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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테레 Jul 30. 2016

9. 난 우리 집이 호텔 같아.

좌충우돌 캐나다 유학이야기


9.



홈스테이 세 자매들 중 장녀, 씨포라양.

큰 언니라 그런지 동생들보다 성숙하고 차분한 면이 있다. 아직 10대로 어리지만 확실히 장녀 티가 난다.


친구들과 놀다가 밤 11시쯤 들어온 큰 딸은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뜬금없이 묻는다.


"너도 같이 놀래? 그러고 싶어?"


상대방의 의사를 중시하는 캐나다 문화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보통 내가 가고 싶다고 가도 되겠냐고 묻거나 요청하지 않으면 절대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학교, 집, 학교, 집만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혹 내가 소극적이어서 말하지 못하는 건가 싶어 물어봐주는 배려심 깊은 큰 딸이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조금 당황하자, 큰 딸이 말을 이어나간다.


"난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묻는 거야. 네가 내 친구들과 놀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해. 네가 언제 우리 집을 나갈진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가고 싶은 곳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감동했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큰 딸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잠시... 아주 잠시 나눴었다.


"넌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게 좋니? 난 말이야, 가끔 우리 집이 호텔 같은 숙박업소 같아.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알게 되는 것이 기쁘긴 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왔다가 훌쩍 떠나는 것이 뭔가 허전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


마냥 좋아 보이던 세 자매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구나 싶어 내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한창 엄마에게 투정 부리고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많은 사람들과 이별하고 그들이 떠난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배웠던 것이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고 집에는 일 년에 수명의 낯선 외국인들이 들락날락거리고 그로 인해 득도한 듯 보였다.


출처: beantownac.com

항상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생각되어야 하는 우리 집이 호텔같이 느껴진다니. 그 아이 마음속을 언뜻 알 것도 같았다. 지금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했다. 나와는 다르게 생기고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는 내 마음도 그다지 안정적이진 않은 것 같으니 그 아이와 다를 게 무얼꼬.


이런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영어도 쏼라쏼라 잘하는 게 부러웠는데 그들 나름의 힘겨움이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다 가진 것 같은 사람에게도 고민은 있다. 시련이 찾아온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온전히 본인의 몫인 것 같다.


출처: www.huffingtonpost.com

큰 딸은 어쩌면 제대로 된 대화가 어려운 내가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기 편한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냥 속에 있는 말을 내뱉고 그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가끔은 나랑 연관 없는 제삼자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해보자,
정신 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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