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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군이 Mar 22. 2024

넌 수영에 빠졌고 난 일이 하고 싶다.

결국엔 우리 둘만 남겠지... 사이좋게 지내자!

결혼하기 전 친정식구들과 사는 아파트 단지는 수영장이 있었는데 20살 넘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 중 유일하게 나만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안경 벗으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쭈뼛거리며 찾아간 초급반은 첫날부터 나를 현타 오게 만들었다.


분명 초급반인데 왜 다들 잠수도 하고 물에 뜨기도 하고 킥판 잡고 앞으로 가는 건지... 완전 쫄보이자 초초초급이었던 나는 비슷한 또래 언니 한 명과 함께 뒤처졌고 그날 50분 동안 잠수만 연습했다...


그래도 불굴의 한국인이라 그런지 순간 너무 화나서 악착같이 연습했더니 나름 우수한 수강생이 되었다. 때마침 도수 있는 수경에 대해 알게 되었고 드디어 나도 뿌연 물속이 아닌 환한 세계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며 신나 했는데 도수 있는 수경 끼고 자유형을 시작하자마자 멘붕이...  그동안 내가 수없이 먹었던 수영장 물에는 건더기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바로 수경은 안 보이던 걸로 바꿔꼈는데 접영에서 고비를 맞게 되어 겸사겸사 나는 수영과 굿바이를 했고...


아이 낳은 후에도 도수 없는 안경을 끼고 잠시 하긴 했지만 결국 접영의 고비를 넘지 못한 채 접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편과  연예할 때부터 물놀이장을 가면 하루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았고 개헤엄을 치더라도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나의 그런 성향을 아이도 닮은 것 같다. 분명히 짜증 내고 물놀이 안 한다 하더니 어느새 수영장에 들어가 계속 놀다가 나나 남편이 잠시라도 쉬려고 하면 쉬지 말고 물놀이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서 한 번 물에 들어가면 3시간 이상은 기본! 중간에 남편은 지쳐 널브러져도 나와 아이는 미친 듯이 뽕을 뽑는다.


그래서 발리 여행을 계획하면서 바다 수영은 자주 못하더라도 수영장에서 물놀이는 꼭 하고 싶었다. 좋은 호텔로 가면 수영장도 더 멋들어지겠지만 우린 그런 능력은 없으니 작은 수영장이라도 꼭 보유한 곳으로 골랐다.


그전에도  스노클링을 하긴 했었지만 길리에서 바다거북이랑 새로운 물고기들을 봐서 신기했는지 아이는 물안경이 아닌 스노클링 마스크를 끼고 놀기 시작했다. 물론 길리에서 같은 호텔에서 7박 동안 있고 너무 습하고 더워서 막판에 아이는 짜증을 내고 수영도 하지 않았다.


우붓 에어비엔비 숙소에서도 자그마한 수영장이 있었고 워낙 작은 규모라 다른 손님들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다. 새로운 곳에 와서 그런지 아이는 스노클링 마스크를 끼고 물속에서 회전을 하고 거꾸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또다시 쉴 새 없이 물놀이를 해댔다.


그 모습을 보며


'그럼 그렇지. 그 피가 어디 가냐...' 생각하며 아이가 노는 모습과 드넓게 펼쳐진 전망을 보는데 저 멀리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까이는 에어비엔비 숙소를 정리하는 직원들...


순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멋져 보였다.



'나도 일하고 싶다...'


아니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비싼 돈 들여 큰맘 먹고 여행을 왔는데 보름도 안 돼서 다시 일이 하고 싶다니!!!


그게 나였다.


사실 내가 쉴 수 있을지도 많이 고민했고 상담도 받았는데 항상 일만 하시면서 놀면 안 된다고 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에 대해  다시 깨닫고 노동의 가치를 알고 다시금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는 점?! 다들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다시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응원을 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로 한식 먹기!!!


다행히 아이도 콜을 외쳤기에 다 같이 오토바이 타고 우붓시내로 나가 미친 듯이 한식을 먹었다. 비록 분식이었고 가격이 좀 있었지만 점심 건너뛰었으니 저녁은 두둑이 먹기로!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만 그랩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기사님한테 안 되는 영어와 손짓과 표정으로 엄청 부탁하여 보냈는데 다행히 어플을 통해 잘 도착한 것도 확인했고 물론 아이가 문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나와 남편은 깜깜해진 우붓시내를 돌아보았다.


아기자기한 상점을 같이 구경하며 남편이 사준다고 액세서리를 골라보라 하기도 했지만 그냥 이런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물론 이제 훌쩍 커버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아이의 빈자리도 느껴졌지만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몇 년 후면 아이는 독립을 하고 나와 남편 둘만 남는다.


지금도 워낙 투닥거리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에 서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길 바라며... 그렇게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은 드디어 우붓에서 하고 싶었던 바투르화산투어를 해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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