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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민송 May 18. 2018

[일상마인딩] 오야꼬동과 함께하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바쁘게 돌아가던 머리를 잠깐 멈추게 하는 시간

오랜만에 즐기는 쉬는 날이었다. 수요일이 휴일인 회사를 다니는 터라 다들 종종종 달리며 보내는 평일의 중간에서 혼자 못내 여유로웠다. 쌓인 피로가 싹 다 풀리도록 달게 자고 일어나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시작한 하루라 그런가. 읽고 싶었던 책 조금 들춰보고, 엄마랑 이야기 조금 하고, 바빠서 미뤄둔 뿌리 염색도 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더라. 마침 맥주 약속이 회사 근처라 사무실에서 혼자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문득 배가 고팠다. 그래서일까, 반가운 사람들과의 맥주 약속이 있어 굳이 챙겨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속이 따뜻해지는 든든한 한 끼를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근처에 혼밥 하기 좋은 식당이 있었다. 사장님과 직원 한 분, 단 두 명이서 운영하는 덮밥집인데 월수금에는 오야꼬동을, 화목토에는 규동을 판다. 하루에 메뉴 딱 하나, 가게 내에서 수다는 금물. 문도 못 열고 밖에서 벨을 눌러야 하는 가게라 다소 매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와 든든하고 맛있는 메뉴가 좋아 최근 팀원들과 즐겨 찾던 곳이다. 혼밥 하기 좋은 곳인데 막상 혼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일어났다. 한 그릇으로 완벽한 오야꼬동이 눈 앞에 아른거리더라.


평소 대기가 꽤 있는 가게인데 운 좋게 한 좌석이 비어있었다. 럭키. 우산꽂이에 우산을 꽂고 가방은 뒤에 걸어두고 자리에 착석. 혼자 와서 그런지 괜히 평소보다 더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그러곤 습관처럼 핸드폰을 붙잡고 카톡에 답을 하고 이런저런 글을 읽으며 일 생각을 이어가다 문득, 요즘 뇌를 쉬게 해준 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재미있지만 묘하게 조급한 나날들. 


문득 지금이 적기란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돌아가던 머리를 잠깐 멈추게 해줄 시간. 핸드폰을 내려놓고 여기서 밥을 먹고 떠나는 시간만큼은 지금, 여기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마침 식사 명상은 초보자도 하기 쉬운 명상이니 한동안 명상을 쉬었던 내가 다시 시작하기 좋은 것 같기도 하고 :) 그래,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말고 딱 지금 여기에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크게 심호흡 세 번하고 주위를 둘러보기. 가벼운 나무로 만들어진 수저를 천천히 집어 내 앞에 내려놓으니 조금은 오래된 옛날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앞에서 최소한의 동작으로 오야꼬동을 만드는 사장님과 설거지를 하는 직원분이 보이더라. 특별히 들려오는 말소리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을 구성하는 소리들이 하나씩 귀에 들어왔다. 


'아, 그런데 어제 그 기획 어떡하지? 피드백 반영해야 하는데.'


그래, 쉬울 리가 없지. 자연 소음 속 울리는 머리 속 목소리. 너무 자연스럽게 들려와서 나도 모르게 생각의 흐름을 이어가려다 멈추었다. '아냐, 그건 지금 여기서 할 생각이 아니야. 오야꼬동과 기획은 아무 관련이 없단다 ㅎㅎ' 타일러 보았지만 원래 기가 막힌 생각은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법이니 딱 이것만 생각하고 멈춰도 될 것 같았다. 아냐아냐, 심호흡 한 번 하고 나를 달래기.


동의하는데 지금은 아니야. 일상 속에서도 고민하는 거 정말 멋지지만 
오늘은 일하는 내가 아닌 그냥 '나'에게 집중하자.
그래 봤자 30분이잖아? 잠깐 멈추고 나면 더 가벼워질 거야.


그렇게 극적인 타결을 하고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일단 호흡에 집중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 호흡만큼이나 규칙적인 소리가 하나 더 있음을 느꼈으니 그건 바로 가위질 소리. 앞에서 사장님이 오야꼬동 4개에 들어갈 닭고기들을 열심히 자르고 계셨다. 탁탁탁탁탁- 프로답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되는 가위질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 가위질 덕에 입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닭고기들이 만들어지는 거겠지. 문득 감사함도 번지더라.


혼밥하기 좋은 가게 지구당의 오야꼬동. 저 날은 핸드폰을 쓰지 않았기에 예전에 찍어둔 사진으로 대체한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나온 오야꼬동 한 그릇. 솔솔 올라오는 김이 보기 좋았다. 계란 2개, 양파, 얇게 자른 깻잎, 닭고기, 연한 갈색의 소스가 벤 국물, 고슬고슬한 쌀알들. 윗부분만 조심스럽게 뒤섞어 한 입 크게 떠 넣었다. 음, 맛있어. 평온하던 마음에 격한 감동이 밀려왔다. 급격히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끼며 조심스럽게 씹어보았다. 갓 만들어진 한 끼의 따스한 온기, 여러 재료들 특유의 식감에 집중하다 보니 치솟던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지금 이 순간이 점점 더 풍성하게 다가왔다. 


고독한 미식가 마냥 밥 한 술 떠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한 입 한 입 혀를 굴려가며 맛을 음미하기도 하고, 호흡을 좀 더 크게 해 음식의 향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맛이 혀에 쌓여 입이 조금 짜다 싶을 때는 분홍 빛이 예쁜 생강 초절임 한 조각으로 비워내고 보리차 한 모금.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혀와 손에만 집중되는 느낌이 좋았다. 게다가 어느 순간 머리를 맑게 비우고 현재에 몰입했을 때 그리고 그게 좀 지속됐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 느껴져 더더욱. 말로 설명해 공감받을 자신은 없지만 참 좋아하는 느낌이라 표현해보자면 뭐랄까. 뇌가 밀가루 반죽마냥 부드럽게 저며지는 느낌이다 :)


또 한 번 심호흡. 밥이 절반 넘게 사라졌다. 살짝 아쉬운 맘이 올라오는 걸 인지하며 다시 심호흡. 아쉬움 한 자락 덕에 그 순간이 즐겁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더더욱 현재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지금, 여기의 나와 내 감각, 이 상황이 좋더라. 그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식사가 끝났다. 밥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보니 오늘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상 속 마인딩이 이런 거지. 때로는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를 붙잡아 찬찬히 펴보는 것. 그 시간 속 내가 어떻게 있는지 살펴주는 것. 그렇게 나를 아끼는 시간을 사이사이 끼워 넣는 것. 


몰입해서 감정일기를 쓰고 난 것 마냥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하루가 5시간은 남았는데 벌써 제대로 푹 쉰 그런 느낌. 몸도 마음도 챙긴 하루였기에 가능한 느낌이겠지. 그래, 이번 수요일은 내게 마냥 소중한 하루였다. 계산하고 나오는 길, 흐린 하늘마저도 퍽 근사하게 느껴질 만큼. 미루고 미루던 글쓰기를 이렇게 앉은 자리에서 뚝딱 마칠 만큼. 




필자는 현재 일상 속 내 마음을 위한 실천을 돕는 온라인 마음 관리 프로그램 '마인딩'의 대표이자, 나와 내 마음을 위해 노력하는 한 명의 마인딩 크루로 살고 있습니다. 몸을 챙기기 위해 헬스장을 가듯 마음을 챙기는 것이 당연해지는 세상, 그렇게 마인딩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각자 나답게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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