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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음 Apr 05. 2016

불편했던 사랑니

사진정보: 2015년 겨울, 서울숲


'주말의 명화' 알람에 일어난 어느 주말이다. 일출처럼 웅장한 도입부에 왜 매번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또 좋아했던 음악은 아침 알람이 되는 순간 그토록 싫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여전히 간밤의 무게를 노새처럼 짊어지고 있었다. 자기 전에 읽은 '심연으로부터' 속 문장에 쫓기면서, 모든 원망과 절절한 문장이 나에게 점철된 것처럼 잠자리가 불편했던 까닭이다. 밤새 심연에 고립되었다는 사실은, 얼굴에 들러붙은 베갯잇 자국만이 심해의 퇴적층처럼 기억할 뿐이었다.


입 안 가득 소금기로 짭짤하던 차에, 마시다 남은 탄산수 병이 눈에 들어온다. 말괄량이의 톡 쏘는 매력이 사라진 액체는 순수한 물도 아니오,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못한 물질로 변해있다. 미심쩍은 것을 한 모금 마셨더니 흐리멍덩한 액체에서 민트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없지만 왼쪽 어금니 일대가 시큰하다. 의심스러운 액체에 기포가 남아있는지 귀를 가져가 보았다. 그러나 채소를 데친 물처럼 풀썩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나머지 액체를 입 속에 쏟아붓곤, 잠시 머금어보았다. 이번엔 얼어붙은 폭포의 고드름을 오도독 씹었던 시퍼런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린 추억과 기억을 좁은 수로에 흘려보내자, 도로 담을 수 없는 아쉬움에 남은 자리가 아려온다.


불현듯 이유를 알 것 같아,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하마처럼 입을 벌렸다. 로마의 원형극장처럼 치아는 공연 시작을 기다리며 2층 빼곡히 앉아있다. 예상대로 가장 늦게 자리 잡은 관객이 소동의 원인이었다. 사랑니라는 녀석은 왼쪽 가장자리 선홍색의 흐물흐물한 표피를 덮곤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의 이마를 검지로 톡톡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오도독 부서지는 파란 소리와 얼얼한 마비가 동시에 역류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음식물을 밀어 넣고, 구석진 곳의 선홍빛 근육을 뻗어 조이거나 어루만졌음에도 이 심연에 불빛 밝힌 적 있을까. 오랜만에 유심히 들여다본 세상은 지난밤 심해처럼 낯설다.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끄럽고 붉은 지층에는 하얀 산호초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중 불안하게 내린 뿌리 하나 때문에 단층끼리 충돌하고, 여진은 길길이 자라난 눈썹에서도 감지된 것이다.


통증은 식탁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 전보다 심해졌다. 음식물을 털어 넣었더니 연체동물의 축축한 촉수를 거치지 않고 곧장 왼쪽 구석으로 향했다. 덕분에 모든 음식에선 통각이 우선 반응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양손에 포크와 숟가락을 쥐고 식탁을 내리치는 바람에, 어른들의 식사가 불편해지는 것 같다. 덕분에 내 왼쪽 호수 위에 뜬 초승달은 오늘 여러 번 찌그러진다. 눅진 혀는 도마 위 밀가루 반죽처럼 몸을 말았다가 매끄러운 잇몸을 힘껏 밀어 보지만, 통증만 더할 뿐이다.


한번 진앙지를 건드리자 통증은 여타 일상생활에까지 간섭을 시작한다. 매일 보는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만은 이상하게도 기억에 머물지 않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짤 때. 또는 고심해 쓴 메시지 앞에서 망설일 때면 변죽 좋게 나타나서는 고통을 준다. 어느새 사랑니는 마음의 고통으로 쓰여지고, 이 허울로 주말을 보냈다.



사진정보: 2015년 초봄, 일산 호수공원


그것과는 이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편안함을 되찾았다.


결국 월요일 아침 치과에 들렀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했더니 과거의 진료 기록을 찾아낸다. 모니터에는 10여 년 동안 관리 소홀에 따른 문장으로 빼곡할 텐데. 음습한 것들이 준비 없이 공개된 같아 부끄러워진다. 잠시 후 내 이름이 호명되고 번잡한 의료기구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손을 공손하게 모으면 조금은 섬세하게 다룰지 몰라,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얌전한 자세로 기다렸다. 마침내 초록색 천이 빛을 가리고 진료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무디기만 했던 혀나 상하 운동밖엔 모르던 치아에 다른 감각들이 깨어난다. 눈으로 과정을 볼 수 없지만, 차가운 기구가 접촉할 때 철렁임과 흡입기가 분비물을 빨아들이는 분주함까지 알 수가 있었다. 잠시 후 지금까지와는 다른 묵직한 쇳덩이가 치아에 닿는다. 그것은 망설이거나 부산스러운 움직임 없이 곧장 왼쪽 구석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여린 사슴을 낚아챈 악어처럼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 시커먼 늪지로 끌고 들어가려는지 조금씩 끌어당기고, 여린 것도 팽팽하게 버티지만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악어는 힘의 강도를 노련하게 조절하다가 마지막 숨통을 끊는다. 마침내 늪지는 비릿한 피로 물든다.


초록 막이 걷히고 끈적한 핏물을 뱉어냈다. 그리곤 나에게 고통을 안긴 녀석을 보여달라고 했다. 조막만 하다고 과소평가했던 것에도 10여 년동안 사연이 있었나 보다. 나름의 인고와 고통의 시간이 틈새마다 이끼처럼 끼어있었다. 태초의 뿌리에는 순수하리만큼 하얀 시작점이 있고, 조금 자라난 치근에는 성장통 같은 흠이 군데군데 나있다. 고개를 내민 치관은 어떤 연유에선지 쪼개지기까지 했다. '아, 나만 고통스러웠는 줄 알았는데 조막만 한 것도 협소한 곳에서 10여 년 넘게 힘겨웠겠구나' 측은함이 들었다.


언젠가 서로 불편하기만 했던 관계가 끝난 것처럼, 나도 그리고 철제 쟁반에 놓인 사랑니도 이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편안함을 되찾았다. 오늘 밤은 심연을 헤매지 않을 것만 같다.


주말의 명화 OST♪ (가수-음악)

* Ernest Gold - Theme Of Exo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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