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서 아프면 말이 안 통하니 너무 힘들다!ㅜㅜ
그동안의 여행은 길어바짜 일주일정도였으니 별 탈 없이 잘 다녔다. 그런데 이번은 4주 정도 되는 기간이라 중간에 아플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이가 아프자 겉으론 의연한 척했지만 마음은 뒤죽박죽 멘붕 상태였다.
남편은 의연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아이가 아프지만 이제 크기도 했고 게임하며 잘 버티고 있으니 여기까지 힘들게 온 만큼 우리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말도 이해는 하지만... 난 맘이 불편하다고!!!
아이의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약을 먹이기 시작했는데 열도 나기 시작했다.
무섭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아프다니...
영어라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언어가 안되니 된장이다...ㅠㅠ
간호사 동생과 의논 후 발리에 있는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정했고 큰 병원은 거리도 좀 있었고 오히려 검사하고 진료 보느냐고 진을 뺀다기에 고민하다 숙소 가까운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병원 가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았던 터라 최대한 오픈 시간에 맞춰가서 빠르게 진료를 보려고 했다. 다행히 다들 빨리 일어나 빠르게 준비해서 그랩택시로 3분도 채 안 걸리는 병원에 도착했다.
너무 작은 규모에 아이는 당황하며 큰 병원으로 가자했지만 이모가 결정해 준 곳이라고 하니 아이는 군말 없이 들어갔다.
'이모가 결정했다고 하니 바로 들어가네... 엄마는 못 믿는 건가...^^;;;'라는 생각이 짧게 스쳤지만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을 시간이 없었다. 빠르게 접수하고 진료 보는 것이 목표!!!
물론 여권도 챙겨갔고 정말로 소통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여 직접 보여줄 생각으로 내가 사용하던 체온계, 약품 등등을 챙겨갔다. 다행히도 접수할 때 바디랭귀지로 표현하니 눈치껏 잘 알아채주었다.
당연히 언어소통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어미는 아이가 언제부터 아팠고 몇 시에 어떤 약을 먹였는지 메모장에 적어둔 것을 빠르게 번역기를 돌려 일단 영어로 바꿔놨다. 초조하게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옆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여인도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앉아있다가 제일 먼저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상당히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호명되었다. 평상시면 나만 따라 들어갔겠지만 역시나 언어가 딸리니 남편까지 모두 동원되어 비좁은 진료실을 꽉 채웠다.
아주 젊어 보이는 남자 의사 선생님과 역시나 젊어 보이는 남자간호사선생님...
아이의 증상은 접수할 때 대략 설명했기에 알아들으셨겠지만 이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신다.
"쏼라~ 쏼라~ 쏼라~~" =>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 What?"
아... 된장... 쉽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못 알아들었다. 말은 못 해도 한국인의 특성상 눈치껏 듣기는 잘했는데...ㅜㅜ 덩달아 남편도 너무 긴장했는지 멍~
'안 되겠다!!! 아이 앞에서 말도 못 알아듣는 부모의 모습을 보일 순 없지!!!'라고 생각한 나는 미리 준비해 놨던 메모장을 보여드렸다. 처음엔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셨던 의사 선생님께서 쭈욱 살펴보시더니 '오~~ 잘해놨네~'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주셨다.
'훗~ 이제 알아서 진료를 봐주시겠지?'라고 생각이 들 찰나... 또 질문을 하신다. 그런데 그사이 자신감이 생긴 건지 아주 코딱지만큼 알아듣는 단어가 나온 것 같았다.
'대변을 어떻게 봤는지 물어보는 것 같은데... 이걸 또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나마 조금 알아들은 것 같은데 말로 표현하기란 어려웠고 그 사이 나의 혼잣말을 알아들은 남편은 번역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 나 사진 찍어놨지!!!'
그렇다! 난 아이가 점점 더 아파하자 대변 상태를 확인했고 혹시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아 사진을 찍어두었던 것이다!!!
