니다.
펜 한 자루로 스케칭을 완성한 순간 나도 모르게 노래 가사처럼 몇 줄 떠 올라 스케치북 모서리에 4B 연필로 스르륵~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갑니다.
[제목 : 노트르담 성당에서]
달빛에 스며들고 별빛이 내려왔지
석양에 취해버린 물감은 춤추었지
연노란 성당의 전등을 켜고
연보라 하늘빛 어두워 갔지
진홍물감 저녁길 노트르담 거리에서
당신의 걸음은 누구를 그리워할까
가로등에 부딪힌 성당 종소리는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꼽추의 영혼일까
(시작 : 최익준)
내가 걸었던 유럽여행길을 더듬어 회상하며 기억의 습작으로 볼품없는 그림 한 점 일지라도 마을의 가을 축제에 내 생애 처음 전시작품이니, 최애로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호고(Vincent van Gogh) 형님과 라울 두피 (Raoul Dufy) 형님이 살아 계시다면 샴페인 한 병들고 초대하고 싶어 집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께서 "늦깎이 미술입문자가 감히 유명 화가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정신상태가 관찰 대상이군!'이라며 '허허~이 사람 참~' 웃을 수도 있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술과 담을 쌓고 승부와 경쟁우위에 피 말리던 자본주의 검투사의 세계에 살던 한 인간이 숨 턱턱 막히던 효율성의 별을 잠시 떠나 공감의 별자리로 여정을 시도한,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인생 사건이지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 막을 내려야 할 운명이니 인생 후반전만큼은 우리가 평생 살아온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으로 이민을 떠나는 용기와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곳이 음악이든 그림이든 혹은 문학이나 춤이 되든.. 어린 왕자가 사랑하던 '낭만의 별'로 떠나지 않는다면 짧은 생에 무엇으로 기쁨총량을 누릴 수 있을까요?
혹자는 예술의 낭만은 경제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요... 저에겐 스케칭북과 스케칭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소박한 수채화 물감등을 준비하는데 4~5만 원이면 충분했으니까요.
여전히 전시회 준비를 생각하면 두렵고 떨리기는 하지만 '낭만의 별'에 발을 내디딘 용기와 기쁨을 위해 기꺼이 치를만한 대가 아닐까요? 다가올 마을축제 그림전시의 두려움 반 설렘 반을 당신에게 전합니다.
이제부터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낭만밖엔 난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