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 맞춰주기 피곤해
발리를 가기 전에 잠시 알아보면서 바투르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처음엔 지프투어를 본 것인데 알아보다 보니 트래킹투어는 더 힘들지만 직접 올라간 만큼 더 뿌듯하고 마그마연기(?) 같은 것도 관찰할 수 있다고 해서 더 혹했다.
물론 같이 가는 남자들이 협조를 하지 않겠지만 어차피 운동화 하나쯤은 챙겨갈 테니 상황 봐서 결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춘기 아들만 복병이 아니라 반백살된 남편도 복병이었다. 걷는 것도 힘든데 산을 어떻게 올라가냐며 트래킹은 당연히 거절했고 지프투어조차도 새벽에 일어나서 가기 힘들다며 투덜댔다.
내가 다른 건 다 포기해도 바투르는 포기할 수 없었다. 트래킹이 안된다면 지프차투어라도 해야 했고 그리고 지프차 한대 빌려 투어 하는 것이니 셋이 가야 유리했다. 아이에게 슬쩍 말했더니 역시나 짜증을 냈지만 수영보다 훨씬 차를 좋아하는 녀석이니 전날 우붓시내에서 예약하고 다음 날 새벽 3시 30분까지 픽업차가 오기로 했다.
꽃단장은 필요 없었지만 새벽 3시에는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두 남자가 얼마나 협조를 할 것인지 너무 걱정이 되어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새벽 2시 30분... 조심스레 일어나 준비를 했다. 아침공기는 차가울 수 있으니 겉옷도 챙기고 지프차를 타고 가는 바투르산은 어떤 환경일지 모르니 이것저것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3시경이 되었는데 조용해야 할 주변이 '부르릉부르릉~~'거리며 요란했다. 그 소리에 남편이 후다닥 일어나 준비하더니 나가고 아이도 별 말없이 일어나 차를 탔다.
그렇게 우리는 엄청 요란한 차를 타고 컴컴한 곳을 향해 달렸다. 졸리기도 했지만 혹여나 이상한 대로 데려갈까 봐 무서워서 두 눈 부릅뜨고 중간중간 동영상촬영까지...^^;;;
기사님께서는 한 시간가량 달려 어딘가에 멈춰 두리번거리시더니 옆에 주차되어 있던 지프차를 타라고 하셨고 예약금 외에 나머지 금액을 모두 지불하라고 했다. 이 사람들을 믿고 줘도 되나 싶긴 했지만 어찌 됐건 오늘 시간 맞춰 숙소로 데리러 왔으니 일단 믿고 돈을 넘겼다.
지프차에는 상당히 어려 보이는 또 다른 운전자가 타고 있었고 나와 아이는 뒷자리에 남편은 앞자리에 앉아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뻥~ 뚫린 차라 춥긴 했지만 지프차 탑승에 아이는 좀 신난 눈치였다.
아무튼! 우리는 예정된 픽업시간보다 일찍 차를 타고 출발했고 가는 내내 우리 말고는 다른 차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너무 일찍 도착하게 되면 추위와 고생해야 할 것 같아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느새 산길을 올라가던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놀랐다. 이미 많은 지프차가 도착해 있었고 사람들이 지프차 위에 올라가 있거나 돌아다니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지프차 운전사님은 없는 자리를 비집고 주차를 하더니 아침이라며 토스트와 커피를 갖다 주었다.
그제야 남편은 바투르투어에 호기심이 생겨난 것 같았다.
사실 예전에 셋이 베트남 무이네 여행을 가서 일출투어를 했을 때 뜨는 해를 보지 못해 남편은 이번에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출을 보는 것보다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지프차를 타고 그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 장관이었기에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는 아주 큰 재미였던 것이다.
난 지프차 지붕에 올라가는 것은 무서워 생각도 안 했는데 운전기사가 사진 찍어준다면서 이런 포즈, 저런 포즈를 요구하며 지붕에도 올라가라고 하니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하겠냐 싶어 낑낑대고 올라가 많은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해가 다 떠서 끝인 줄 알았는데 운전기사님은 차를 타라고 하더니 화산폭발 후 잔재가 남아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사실 어제 예약하면서 나는 지프차 타고 가는 바투르만 외쳐댔는데 여행사가 사기 치지 않고 알아서 다 해준 듯하다. ^^;;;
계획 따윈 개나 줘버리는 사람들과 가다 보니 나도 디테일하게 알아보고 가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한 곳을 방문하게 되니 놀람과 감격, 감탄이 몇 배로 더 커졌다. 남편도, 아이도 두 눈 휘둥그레져서 둘러보았고 사진기사로 변신한 운전사의 포즈 요청에도 다들 열심히였다.
새벽부터 출발해 피곤하고 졸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일정이 두 눈 번쩍 뜨이는 여정이 되고 있었다. 다만 오래 구경하진 않고 짧고 굵게 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지프차 운전기사가 당황하긴 했지만 우리는 초스피드로 일정을 마치고 다시 처음에 운전해 준 기사님을 만나 에어비엔비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예전에 검색하다가 전망 좋다던 카페가 슬그머니 떠올랐고 이름은 떠오르지 않아 이곳에서 유명한 카페를 잠시 들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히 데려다주겠다고 하시더니 내린 곳은 역시나 내가 떠올린 그곳이었다.
