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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ing CEO Feb 22. 2023

우리들의 입춘대길(立春大吉) - 세상을 내편 만들기

진정한 내 편을 만드는 비결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겠지요?

드디어 개선장군처럼 봄이 성큼 오고 있습니다. 춥고 시린 겨울을 견딘 사람들과 꽃은 또다시 새봄 환하게 피어나겠지요. 지혜로운 선조들은 정월 보름 귀밝이술 한잔 걸치고 '봄이 시작(立春)되니 크게 길(吉)하고 경사(慶事)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祈願)한다'는 뜻의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부적 같은 휘호를 멋스럽게 대문에 붙이고 새 희망의 기운을 불러들였지요.


200년 전 영국에서도 입춘대길의 꿈을 노래한 젊은 시인이 있었지요. 배고픈 겨울과 기득권적 종교를 어쩔 수 없이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어둠의 시대에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을 것"이라며, 세상은 자유롭게 변화할 것이라며 봄의 새벽을 암시한 시인 셀리(Shelley, 1792-1822)의 시 한 구절은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봄과 동의어 아닐까요.


'봄이 오면, 봄꽃이 피면 내 삶에도 행복이 찾아올 수 있을까?' 라며 어리석은 질문을 해 봅니다. 점심 한 끼 1만원 지폐 한 장으로도 모자라 쩔쩔매는 봄, 미치게 오른 대출금리에 심장이 벌렁거려 밤잠을 설치는데 성과급 잔치하는 은행과 대기업 엘리트들의 양극화가 함께 오는 봄, 이웃 나라 형제들이 지진과 전쟁으로 피를 흘리는데 주말 맛집을 찾아 나서는 길의 2월 말 봄바람은 여전히 시리고 까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창백하고 푸른 은하계의 작은 별 지구는 새봄의 주기로 태양을 공존하니, 지구촌의 난방비를 아껴 주며 모두에게 따사로운 햇볕과 새로운 수확에 대한 기대만큼은 입춘대길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억겁의 블랙홀을 곁에 둔 우주에는 지구를 포함한 수천억 개의 은하계 별들이 살아 있다고 하지요.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따로따로 1000억 개 내외의 별들이 있다고 합니다. 1000억 개 은하계 중에 불과 한 점인 갤럭시(Galaxy) 은하계에 속한 너무나 작은 별 지구. 우주에서 바라보면 애처로울 만큼 푸르고-창백한-점 (blue-pale-dot) 지구에 우리가 살고 있다지요.


『코스모스(Cosmos)』의 작가이자 과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에 의하면 바람 속의 먼지(Dust in the wind)처럼 티끌과 같은 별. 그러나 인간이란 80억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푸르고 신비한 지구별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답니다.


태양은 빛의 선물을 끓여 창백한 별의 지구인들이 받아먹으라고 설익은 봄 쌉싸름한 햇빛에 버무린 새싹과 나물을 선물합니다. 지구별 속 새로운 봄의 공전을 시작하는 시린 새벽 어둠 속을 적막하게 뚜벅뚜벅 걸으며 숨 가쁘게 땀 흘리며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지요.



2월에서 3월로 향하는 새털구름 얼룩진 하늘을 바라봅니다. 태양 빛에 내 하얀 얼굴을 적시니 울컥하는 뜨거운 감정이 원단(元旦)의 하늘과 구름을 뚫은 빛에 솟구칩니다. 나도 모르게 “아~정말 행복하고 싶어” 무의식의 탄성이 나옵니다. 과연 난 진정 행복한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떠오르는 붉은빛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행복이란 높은 정신력이 낮은 정신력에 의해 괴롭힘을 받는 일이 없는 경지이며 안일이란 낮은 정신력이 높은 정신력에 의해 괴롭힘을 받은 일이 없는 경지"라고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의 '행복 정의'를 대입해 보니 나는 분명 대체로 행복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지난 삶 대부분의 나날에 심신이 결코 평화롭거나 낮은 정신력의 세계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감과 직장생활의 업무목표가 주는 스트레스가 어긋날 때마다 발현되는 패배감으로 나 스스로 화를 내기도 하고 배려를 벗어난 비루한 말과 행동을 후회하고 번민한 적도 참 많지요.


행복하기 위해서 내 주변에 나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사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검증된 사실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과연 나의 편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걸까요?


최고의 의미에서 진정한 '나의 편'은 나를 가만두지 않고 나의 내부 깊이 들어와 각을 세워 갈등하고 신랄히 싸우면서도 결코 무시하거나 추방할 수 없는 사람,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반기를 들지만 이상하게도(시간이 지나면) 그가 옳다고 생각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나의 편'이며 나 자신이 앞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근원적으로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피붙이 가족 간에,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는 동질적 조직의 동료 간에만큼은 내 생각과 의견이 다르고 신랄하고 치열하게 갈등하고 토론하되 "나는 당신 편이야"라는 진정한 격려와 응원을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국가의 안위를 따지며 싸우는 여야의 반대편 정치인들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싫어하고 반대하되, 미워하지 않는 세련된 동업자 페어-플레이-룰(fair-play-rule)을 보여야 대한민국 국민에게 입춘대길의 신뢰를 받지 않을까요?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태양같이 화려하고 빛나는 생을 살고 싶다면, 이 세상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당신과 내가 한 편이 되어 응원하되 '까칠한 벽돌 한 장'의 건강한 토론을 우정으로 이어 갔으면 많이 행복하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던 유명 인사들의 속내와 말년이 거꾸로 우울하고 힘겨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내가 힘겨울 때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내가 빛나는 성취를 이룰 때 치어리더(Cheer Leader)처럼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사후에도 수천 년간 말씀을 따르며 기도하는 추종자를 둔 예수님과 부처님에겐 왜 내 편이 많을까요?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풂을 모든 사람에게 행했기 때문 아닐까요? 결국 내 편을 만드는 행복은 내가 타인에게 먼저 다가간 배려와 나눔의 양만큼 늘어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쓰면서 저를 스스로 돌아다봅니다. 내 청춘 2막에 시작한 입춘대길은 십시일반 나눔과 기부행위로 쭈욱 지속된다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이웃에 대한 작은 친절, 기울어진 운동장의 밑단에 선 사람들에 대한 나눔, 창백한 지구 환경과 내가 사는 지역을 향한 성의껏 기부는 날이 갈수록 내 편을 많이 만들 것이고 맑고 푸른 지구를 다음 세대에게 행복하게 넘겨주고 떠날 것이니까요.


          

          추운 겨울이 온다 해도..

       

나눔은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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