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현장 여의도에서
MZ 후친 (후배 & 친구) 여러분 "Merry Christmas~"
여의도에서 언 손 호호 불며 핫팩에 응원봉을 들고 인사를 전하는 베이비 부머(Baby Boomer)입니다. 갓 환갑을 넘긴 우리들의 삶은 장대하고 다이내믹했습니다. 한 마디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기에 시대적 번-아웃(Burn-out)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보다 먼저 몸서리친 가난과 군사독재도 모자라 남북의 분단까지, 불운과 불행을 남 부럽지 않게 많이 가진 나라에 태어났습니다. 강대국들의 틈에서 지지 않으려고 다부지게 살았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회초리로 억세게 맞았습니다. 연장자에게 말대꾸하면 따귀를 맞았고, 선생님께 내 의견을 제시하면 책걸상을 드는 체벌을 받은 덕분에 베이비 부머는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났으니 앞만 보고 열심히 전속력으로 살았습니다.
올해 12월 3일 밤에 다음날의 새벽 출장을 준비하다가 대통령의 계엄 발표 장면을 보았습니다. 순간 '아~ 이런 종류의 계엄도 있구나··· 이미 대통령이 된 사람도 정적을 제거하고 싶을 때 계엄을 사용하는구나. 어릴 적부터 여러 번 겪은 쿠데타에 의한 계엄과 달리 민간인 출신 최고 권력자도 군인이 독점하던 계엄령을 악용하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순간, 허망한 생각에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떠올랐지요.
반세기 전 군사독재는 개발독재로 이어져 베이비 부머가 앞장선 산업화는 눈이 부시게 성공했지요. 개발독재 기득권 그룹에 끼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남은 인생의 카드는 일류 대학에 가서 남 부러운 직장에 안착하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그렇게··· 평생을 발가락이 무좀에 걸리도록 소처럼 일하며, 내 아이가 잠자는 새벽에 출근하고 그 아이가 다시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귀가했지요. 우리들의 무좀 발은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강대국으로 반듯하게 키워 놓았지요.
반공의 역사관에 충실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문예창작반 친구들과 미래 얘기를 나눈 결론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일거에 장군이 되는 것이 인생 1순위였고, 명문대학에 진학하여 화이트칼라 지식층이 되는 것이 2순위였으며, 그래도 안 되면 기자가 되거나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것이 3순위. 지금의 당신들이 생각하면 어처구니없고 웃픈(웃기고 슬픈) 것들 투성이지만, 왕조시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야말로 청년의 모든 꿈이던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는 시절을 겪으며 나름 대통령 직선제의 민주화 정부를 세웠지요.
대학교 입학식 날 늦겨울 추위가 매서운 3월이었어요. 노환에 아픈 몸을 이끌고 눈물 콧물로 키운 손주의 입학식을 보러 온 나의 할머님. 꼬깃꼬깃 모은 지폐를 손주의 호주머니에 찔러 주며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주신 할머님은 저에게 새로운 별을 마음에 담아 주셨지요.
그 별은 장군의 꿈도, 중상층 지식인의 꿈도 아니었지요.
"손주야~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고집쟁이 내 손주야. 너는 집안을 일으키되 먼저 양심을 지키거라. 너는 너대로 충분한 사람이 되었으니, 양심은 남에게 양보하지 말거라. 남의 것은 네 것이 아니다. 돈이 생기면 밥값은 먼저 내거라. 이웃의 것들을 탐내지 말거라. 이웃이 보기에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인생은 짧은 꿈을 꾸는 새옹지마 같은 거란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사랑하는 손주야" 지나가 보니 할머님은 저에게 예수님과 동격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치관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할머님은 '양심'과 '나눔' 두 가지의 유산을 물려주시고 병상에서 손주의 이름을 부르다 별나라로 훌쩍 떠나셨지요. 마음속 비가 내린 그날은 내 인생의 가장 아픈 날이었습니다. 입술에 피멍이 들도록 천지신명 앞에서 눈물 흘렸지요. 내 가족을 책임지되 이웃에 대한 '양심'과 '나눔'이 내 인생을 지배할 것이라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을 떠날 때 할머니의 별을 따라갈 동아줄임을 말입니다.
내 나이 이순을 맞은 날에 지난 시간을 복기해 보았습니다. 할머님이 물려준 두 가지의 유산은 다행스럽게 여전히 내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거친 시대를 겪어 오면서 그것들을 지키기엔 매우 버겁고 힘겨웠습니다.
