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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Apr 02. 2018

퇴사 후의 기록

퇴사 후 한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퇴사 후 한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마냥 신경 쓰이던 회사 일도 이제는 생각조차 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에너지를 사용해 일했던 곳이었다. 비록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괴로움은 추억으로 미화되었다. 고작 두 달 만에 그런 적도 있었지, 라며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퇴사하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신 말을 기억한다. 네 나이가 몇인데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러니. 하지만 늘 그 ‘나이’에 갇혀서 억지로 원치 않은 방향을 선택하고, 힘들게 버티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것을 떠올린다. 내 이십 대는 그랬다. 고작 이십 대였는데도.  


불필요한 것들을 차치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오랜 시간 꾸었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것.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매일이 재앙이고 전쟁인 터라 여유가 없었다. 짧게나마 올리던 에세이를 쓸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글을 취미 삼고 싶지 않았다. 이 결심을 증명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삶에 변곡점을 찍었다.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기초반을 수료했고,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선생님은 내실을 쌓는 것이 중요하니 마음을 급하게 가지지 말라는 조언을 하셨다. 하지만 자꾸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확신이 흔들리는 때가 오기도 했고, 나의 가능성 유무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그걸 하기 위해 퇴사를 한 것도 부럽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는 잘 돼야 말이지,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열심히 하겠다고 답하고 있다. 앞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해야 할 것이고, 바짝 해서 되지 않으면 포기해야 할 날도 올 것이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이상이 현실이 되지 못하면 일어날 일들에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하며 부지런히 필사를 하고, 시놉시스를 쓴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공부를 할 때마다 부족한 점이 보여서 아직 멀었구나 싶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열정, 목적의식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갈 길은 멀어도 즐거운 일이다.  


오늘 본 영화 <플라티나 데이터>에서 주인공 카구라는 사건이 해결된 후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의 운명과 가능성은 결코 유전자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야 
미래를 개척하는 건 그 사람 자신의 의지인 거야 

                                                            


내 의지로 결정한 일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 한참 고민했으나 오늘에서야 이 마음을 기록해둔다. 


+ 최근 다시 시작한 캘리그래피.

    작년 코엑스 전시회에서 다른 분 작품을 위해

    펜 캘리그래피를 써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다시 붓으로 기본부터

    배우고 있다.


    내가 쓴 작품 타이틀을 쓰는 날이 올 때까지 

     캘리그래피도 열심히 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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