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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ing CEO Jun 06. 2023

백록담에 올라 나 홀로 흘린 눈물

북극성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며칠 후 태풍이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더 늦기 전에 버킷리스트에 잠자던, 나 홀로 한라산 트래킹의 여행계획을 꺼내어 외로운 등반을 감행했지요.


사라오름을 거치며 숨 가쁨을 넘어 심장이 마구 터지도록, 심장 박동수 분당 165회로 바짝 밀어 올린 힘줄과 모세혈관의 파열을 두려워하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뚜벅뚜벅 오릅니다.

태풍을 예고하듯, 귀싸대기를 마구 때리는 비바람 강풍을 뚫고,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빗물 같은 땀을 쉼 없이 닦아 내며 오르는 이 길은 고통과 시련 말고는 아무런 재미없는 길고 투박한 산길일 뿐입니다.

'세상만사 저절로 되는 일 하나 없다' 되풀이 독백하며 타들어 가는 허벅지의 고통을 안은 채 새벽부터 시작한 백록담까지의 길은 멀고 지치며 지루함과 짜증이 반복하는 길일뿐입니다.



스무 살 갓 넘기고 군에 입대하며 처음 찾아간 한라산에서 "내가 다시 백록담에 찾아올 때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는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인생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르는 두 번째 이 길은 스무 살 시절보다 백배 천배 힘에 겹다고, 그만하고 내려가라고, 전성기를 지난 몸의 세포들이 괴뢰군처럼 아우성칩니다.


산의 세계든 세속적 일이든 정상으로 가는 오름길은 감당하기 너무 버겁습니다. 포기하고 싶어 집니다. 감각기관들은 이번 등반을 포기하도록 유혹의 귓속말로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오늘 정상에 올라 봐야 스무 살에 처음 만난 백록담과 다르지 않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니까 여기서 내려가 맛난 것 먹고 편안한 여행자가 되어 보렴~. 지금 되돌아가면 포기하면 네 심장도 근육도 마음도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온해질 거야! 맛난 음식과 와인 그리고 고혹적인 도시의 매력이 너와 할 거야··· 뭐 하러 이렇게 개고생해?"  


안개와 구름에 뒤덮이고 검은 현무암 돌무덤과 잡초 사이로 나 혼자 안절부절 잠시 방황하는 틈을 타 오름길 판도라의 사촌처럼,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산길을 내려가라고 귓속말로 내 등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며 내 마음 보석상자에 넣어둔 북극성 지도를 꺼내 봅니다. 북극성에 도달하기 위한 성장과 배움의 고통은 꿈의 사다리이자 디딤돌이라고, 불타는 허벅지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토닥여 줍니다.

요동치는 심장을 달래며,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걸어갈 길을 전망해 봅니다. 한라산 가는 길은 건강한 우주의 북극성으로 가는 꿈의 정거장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으니 내려갈 수 없는 일이지요.


현실의 길을 한 발 한 발 견디며 오를 때 스카프가 땀방울로 무거워질수록 제 영혼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북극성에 중독된 기운으로 묵묵히 오르니 어느새 환희와 희열의 “야후!” 소리치며 정상에 올라 감격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나는 자유다~ 북극성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감격의 눈물이 세파에 찌든 뺨을 타고 흐릅니다.



태초에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생명의 비바람과 적막한 푸른 하늘의 뻥 뚫린 공간이 나를 2600년 전의 세상으로 데려다줍니다. 유다 왕국의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로니아에서 쫓겨나 핍박의 2600년을 와신상담 견디며 20세기 이스라엘을 건국한 날 흘린 감격의 눈물이 이런 감정 아닐까 상상하며, 가난에 멍들고 꿈이 없어 괴로운 스무 살의 어둠과 상처와 고독을 백록담이, 깊고 푸른 물빛이 가만히 위로해 줍니다.


수천 년 난민의 상처를 딛고 나라를 되찾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있는데, 대한민국 70년 분단의 시간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라산 등정은 백두산 천지를 찾아 '살아생전 같은 하늘 아래 평화통일~'의 버킷리스트를 제공해 주었지요.     



오름길 고개 들어 본 하늘은 신의 장난처럼 무섭고 변화무쌍합니다. 흐린 비바람으로 우리를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어느새 신이 내려준 하늘이 서서히 나타납니다. 빗물에 섞인 땀방울을 닦고 정상에 서서 자유와 기쁨을 만끽합니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치고 짜증 남의 연속 같지만, 일분일초··· 자세히 관찰하면 제 인생길에 똑같은 길 똑같은 만남은 없었습니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포기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절망의 확인이다’라고 했다지요.



비록 100년 넘어 건강하게 살 수 없는 생물이 인간이지만, 짧은 인생길 몸과 마음이 상처로 지치기 쉬운 인간이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질 꿈, 상생하는 야망, 행동하는 용기, 봉사와 이웃에 대한 소소한 친절이 나를 자유롭게 하니까요.  


바람 부는 백록담에서 뜨거운 눈물 왈칵 쏟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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