윤 대통령의 계엄은 실패했으니, 더 이상 거들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명령대로 복종함이 일상인 일부 군인들도 헌법과 양심, 두 가지 다 쓰레기통에 버린 상관의 명령에 양심을 걸고 거부했는데, 내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 선량들이 무슨 양심으로 탄핵 투표장을 피했을까요? 정치적 색깔과 논리를 떠나, 국민을 대표한 헌법기관 선량*들이 백척간두 절벽에서 단체로 투표장을 비운 것은 신중함을 가장한 비겁함의 증표가 아닐지 말입니다. (*선량(善良) : 행실이나 성격이 착함을 뜻하며, 뛰어난 인물로 뽑힌 사람. 국회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정치적 견해가 아닙니다. 단지 보편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여름 물이 가득 찬 논은 모두가 다 풍성하고 비옥하지만, 가뭄이 들면 집마다 각기 소유한 논바닥이 갈라지고 말라 가는 것이지요. 가뭄으로 물 빠진 논바닥에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덮인 곳도 있고,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한 흙빛을 보인 논도 있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내 손자야, 너는 어떤 논바닥이 좋으냐?"며 소년 시절의 저에게 할머님이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저는 깨끗한 논바닥이 좋다고 했지요.
할머님은 "부잣집 논바닥에 쓰레기 꽁초가 흥건한 것처럼 흉물스러운 것이 없으니, 사람의 양심이란 이렇게 갈라진 논바닥처럼 어려울 때 벌거벗은 것처럼 여실히 드러난다 “ 하시며, 나를 지키는 보루는 양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하셨습니다.
무겁고 힘겨운 파도 같은 세상을 살면서 남달리 성공해 보는 것도 좋지만 마음의 논바닥 담배꽁초가 흥건한 '야심'보다 '소박한 양심'을 지니면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 하셨지요. 어쩌면 할머님은 굳이 단테의 <신곡>을 읽을 필요가 없는 분이었나 봅니다.
지금의 시련을 지나 인생의 석양을 맞은 베이비 부머가 무대에서 사라지고, 민주화가 굳건해지면 다음 세대 권력과 선량을 추구하는 자라면 더 이상 두리뭉실 야심의 칼날을 휘두를 기회가 적을 것입니다. 미래에 다시 위기가 오더라도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양심으로 투표장에 들어가 자신의 정견을 용기 있게 투표하는 자가 진정한 선량임을 증명하는 시대가 왔으니까요.
주변의 지인들은 저에게 "당신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아니면 중도인가?" 물어볼 때 저는 이도 저도 아무 편도 아니라고 명쾌하게 대답합니다. 저는 소속 정당보다 양심의 논바닥이 가지런한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고 비판받을지 모르지만, 저를 완전히 지배하는 저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합니다.
양심이 최선이고 야심이 그다음인, Libero Arbitrio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 누가 뭐라고 하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여러 번 읽었다 한들, 내 할머님의 마음이 담긴 그런 사람이 저에겐 국가 최고의 지도자감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세대를 책임질 당신들은 민심을 당심에 우선한 양심의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베이비 부머의 발가락 무좀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났으며, 촛불정신으로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당신들이 단단하게 계승시켜 주시길 원합니다. 이제 다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투표장을 거부하는 선량들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미래에 태어날 내 손주의 선배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혼동은 더 높은 선진 자유민주주의로 넘어갈 양심이 빛낼 어둠의 시간임을 믿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깜깜한 세상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 그림처럼 말입니다.
끝으로, 한강 작가의 문장을 소개합니다.
"가장 지독한 어둠이 가장 확실한 새벽의 징후임을 나는 수 차례 보았다"
우리는 언제 다시 어두운 권력자들을 마주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양초를 태운 촛불이 MZ 당신들의 응원봉 라이트로 바뀌었어도 시대의 어둠은 K-POP의 밝은 노래처럼 환하고 새롭게 걷힐 것입니다.
비록 당신들이 베이비부머와 다르다 할지라도, 여의도에서 "양심이 권력자를 지배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만세" 떼창을 목 터지게 부르며 응원봉을 신나게 흔들기를 바랍니다. 나는 성탄절 날 여의도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선불 결제로 응답하렵니다.
Merry Christm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