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주병진의 '이젠 사랑할 수 있을까' 후기
눈 부시도록 화사하게 찾아온 10월은 눈 뜨고 보니 훌쩍 떠나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바리톤 가수 김동규의 노래 첫 곡으로 시작한 지난 10월의 새벽하늘과 양털구름은 청량하고 유쾌했습니다. 쌉쌀한 공기를 킁킁대고 맡으며 여기저기 강연장과 공연장들을 쏘다니다 보니, 초대하고 싶지 않고 미루고 싶은 11월이 벌써 내 앞에 쑤욱 달려와 책상달력에 웅크려 앉아 세월의 흐름에 기겁하여 놀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합니다.
11월은 참 이상한 달입니다. 몹시 바쁜 일이 생겨도 바쁘지 않고, 종일토록 텅 빈 석양길을 걷는 허전한 기분입니다. 배불리 먹었는데 배 고픈 듯하고, 오랜 내 친구를 만났는데 속으로 시무룩합니다. 11월엔 허전함과 고독감으로 충만할 뿐입니다. 1의 숫자가 주는 '나 홀로'의 이미지가 두 개씩이나 바짝 붙어 있는 11월의 찬바람이 목젖으로 파고들어 가슴속에 구멍을 뻥하니 크게 뚫어 놓았습니다.
은행 낙엽이 찬바람에 쓸리는 편의점 간판등 앞으로 늦가을 허전함을 선물의 온기로 채우듯 '빼빼로 데이' 행사용 과자 꾸러미들이 가격대별 울긋불긋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과자 꾸러미를 사면 행복할까?' 내가 나에게 물어보니 틀림없이 그럴 것 같다고 합니다. 가족과 주변 동료들에게 나눌 겸 사들고 보니 꽤 마음이 따뜻해지기는 합니다. 10월의 화려한 불꽃축제와 거나한 예술행사들이 다 지나가고, 11월 11일 겨울의 문턱에서 휑하게 식어가는 스산함을 파고든 빼뺴로데이 과자상품 진열대가 오히려 훈훈하고 고맙습니다.
가정을 꾸리기에 충분할 재산이 있고 훌륭한 경력에 남 부럽지 않을 만큼 명성을 쌓았지만 나 홀로 독신자로 살아가는 60대 중반의 방송인이 '이젠 사랑힐 수 있을까?' 테마로 미래의 배우자를 찾아 맞선을 보고 데이트를 리얼하게 진행하는 TV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라 하여, 헬스장 트레일을 걷고 달리다 TV모니터를 켜고 찾아보았습니다. 독신남 출연자인 주병진 씨는 중매업 전문회사가 AI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인적사항을 성실하게 파악하고 심혈을 기울여 선별한 독신여성과 늦깎이 데이트를 한 소감으로 "제가 조금은 차분하고 이럴 줄 알았는데 마치 젊은 시절 이성과 함께 데이트하는 심장의 박동감을 느꼈다"라고 했습니다.
고독한 11월에 이성으로 만나든 친구로 만나든 내 잠자던 설렘의 세포를 빼빼로 과자처럼 깨물어 볼 수 있다면, 진정 우정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요? 이 시대의 새로운 사랑법을 찾아 떠난 그의 여정을 나는 힘껏 응원하기로 합니다. (이십 년도 넘었지만.. 같은 헬스장 구석진 스트레칭 공간에서 인사를 나누고 단 둘이 따로 코어운동을 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주병진 씨는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은행 낙엽이 찬바람에 쓸리는 편의점 간판등 앞으로 늦가을 허전함을 선물의 온기로 채우듯 '빼빼로 데이' 행사용 과자 꾸러미들이 가격대별 울긋불긋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과자 꾸러미를 사면 행복할까?' 내가 나에게 물어보니 틀림없이 그럴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랑을 뒤로 미루고 성공한 경영자와 유명 방송인 두 가지 커리어를 먼저 쌓은 주병진은 감각적 사랑보다는 눈높이에 맞는 사랑의 건축물을 왜 나중에 지을 결심으로 살아왔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저도 한때는 그런 심정으로 기업인으로 일에만 몰입한 시절을 보냈으니까요. 구조적으로 나랑 평생 갈 사람이 아니라면, 비록 그를 친구로 삼을지언정 사랑은 하지 않겠노라 결심으로, 고집스럽게 고독한 길을 걸어왔을지 모릅니다. 우연히 그리고 여전히 설레는 가슴속 씨앗을 발견했다면 나이 오십 세가 되든 백세가 되든 그게 무슨 상관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업타운 펜트하우스를 소유한 기업가이자 방송인 주병진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 내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너무 외롭다.. 집은 아무짝에 소용이 없다. 집에 누가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집의 크기는 정말 1도 필요 없다. 가족이 없다. 밥 먹을 때 되면 좀 슬프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막 눈물이 나는 거다.. 사랑하는 방법론을 잘 모르겠다. 교과서적으로 공식 비슷한 건 알고 있지만 나는 그것조차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며 과거 상처로 마음을 닫았다고 심경을 토로 했습니다. (출처: tvN 스토리, '이젠 사랑할 수 있을까')
철학적 작가이자 건축가 승효상 씨는 그의 저서 '빈자의 미학'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좋아함의 땅을 토대로 건축을 짓는 일과 같다. 사랑은 훌륭하게 좋아하는 것이다. 그 사랑 건축물에는 훌륭한 건축을 짓기 위한 태도와 (작가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이 들어갸아 한다. 사랑은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지고 성실한 태도, 환대하는 배려심, 그리고 그것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습관이 필요하다.' 했지요.
