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부쩍 늙으셨다. 숱이 듬성하고 염색기가 빠진 흰머리는 더 가늘어졌다. 수술 전처럼 면도를 자주 하지 못하시니 수염도 부쩍 허옇게 보인다. 전신마취 이후로 경도성 인지 장애가 심해진 것 같다. 의사가 알려준 간단한 재활운동을 매일 알려드려도 또 잊으신다. 엄마에게 챙기라고 잔소리는 했지만, 엄마도 70대 노인이다. 다소 젊어 보이는 엄마의 턱언저리 피부도 고개를 돌릴 때마다 힘없이 쭈그러든다. 늙는다는 게, 다친다는 게, 아프다는 게 부쩍 서럽다.
아버지의 수술 전후 불행하기만 했다.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게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유방암과 아버지의 잇단 사고... 결혼한 남동생이 딴에는 애쓴다 해도 부모님의 돌봄은 한 집에 사는 내 몫이다. 부모님의 고통이 슬프기도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떠 앉은 나 자신도 측은하다. 오지 않은 미래가 더 괴로울까 걱정하는 마음에 더 서러웠다.
정채봉의 <초승달과 밤배>를 읽었다. 한없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서일까... 노인과의 삶은 어둡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뭔지 의아했다. 젊음만 최고라고 여기는 시대의 물살 때문일까? 뭔지 모르겠다. 매사 상황을 심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내 천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70대 부모님과 한 집에서 의존과 부양 사이에 살고 있는 내 삶을 희극으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심각한 사회문제라던가, 애처로운 부모 자녀 사이로 보지 않으면 어떨까? 그리 세련되지도 사교적이지 않은 부모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즐거운 렌즈로 바라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 중에 퇴근하니 아버지의 머리가 새까매져 있다. 엄마가 염색을 해드렸다. 듬성한 숱도 채워진 것 같다. 오랜만에 면도까지 하시니 부쩍 젊어지셨다. 오늘은 재활운동을 하셨냐고 물으니, 기억이 가물한지 대답을 안 하신다. 엄마는 마음에도 없이 한심하다는 투로 하는 척만 했지 하다 말았다며 핀잔이다. 이 모습이 그저 유쾌하다. 내일은 같은 삶에서 더 유머러스한 단면을 찾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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