아이는 왜 바로 숙소로 안 가고 카페를 가냐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지만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전망을 보곤 잠시 조용해졌다. 남편은 이런 곳을 알고 있었냐면서 너무 멋지다고 또다시 감탄을 연발했다.
굳이 유명한 곳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고 관광지는 사람 많아 피곤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 방문해 보긴 해야 할 것 같다. 날씨가 흐릿했음에도 뻥 뚫리고 한국에서 보지 못한 화산재 전망이다 보니 감탄 연발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멋진 전망에 커피를 호로록 마시고 아이는 차와 빵까지 야무지게 시켜 먹더니 다시 차에 타서 그때부턴 미친 듯이 졸기 시작했다. 새벽엔 깜깜해서 안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해가 떠서 잘 보이니 쏟아지는 졸음을 물리치고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구글지도를 통해 우리들이 가고 있는 길을 살폈다.
한참을 달렸는데 계단식 논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가 뜨갈랑랑(??) 이야??"라고 남편이 물었고 구글지도로 확인하던 나는 맞다고 대답했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발리스윙을 타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걸 또 운전기사분이 들으셨는지 가보고 싶냐고 물으셨다. 나는 멈춰서 구경하면 추가금이 붙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보고는 싶었고 다시 오게 되면 어차피 교통비가 들어가니 "yes"를 외쳤다.
미리 예약해서 가면 조금 할인이 되었겠지만 계획해서 가기가 쉽지 않기에 기회는 이때다 싶어 기사님이 안내해 준 곳에 내리면서 자던 아이를 깨웠는데 아이가 갑자기
"엄마!! 숙소에 간댔잖아!! 빨리 가!! 그냥 가자고!!"라며 두 눈 부릅뜨고 이야기하는데 순간 내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무서웠지만 여기서 쫄 수 없었다!!
"기사님께서 여기 잠깐 내려서 보라고 하셨어. 내가 그런 거 아냐~"라며 아무 죄 없는 기사님 탓을 했지만 아이는 내가 결정한 것이란 걸 눈치챘는지 그냥 빨리 가자고 성화였다.
때마침 기사님께서 안내판 같은 걸 주시면서
"그네 탈래?"라고 물어봐주셨고 나는 안내판을 들으면서 아이에게 내밀었는데 짜증 내던 아이가
"나 집라인 탈래!!! 발리스윙은 초등학교 다닐 때 애들하고 미친 듯이 많이 타봤어!!"라고 했다.
숙소 가자고 성질내던 아이가 갑자기 집라인 탄다니 어이가 없긴 했지만 잠시나마 시간을 끌며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라고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 그네를 요란하게 타던 아이라 발리스윙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작년 중학교 수련회 때 친구들과 탄 집라인이 더 재밌었나 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안전한 것인지 또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너무 재밌을 것 같다며 신나 했다.
"쟤 제정신일까???" 남편에게 순간 돌변해 버린 아이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어 이야기를 건넸지만 남편도 어이없어 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유명한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었고 아이를 집라인 태우러 갔는데 직원조차 없어 조금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나타난 직원들은 본인들이 직접 타면서 안전한지 점검했고 그제야 아이는 장비를 착용했다.
"근데 엄마... 나 사실 아까 비몽사몽이었어..."
아까 나한테 그렇게 성질내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아이는 재밌을 것 같다며 신나 했는데 막상 타려고 위험안내서 같은 곳에 본인이 직접 서명도 하고 장비도 착용하니 제정신이 들었는지 미소가 사라졌다.
잠시 아이가 탈 집라인을 살펴보니 엄청난 높이에 위치해 있었고 직원이 확인했다지만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장비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직원에게 체크! 체크! 또 체크해 달라고 하는 것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던 아이는 출발선에 섰고 쫄보엄마는 그 옆쪽에서 동영상 촬영 준비 중이었으며 더더더 쫄보아빠는 넋을 놓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으악~"
짧디 짧은소리만 남긴 채 아이는 집라인을 타고 갔고 반대편에 도착할 때까지 남편과 나는 덜덜덜 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잘 도착한 것 같았고 더 올라가더니 다시 집라인을 타고 이번엔 아주 여유롭고 신난 표정으로 돌아왔다.
"너무 재밌어! 에이~ 그리고 별로 안 높네~"라며 또다시 허세 장착!
그래 안전하게 잘 타고 왔으니 이제 허세 부릴만했다. 엄마, 아빠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까... ^^;;
새벽 3시부터 시작된 우리의 관광은 오전 10시 30분경에 무사히 숙소에 돌아오면서 끝났다. 바투르 투어에 부정적이던 남편은 그날부터 바투르 앓이를 시작했고 바로 그다음 날에는 남편과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둘러보기도 했다. 발리는 우기였지만 바투르 산 지역은 시원하고 쾌적했기에 나도 참 좋았다.
발리... 너무 재미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