제가 정의하는 사랑이란.. "좋아하는 대상을 만나 든든한 건축물을 지어 가는 일. 성실한 태도로 지지하는 관계를 만드는 습관" 저의 현재까지 살아온 결론이기도 합니다.
카톡 등등 소셜 네트워크 없이는 온전히 살 수 없는 이 시대에 그냥 좋아함과 사랑함의 사이에서 혼동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하려면 위 문장에 답을 써보고, 따져 보고, 고민해 보라고, 그에게 그리고 사랑을 두려워하는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연인 같은 친구가, 친구 같은 연인이 내미는 선물꾸러미가 기쁘기는 하지만 그 선물이 그와 나의 삶을 구조적으로 충만하게 지지할 것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길 말입니다.
나 홀로 밥 먹고 잠자는 생활이 감각적으로 외롭다는 이유 때문에 무너지거나, 견고하고 튼튼한 사랑의 건축물을 지어나갈 꿈을 포기하거나 타협한다면, 우리 인간은 쓸쓸한 11월의 달력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 이끌릴 때, 함께 키우는 꿈이 내 미숙한 젊은 날들의 깊은 상처보다 커져 가는지..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며 곰이 되어 밤낮으로 바라보고 관찰하여 신뢰가 간다면 운명을 거는 용기와 결단으로 서로 의지하며 밀어붙이라고 말입니다.
지난겨울부터 저는 일주일마다 한 권의 책을 잃고 회원들과 토론하는 독서토론회에 가입했습니다. 독서회 신입생의 첫날 독서회원 선배들이 저에게 독서회를 지원한 이유를 물었지요. "책을 좋아 하긴 하는데 사놓은 책들을 바쁘다 핑계로 완독 하지 못한 습관을 완독 하는 습관으로 변화하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주 한 권의 책을 완독하고 독후감을 일기장에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었지요. 드디어 6개월이 독서클럽 시간이 지나고 한 달 동안 클럽의 방학을 보냈습니다. 책에서 훌훌 벗어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독서방학 기간 중에도 내가 원하던 또 다른 책을 읽으며 스스로 놀라워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책 읽기를 그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건축가 승효상이 말한 것처럼 독서와 독후감의 건축 구조물을 나답게 내 것으로 성장하도록 독서를 사랑하게 된 것이지요. 사랑은 이처럼 태도를 바쳐야 만들어지나 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알게 되면 탐구해야 하지요.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무엇이며 그의 아픔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사람의 강점과 약점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하겠지요.
저에게 사랑을 한 두 개의 단어로 묻는다면 '진정 좋아해 익힌 태도' 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친구든 연인이든 좋아하는 이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얼마든지 많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알게 되면 탐구해야 하지요.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무엇이며 그의 아픔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사람의 강점과 약점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하겠지요.
만일 누군가 맘에 든 배필감을 만났다 해도 그와 나를 지킬 자신이 없다면, 사랑하지 말아야지요.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길 들이는 것"이라 했으니 말입니다.
'이제 사랑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만큼은 리모콘 주도권을 쥐려고 매일 다투는 아내와 사이좋게 보며 응원할 겁니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가 사랑을 시작한 누군가에게 길들여 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