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카드값만 좀 내주면... 더 알차고 신나게 보낼 수 있는데^^;;
어릴 때부터 줄줄이 동생들을 돌봐왔고 커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육아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남편은 출장이 잦아 한 달씩 집을 비워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고 다행히 아이도 예민하지 않게 잘 커주었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 이모들, 삼촌까지 집안 내 유일한 아이였기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교육기관은 6살 때부터 보냈지만 그전까진 오전엔 산책이나 작은 산을 오르며 자연을 알아가고 오후에는 동네를 탐방하며 다양한 체험도 하고 출장 갔던 남편이 오면 여기저기 다니며 캠핑도 참 많이 했고 여행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내겐 친구 같은 아이였다.
남편에게도 그런 아이였다...
코로나를 겪으며 극도로 몸을 사렸기도 했고 또다시 이런 시간이 있지 못할 거란 생각에 과감히 추진한 것인데 아이가 이렇게나 힘들어하고 짜증 내며 악을 쓸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와중에 아이만 아팠으니 부모의 마음은 좌불안석...ㅠㅠ
아이의 장염증세가 많이 호전되자 남편과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나가 커피 한잔을 마셨다.
우리가 성장할 때는 부모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자란 터라 외동아이라 엄하게 키우되 아이로서 누려야 할 권리는 누릴 수 있도록 해주려 했는데... 그리고 중2로 올라가는 이 시기가 학습적으로 중요한 것은 알면서도 다양한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자유롭게 살기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게임과 친구만 원하고 여행은 계속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부모이지만 여러모로 상처를 받은 후라 서로 보듬었다. (지금 기억으론 보듬은 것 같은데 서로 깠으려나??^^;;;)
아무튼!!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현실 세계로 돌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점점 느끼고 있던 터라 최대한 마지막을 불살라보기로 했다. 현실로 돌아가면 남편과 내가 백수라 당장 먹고 살 날이 갑갑했지만 아직 우린 꿈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니 미친 척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폭풍 검색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가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고 컨디션도 상당히 좋아졌기에 오토바이를 타고 아이가 좋아하는 새를 보러 가자고 꼬드겼다. 아이는 귀찮다며 짜증을 내긴 했지만 지역을 옮겨왔음에도 본인은 며칠 째 숙소에만 있어서 심심했는지 외출복을 입었다.
아이와 남편은 빌린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나는 그랩오토바이를 불러 출발했다.
사실 발리에 대해 알아볼 때 숙박하면서 기린에게 먹이도 주고 수영하며 동물을 볼 수 있는 호텔을 가고 싶었는데 너무 비쌌다. 아이가 어리거나 입장권 금액을 뽑아낼 정도로 동물에게 관심을 보였으면 금전적으로 무리가 가더라도 고민한 후 갔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사춘기가 올 정도로 컸고 덥다고 짜증을 내면 나도 돈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 것 같아 포기하고 저렴이 숙소들로 다닌 건데 새 공원은 그리 크지 않고 요금도 조금 저렴해서 가기로 급 결정!
새 공원 도착하기 3분 전부터 내린 비는 입장료를 끊고 들어가자 미친 듯이 퍼부었다. 또다시 아이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20~30분 정도 내린 비지만 우리 부부가 느끼기는 2~3시간 온 듯했다. 다행히 입장할 때 아이가 좋아하는 앵무새들이 가까이에서 있었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니 뭐 짜증을 낸들 아이도 어찌할 수 없었던 터라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비가 슬슬 그쳤고 갑자기 비가 오는 것이 흔한 일인 듯 여기저기 우산이 비치되어 있어 쓰고 다녔다. 그곳은 아이의 마음을 훔치기 아주 좋은 곳이었다. 경계 없이 다니는 새들도 있었고 특이한 새들도 많았으며 펠리컨에게 먹이 주는 것도 아이가 꽤나 좋아했다. 다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비를 피해 기다린 것보다 더 빨리 관람을 끝낸 느낌???^^;;;
조식신청을 안해기도 했고 뭐라도 주워 먹지 못한 채 급히 나온 거라 오후 1시쯤 되니 슬슬 배가 고파 새 공원 음식점에서 뭐라도 먹고 가고 싶었지만 후다닥 관람을 마친 아이는 이제 숙소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왔는데
"어! 저긴 뭐야???"