빠르게 번역기를 돌렸다.
"제가 아이 대변을 사진 찍어둔 것이 있는데 보여드려도 될까요??"
의사 선생님은 흠칫 놀라셨지만 보시겠다며 사진을 확인하셨다. 아파하던 아이도 무슨 상황인가 궁금해하는 것 같아 사진을 보여주니 엄마가 찍어둔 망측한 사진을 보고 기겁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창하지 못한 영어실력으로 너무나 길게만 느껴지던 그 찰나에 갑자기 우리가 들어온 문이 아닌 다른 문이 열리면서 여자 간호사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남자간호사선생님과 체인지를 하셨다. 우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배는 어디쯤이 아픈 거죠?"
"......"
'이게 무슨 소리지... 영어는 아닌 것 같은데... 인도네시아어인가...' 내가 순간 언어 속에서 헤매는 동안 남편이 아이에게 배가 아픈 부위를 눌러보라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여자 간호사선생님은 한국어 능동 자셨다!!!
눈물 나게 반가운 한국어...ㅠㅠ 그때부터 배는 여기가 아프고 뭘 먹었고, 뭘 했고 주저리주저리 한국어를 연속 방출했고 아직 한국어 초중급 정도 되시는 간호사선생님은 차분하게 듣고 모르는 것은 다시 질문하신 후 그걸 다시 번역하여 의사 선생님께 전달해 주셨다.
한국에선 진료하면 5분 컷? 3분 컷?이었던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께서는 정말 1부터 10까지 꼼꼼하게 체크하신 후 장염인 것 같으니 주사와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아가서 5일 동안은 빠짐없이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다. 여행자 보험이 있는지도 물어보셨고 진료받은 금액에 대해서도 대략 알려주셨다.
이래저래 엄청나게 걱정했는데 다른 검사를 안 해도 되고 내가 아는 질병인 장염이라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좀 놓였다. 아까 여자간호사선생님께서 나오신 곳으로 들어가니 우리보다 먼저 진료받은 한국인 분께서 수액을 맞고 계셨고 우리는 그 옆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나중에 서류받아가시는 걸 보니 한국인이 맞으셨다.)
얇은 유리문 사이로는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수액 꽂을 쇠막대기?? 는 삼각대 같은 걸 꺼내 조립하시는 걸 보니 분위기는 우리나라 80년대?? 시설 같은데... 그래도 너무 친절하고 열심히 진료를 봐주시려는 모습에 괜스레 또 울컥... 주삿바늘도 한 번에 ok~
40분 정도 수액을 맞고 병원에서 알아서 챙겨주는 서류를 받아 들고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즉석 죽을 데워 아이 먹이고 약도 먹이고 누워 자는 것을 본 후 남편과 나는 밖으로 나와 바로 오토바이를 빌렸다.
더 이상은 오토바이를 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가 아파 죽하나 사려고 돌아다니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려서 바로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오토바이를 빌리게 된 것이다.
2~3일 정도는 죽이랑 포카리 등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오토바이 타고 마트로 이동하여 필요한 물건을 더 구입했다. 물론 한국제품 즉석죽은 상당히 비싼 금액으로 삼시세끼 계속 먹이긴 부담이길래 인도네시아식 즉석죽도 구입했다.
그리고 남편과 내가 먹는 식비는 더 줄이기 위해 야시장에서 계란말이(?) 같은걸 대략 2000원, 닭꼬치도 2000원에 구입해 야무지게 먹었다.
아이의 증상은 당연히 바로 호전되진 않아서 잠시 병원에 대한 불신이 생기려고 했으나 병원에 다녀온 지 이틀이 지나자 아이는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내가 보험도 없다시피 살았지만 웬만하면 여행자보험은 꼭 들고 외국에서 아프면 너무 우리나라 약만 믿지 말고 바로바로 병원 가자.
아이는 총 5일 정도 아팠고 우리의 여행은 5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런 시간이 계속 오진 않아! 남은 시간을 불 살라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