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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Jan 18. 2024

바다는 나를 삼키지 못한다.


생각이 있는 대로 다 뒤틀려버려 주변의 사물을 왜곡된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가 돼서야 산책을 하러 길을 나섰다. 일종의 자동 알람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마음이 터질 듯 답답해면 '좀머 씨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좀머 씨처럼 발걸음을 길 밖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씩 내딛지 않으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때마침 봄날처럼 포근한 날씨였다. 목련 나무는 강냉이처럼 곧 터질듯한 목련꽃을 꼬옥 껴안은 채로 고요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느릿느릿 걷는 길고양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희끗한 머리의 노인을 지나치며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왜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냐며 근래 들어 몇몇 지인이 물어보기도 했다. 글쎄,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랄까. 타인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우울이 은은하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할 뿐이고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와 남자친구는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므로 정말 딱히 이야깃거리랄 게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무의미와 씨름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쩌자고 자꾸만 '인간은 왜 사는가', '언제까지 삶을 짊어져야 하는가'와 같은 류의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럴수록 마음 깊은 곳에 달려있는 공포의 추가 자꾸만 자꾸만 더 무거워져서 결국 저 깊은 슬픔의 바다로 끌려 내려갔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코바늘로 목도리를 뜰 때 잘못 뜬 곳을 무시하고 넘어가더라도 결국엔 그 부분이 눈에 거슬려 어느샌가 전부 풀어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지 않던가. 일상이 마치 그것과 같았다. 잘못 뜬 코 같이 어딘가 어그러지고 뒤틀려 있는 모양새여서 글을 쓰다가도 결국엔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과정일 뿐. 어느 하루에는 분명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쬘 것이란 것을 생각하며 웅크린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지냈다. 끝없이 떨어질 것 같다가도 결국엔 다시 올라가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면 떨어질 때는 떨어지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고, 올라갈 때는 다시 올라가는구나를 받아들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지금 자신이 떨어지고 있구나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알아차리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산책을 나섰으며 감사하게도 날씨가 온화하여 날카로워진 마음도 제법 둥그스름하게 다듬어졌다. 산책을 하고 나니 마음이 살짝 가벼워졌다. 감사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는데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화살처럼 빠르게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릴 새도 없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뒤죽박죽 제멋대로인 글을 발행하고 난 후에는 누가 이 글을 읽을까, 이런 글은 정말 별로야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졸일 수도 있을 테지만 뭐 어쩌겠는가. 결국에는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그러므로 저 깊은 바다에 던져진 거대한 공포의 추를 하루의 몫만큼 건져 올린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알지 못한 채

매일을 불안해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아무리 추가 무거울지라도

바다는 결코 나를 삼키지 못할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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