"아~ 저긴 파충류공원이래. 근데 네가 새를 더 좋아할 것 같아서..."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미 아이와 남편은 파충류공원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난 새도 싫지만... 파충류는 더더더더더더 싫었기에 새만 보여줄라고 한 건데... 표 파는 입구에서 도마뱀을 떠억~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 집남자들이 본인들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것이다. 이미 그곳 직원은 아이의 손에 뱀을 올려주었고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보다가 '빨리 입장권 끊어!! 들어가게!!'라는 눈빛을 내게 쏘아대고 있었다.
미리 예약하면 입장권을 조금 할인받을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당일 결정을 내려 급하게 오느냐 예약은 못했지만 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 폭풍검색 끝에 당일 할인받아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 새 공원 표를 끊었고 파충류공원도 그곳에서 급히 검색하니 다행히 할인이 가능하여 버벅대며 온라인으로 표를 사고 있는데 아이는 계속 '왜 빨리 표를 안 사냐! 빨리 들어가고 싶다!!'라는 눈빛을 쏘아댔다.
아이의 눈빛도 무섭지만 내겐 할인받을 수 있는 경로가 있는데 그냥 생돈내고 들어가는 게 더 짜증 나고 무서웠기에 영어로 되어있는 홈페이지를 보고 후다다다닥 눈치껏 표를 구매를 해보려 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감격했다.
"으하하하~ 나 해냈어!!! 표 샀어!!"라고 말하며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작은 뱀을 만지고 싶어 하는 다른 아이에게 조용히 양보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직원이 잽싸게도 아주 큰 도마뱀을 아이 손에 올려주니 더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영어가 안되니 조용히 양보하는 것 같았다. ^^;;)
우리 가족에게 파충류공원을 안내해 줄 가이드라면서 어떤 남자 직원분이 말을 거셨고 우리는 끄덕끄덕거리며 따라갔다. 가이드분은 쉼 없이 이야기하셨지만 사실 우리는 눈치껏 알아듣고 표현했을 뿐.. 우리의 반응이 적절했는지도 사실 의문이었지만 그 가이드분은 오히려 한국어도 섞어 쓰면서 우리를 파충류공원에 빨려 들어가게 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다른 동물을 낑낑대고 들고 나타나거나 열심히 아기도마뱀을 설명하고는 저기도 있다며 밖에 있는 도마뱀을 가리켜 우리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알고 보면 조각이었던 뭐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참 많았다.
악어먹이 주기는 어찌 보면 잔인하기도 했지만 악어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고 사춘기아이도 가이드에게 홀려 말도 안 되는 포즈를 취할 수도 있단 걸 알게 되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발리 여행에서 내가 위치와 큰 틀만 계획을 했지 세세한 것은 계획하지 않고 왔는데 역시나 기대 없이 갑자기 한 것이 제일 재밌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어설픈 영어실력에도 찰떡같이 알아듣게 하는 가이드의 실력은 정말 최고였고 대략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일정은 아이에게 발리에서의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건너편에 있던 한식집에 가서 삼겹살 3인분은 주문했는데 한 접시에 고기가 모두 나오면 아이가 흡입할 것 같고 추가로 더 주문하기엔 한 끼 식사로 비쌌기에 한두 점 맛만 봐야 하나... 했는데 웬걸!!! 1인분씩 밥과 국, 고기까지 한상차림처럼 나와서 우리 셋 모두 발리에서 만족한 식사가 되었고 그때 또 비가 억수로 많이 내려 우비 입고 우기를 제대로 느끼며 미친 척 돌아다닌 날이었다. 컨디션도 회복되고 새와 도마뱀도 실컷 보고 삼겹살도 든든히 먹은 아이는 우리와 함께 마트도 동행하며 발리에서의 마지막 지역을 누렸다.
그리고 나는 최종 결심을 내렸다.
마지막 지역, 한 숙소에서 7박을 보내며 발리 여행을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오토바이로 둘러보다 보니 우리 숙소는 너무 외지기도 했고 아이가 아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며칠을 고생했던 터라 괜스레 안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을까 봐 숙소를 다시 폭풍 검색했고 현재 숙소를 5박으로 줄이고 나머지 2박을 5성급 호텔로 미친 척 예약을 했다.
지금 있던 호텔의 7박 비용이 5성급 호텔 2박 금액과 비슷했으니 살 떨리는 금액이었지만 우리도 5성급 가보자!!! 에라 모르겠다!! 마지막은 편히 지내다 현실로 복귀하자!! 라며 카드로 취불가를 결제했다... (취소불가이기도 했고 이틀 전 남은 숙소 예약이라 그런지 평상시보단 저렴한 금액이었음에도 살 떨리는 금액이었다.)
누가 카드값 좀 내주면 좋겠다...
나 진짜 알차게 여행 다녀줄 수 있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