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숲 Aug 23. 2023

썸남을 나 혼자 좋아하는 것 같을 때

그렇게 제가 별로인가요.


썸남이 생겼다. 나 혼자만의 썸일 수도 있다. 혼자서만 애태우는 것 같아 그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시 혼자만의 썸인 것 같다. 어찌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첫 만남은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팅이었다. 주선자에게 번호를 전달받은 에게 첫 카톡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연락처 받아서 연락드립니다. 000라고 합니다.’


K직장인의 향기가 풍기는 메시지였다. 리는 몇 번의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은 후 중간 지점인 강남 쪽에서 첫 만남을 갖기로 했다. 그는 첫 만남에 앞서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지 이것저것을 디테일하게 물어보았다. 세심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개팅 당일. 그에게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격상 약속장소에 미리 도착하는 편이어서 기다리는 일에는 이미 도가 텄다. 천천히 오라며 그를 안심시킨 후 근처를 서성였다. 그리고 약속시간으로부터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저 멀리서 미안한 표정의 남성이 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구나. 키가 커서 그런지 팔다리가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늦지 않았는데도 그는 한사코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과를  한건 그인데 왜 내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건가요. 슨 정신으로 식당에 착석을 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 잡념이 가득 찬 상태로 걷다 보니, 어느새 일식집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와 마주 보고 앉아있으려니 몸이 배배 꼬였다.


다행히도 맛있어 보이는 해산물이 하나둘 서빙되고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자연스럽게 나누다 보니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늘 약속은 어쩌다 늦었냐고 물어보니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일을 처리하느라 늦었다고 다. 소개팅 날이 토요일이었는데 회사라니! 바쁜 사람이구나.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건 좋은 일이지. 일복 있 성실한 남자구나 싶었다.


대화를 나누며 이 남자도 나에게 호감이 없지는 않구나라는 느낌을 받다. 지금까지 해온 과거의 소개팅과 비교하였을 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그렇게 한 두 번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그를 알아간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이 좋은 기류 속에서 왜 나 혼자 썸을 타는 것 같다고 의심하느냐고?


이 남자가 도무지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의욕이 없는 것 같아서이다. 나를 좋아하는 건지, 그냥저냥 무념무상으로 만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썸이 되어버렸다.


예로부터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고 솔직하게 내 속마음을 드러내며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대해도 되는 일이다. 그러나 연애에 있어서 만큼은 나치게 소극적인 내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돌변하는  말만큼 쉬운 게 아니더라. 


친한 친구 몇 명에게 고민상담을 하니 무릎을 탁 치며 한다는 말이,


“야~! 그냥 손을 콱 잡아버려!”

“아니지. 오빠 우리 무슨 사이예요? 그냥 확 물어봐!”


그걸 내가 할 수 있으면 이러고 있겠니 친구들아? 미친 사랑을 한다고 입만 나불거렸지 정작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건 나 자신이었다.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라니. 아니 근데! 영화를 한 편도 아니고 세 편이나 봤는데 말이야! 손을 잡지 않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괜히 내가 엄청 밝히는 여자 같고 말이야…!(어쩌면 그럴지도?) 휴우, 아니면 이 사람의 연애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스며드는 스타일인가…? 그것도 아님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혼자 보는 걸 싫어하는 건가.


혼자서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머리를 굴리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이고… 내가 혼자인지를 알겠다.


유교걸일 거면 철저히 유교걸이던지, 아니면 신여성이 되어 까이는 것 상관하지 않고 직진을 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 데 두 우물에 발을 한 개씩 걸치고 있으니 뭐가 될 리가 있겠는가.


썸남은 나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같이 영화를 볼 메이트가 필요했던 걸까?


이래서 연애도 오래 쉬면 안 되나 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정말.


이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나의 님을 찾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